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 > 현장 리포트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6월02일 제512호
벼락 착공, 반쪽 노선…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고속철(KTX)은 경부선의 대구∼부산과 호남선의 대전∼목포 구간에서는 새마을호와 비슷한 속도로 달린다. 이들 구간에서는 새마을호가 사용하던 기존 철로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쪽짜리 고속철’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이 구간의 요금을 새마을호와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이유 있는’ 항변도 나온다. 실제 요금은 새마을호에 비해 3천원가량 더 비싸다. 기존 선로에 고속철을 투입하다 보니 새마을호 등 일반열차의 운행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철도청은 대구∼부산 구간은 2010년까지 고속 철로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대전∼목포는 아직 계획이 없다. 행정수도가 어디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노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 ‘반쪽짜리 고속열차’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고속철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착공 때부터 이런 결과가 예견됐다는 것이다. 고속철은 6공 말기인 1992년 6월 착공됐다. 대선을 앞두고 선심행정이라는 비난 속에 차량 선정, 지질조사, 설계 등 준비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랴부랴 시작됐다. 차량은 두 차례나 선정작업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의 테제베(TGV)로 결정됐다. TGV는 신칸센과 독일의 ICE에 비해 열세였지만 막판 뒤집기로 황금알을 거머쥐었다. 고속철 건설을 둘러싸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설이 나돌았다.

벼락치기 착공은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졌다. 여기저기에서 부실공사의 징후가 감지돼 미국의 안전점검회사로부터 긴급 진단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설계가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전면 개통 시기도 애초 1999년에서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으로 계속 연기됐다. 사업비도 엄청나게 뛰었다. 초기 5조8400억원에서 18조원대로 급증했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던 고속철 사업은 12년 동안 이처럼 졸속으로 진행됐다. 그 책임은 정치권과 무능한 관료들이 나누어 져야 하지만,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