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공장에서 목격한 불법 파견 모습… 원청회사 작업 통제 받으며 정규직 ‘땜빵’까지
울산=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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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에서는 파견근로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이 직영 노동자들과 뒤섞여 직영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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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하던 금속 껍데기가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움직인다. 차례로 문이 달리고 엔진이 설치되면서 자동차의 모습을 띠어간다. 컨베이어 라인 위에 매달려 있는 표준작업지시서에 따라 작고 낯선 부품들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노동자들의 손길은 세심하고 정성스러웠다. 하지만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줄에 서서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같은 ‘신분’은 아니다. 왼쪽 가슴께에 노동자 이름이 적혀 있으면 정규직(직영), 업체 이름이 있으면 비정규직(하청)이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하청 노동자와 직영 노동자가 섞여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감한 문제다. 제조업에서는 파견근로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청 노동자가 직영 노동자와 뒤섞여 직영의 업무를 하고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불법의 현장’인 것이다.
옷에 붙은 이름표를 봐야 구분 가능
지난 5월27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와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현대자동차가 물량도급이라는 이름 아래 광범위한 불법 파견을 시행하고 있다”며 현대자동차와 현대차의 협력업체 12곳 등 모두 13개 업체를 상대로 집단 진정을 제기했다.
현대자동차는 130여개 협력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고 있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현대차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8천여명에 이른다. 도급은 하청업체가 자체 인력으로 독립적인 사업을 수행해 원청에 납품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파견은 사용업체가 인력만을 파견업체에서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인사·노무 관리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의 독립성 유무가 도급과 파견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 조끼 왼쪽 가슴께에 이름이 있으면 정규직, 협력업체 이름이 있으면 비정규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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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고용의 성격을 띠는 파견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로 엄격히 제한된다. 중간착취와 인신매매의 ‘위험’이 있고, 고용불안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견법은 파견 대상 업무를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 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26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는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들의 도급 계약은 사실상 도급을 위장한 파견 근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직영 노동자들과의 혼성 작업과 주야 맞교대를 통해 같은 작업을 하는, 사실상의 ‘불법 파견’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6월3일, <한겨레21> 취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았다. 취재진이 들어간 제1공장은 베르나와 라비타, 클릭 등 소형·준중형차를 만드는 곳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노동자들이 줄지어 서서 나사를 조이고 타이어를 끼웠다. 푸른색 또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은 차량이 한대한대 앞으로 올 때마다 부산하게 움직였다.
의장1부 소속인 ㅊ씨는 컨베이어 벨트 왼쪽에서 스트라이커(문고리 고정장치)와 에어컨 바람을 차 안에 전달하는 리어덕터, 냉각수 물통 장착, 연비 라벨 붙이기 등 10여개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주 보고 일하는 동료와는 왼쪽·오른쪽에 따라 한두 가지 업무만 다를 뿐, 기본적인 작업 내용은 차이가 없었다. 하청과 직영 노동자는 입고 있는 조끼에 이름이 써 있는지, 업체 이름이 써 있는지를 봐야 구분이 가능했다.
ㅊ씨는 “차 본체에 사양표가 붙어 나오고, 우리는 거기에 맞는 부품을 골라 차례로 설치한다”며 “벨트 앞에서 하청과 직영이 마주 보고 같은 일을 하거나 섞여서 일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낮에 직영 노동자가 하던 일을 밤에는 하청 노동자가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청 노동자 ㄱ씨는 13kg짜리 차축을 설치한다. 예전에는 직영 노동자 2명이 하던 일이라고 했다. B조인 ㄱ씨와 맞교대하는 A조에서 ㄱ씨의 일을 하는 사람은 직영 노동자다. 직영과 하청 노동자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컨베이어 라인 위에 달린 표준작업지시서에 따라 공정을 수행한다. 하청의 독립적인 업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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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사장은 ‘바지사장’
아예 정규직 ‘땜빵’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 노동자들도 찾을 수 있었다. 2001년부터 현대차의 하청업체인 ㅁ산업에서 일하는 ㅂ씨는 자신이 일하는 제5공장에 있는 대부분의 업무를 척척 해낸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차에서 일한 2년6개월 가운데 2년여를 오로지 ‘개선반’이라는 이름 아래 지원 업무만 했다. 정규직 직원 중에 월차를 쓰거나 사고가 나서 업무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에 가서 한두 시간 업무를 익힌 뒤 일을 시작한다. 물론 작업 지시와 교육은 그 라인을 담당하는 직영반장에게 받는다. 명백한 파견이다.
“처음 6개월 정도는 타이어 축을 고정하는 업무를 했어요. 그러다 개선반으로 편성됐어요. 항상 불안해요. 원래는 직영 노동자들이었는데, 직영들이 꺼리니까 대부분 하청들이 개선반에 배치되죠.”
현대차와 현대 정규직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을 통해 “산재 등으로 15일 이상의 업무 공백이 예상될 경우에는 하청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한시 하청은 회사쪽과 정규직노조가 용인한 부분이다. 그러나 ㅂ씨는 이 경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업무가 진행되는 만큼, 일상적인 작업 지시와 교육은 대부분 직영 소속 조·반장들에게 받는다. 그러나 자동차 업무의 특성상 단순조립 작업이 많아 작업 지시나 교육을 따로 받을 일 자체가 없다는 것이 하청 노동자와 직영 노동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도급’이라면 하청업체는 업무시간에서도 독립성을 띠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시간은 직영 노동자들의 업무 시간에 연동되고 있었다. 직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하청 노동자도 쉬어야 하고, 연장근로를 하면 함께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직영 노동자의 근무시간과 휴일근로계획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시간이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원청 회사쪽은 하청 노동자들의 출·퇴근시간과 근로시간, 식사시간을 직접 통제하고 있었다. 하청업체가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하청업체 사장들을 가리켜 ‘바지사장’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99년 이후, 호황과 비정규직 증가
하청업체의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점검하는 것도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가 입수한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관리> 문서를 보면, 현대자동차는 월급여와 복리후생비, 피복비 등 모든 임금 기준은 물론, 하청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4대 보험료까지 ‘기성금’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다. 선물과 체육복, 앞치마 등 소모품, 간식대 등 소소한 경비도 모두 원청에서 지원한다. 자동차 조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작업 장소와 도구, 시설 소모품 등은 모두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소유다. 현대자동차쪽은 <사내협력업체관리> 문서를 통해 “도급 계약작업 이행에 있어 협력업체가 필요로 하는 작업장소와 설비기계 등은 무상 대여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 조립작업의 특성상 ‘독립적인 업무’ 자체가 불가능하다.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차량에 노동자들이 각자의 공정을 수행한다. 각각의 공정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한대의 자동차를 위해 필수적으로 연결된 공정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노조는 “도급 계약의 성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오민규 교육선전실장은 “하청업체는 업무나 사업경영 면에서 독립성이 없는, 오직 노동인력을 모아 원청에 보내주는 파견업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불법 파견 문제는 단순히 ‘파견’이냐 ‘도급’이냐를 다투는 문제를 벗어나고 있다. 1998년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정규직을 소수로 남기고 정규직의 60% 남짓한 임금을 받는 하청 노동자를 끊임없이 늘리며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양준석 <울산노동자신문> 편집인은 “지난 1999년 생산이 호조를 보이면서 불법 파견 형태를 띤 하청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고, 극심한 차별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하청 노동자는 하나의 수단적 존재로서만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양 편집장은 또 “불법 파견은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것을 떠나 부도덕하고 불합리한 거대한 차별 구조를 양산해내는 것”이라며 “하청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정규직을 소수로 남기며 눈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단 진정에 나선 비정규직노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지난 5월27일의 집단 진정에 이어 다른 업체들의 불법 파견 사례들도 조사해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불법 파견이 입증되면 그 이후에는 정규직 전환화 투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은 어느새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최대의 노동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불법 파견 싸움은 그동안 ‘거침없이’ 확대돼온 비정규직 문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중요한 고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