Home > 사회 > 현장 리포트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7월08일 제517호
사람은 싸우고 소는 구경하고…

건설업자 · 지역토호간 이권 다툼으로 빛 못 보는 청도 상설 소싸움장… 청도군은 수수방관

▣ 청도=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전통 소싸움을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건립된 경북 청도 상설 소싸움장이 건설업자와 지역 토호들간의 이권 다툼으로 빛을 못 보고 있다. 이 경기장은 지역개발의 공익성이 인정돼 128억원의 국비까지 지원받았지만, 경기장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개장이 지연돼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청도 소싸움은 매년 수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동성 사장, 공사비 부풀려 기소

청도군은 지난 2000년 6월 부산의 중견 건설업체인 동성종합건설(주)(동성)을 민간 사업시행자로 선정해 공사비 170억원 규모의 소싸움장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청도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인 소싸움을 상설화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시작됐다. 청도군은 공사비의 35%를 동성이 부담하는 대신 동성에 31년9개월 동안 경기장 무상 사용권을 주는 기부채납 조건으로 공사를 승인했다. 동성은 소싸움장의 운영·관리를 위해 (주)한국우사회(우사회)를 설립한 뒤 이 법인에 사업권을 넘겨주는 대신 공사비를 부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공사비를 둘러싸고 동성의 경영진과 우사회 대주주들간에 분쟁이 일어나 공사비 지급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동성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지난 2월에 부도를 맞았고, 경기장 마무리 공사도 중단되면서 개장이 무기한 연기됐다. 청도군은 우사회를 새 민간 사업자로 선정하고 경기장 개장 작업에 착수하도록 했으나, 동성이 이에 반발해 경기장을 무단 점거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

청도군과 우사회, 동성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우사회 등은 동성이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우사회 관계자는 “동성의 강아무개 회장이 초기에 우사회의 대표이사까지 겸직하면서 실제보다 부풀려진 공사비를 우사회가 지급하도록 조작해 주주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며 “강 회장의 불법적인 행동으로 피해를 봤기 때문에 공사비 지급을 중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동성의 강 회장은 공사비를 부풀린 혐의가 검찰에 포착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 5월1일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강 회장은 지난 2002년 8월 소싸움장의 방송·전산장비 공사를 진행하면서 하청업체들한테 이중 견적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해 79억원 규모의 공사를 117억원짜리로 둔갑시켜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동성에 30여억원의 부당 이득을 안겼다. 강 회장은 지난해 8월 우사회 대표이사에서 해임됐고, 우사회의 새 경영진은 동성에 공사비 지급을 중단했다. 우사회 관계자는 “동성은 우사회가 지급해야 할 공사비가 277억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사회 자체 조사 결과 약 60억원으로도 충분한 공사였다”고 주장했다.


△ 이권 다툼에 휘말려 개장이 지연되고 있는 상설 소싸움장 내부 모습과 조감도.

동성 “우사회의 음모, 청도군도 수상”

하지만 동성은 펄쩍 뛰고 있다. 동성 관계자는 “하청업체들에게 이중 견적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 적도 없고, 공사비를 부풀린 적도 없다”며 “검찰 수사가 엉터리였음이 법원 재판에서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강 회장이 우사회의 최대 주주인데, 자신이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우사회에 손실을 끼쳤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동성은 오히려 우사회의 일부 대주주들을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증자를 통해 뒤늦게 우사회 주주로 참여한 몇몇 인사들이 상설 소싸움장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 관계자는 “이 지역 출신의 재력가와 부산의 건축업자가 공모해 우사회의 경영권을 빼앗았는데, 이들이 다시 동성을 따돌리고 소싸움장의 운영권까지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에 따르면 지난 2003년 2월 제정된 우권법은 민간 사업자가 베팅 금액의 10%를 수수료로 챙길 수 있도록 했는데, 우사회의 대주주들이 이를 노리고 민간 사업자인 동성의 권리를 가로채기 위해 강 회장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 관계자는 “소싸움의 연간 베팅액은 경마(7조원)에는 못 미치더라도 경륜(1조7천억원)이나 경정(1조2천억원)과 비슷한 수준은 될 텐데, 여기에 10%면 엄청난 이익이 아닐 수 없다”며 “대주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욕심이 생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성은 청도군에도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청도군이 사업 초기에는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으나 우사회의 경영권 분쟁 이후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동성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사비가 애초 계획보다 크게 증가했는데, 청도군이 나중에 기부채납 받은 뒤 정산할 자신이 없으니까 우사회를 내세워 동성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동성의 사업권을 박탈한 뒤 군에 유리한 조건으로 우사회와 계약을 맺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청도군은 우사회한테서도 ‘의심’을 사고 있다. 청도군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동성에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도군은 지난 3월에 실시된 감사원의 특별 감사에서 동성에 31년9개월의 무상사용권 등을 부여한 것과 관련해 ‘시정’ 권고를 받았다. 청도군은 또 동성의 공사 과정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 공사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공사비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도군 관계자는 “군이 공사 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의무도 권한도 없다”고 반박했다.


애꿎은 주민만 씁쓸하다

청도군과 우사회, 동성은 현재 20여건의 민·형사 소송에 휘말려 있다. 지난 5월6일과 8일에는 소싸움장 내의 사무실에 진입하려는 우사회와 이를 저지하려는 동성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10여명이 다치기도 했다. 동성은 지금까지 600억원의 공사비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사업권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사회도 그동안 여러차례 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본금이 거의 바닥나 하루빨리 개장을 서둘러야 하는 상태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인 청도군은 느긋한 입장이다. 이원동 부군수는 “민사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태”라며 “감사원도 법원의 판결에 따라 처리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까지는 적어도 3∼5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방송시설 등은 못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동성과 우사회의 ‘대타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청도 소싸움장 사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던 이곳 주민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동성과 우사회가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우사회의 주가는 크게 뛰어 대주주들은 이미 상당한 재미를 봤다. 상설 소싸움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2004 청도 소싸움 축제는 지난 5월 서원천변 모래사장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주민들은 청도군과 동성, 우사회를 골고루 못마땅하게 여긴다. 청도군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소싸움장이 개장되면 세수가 증가하고 지역경제가 좋아진다고 떠들고 다니던 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며 “결국 돈 있는 사람들한테만 좋은 일이었는데, 괜히 헛물만 켰다”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