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네, 검찰이라고요?” 마감에 눈코 뜰 새 없던 6월20일 오후. 낯선 전화 한 통에 가슴을 졸였다. 서울지검 민원실 직원이라는 이는 기자에게 “1차 출두 명령에 응하지 않아 전화했다”고 했다. 한평생 착하게 살아온 내가 웬 검찰 출두? 무슨 일이냐고 따지니 사건 담당 경찰에게 직접 전화를 시키겠단다. 곧이어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의 이아무개 경사라고 했다. 최근 대형 사기범죄를 수사 중인데 주범 김아무개에게서 내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과 카드가 10개 이상 나왔다며 “당신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확인하려면 출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바보처럼 “내가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냐”고 물었다. 이 경사는 “혹시 금융위원회 은행감독과의 이아무개 과장에게서 전화를 받지 못했느냐”며 큰일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 이건 ‘보이스피싱’이다. 어리석은 기자는 이때까지도 몰랐다. 이 경사에게 신분을 밝힌 뒤 “지금 마감 중이니 내가 월요일 서울경찰청에 직접 나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경사는 우물쭈물하다 “월요일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기자는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이아무개 경사란 사람은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통화한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한 팀장의 말이다. “사기범들이 워낙 경찰 직원을 사칭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다. 사이버 범죄 수사차 현장에 나가서 경찰 신분을 밝히면 사기꾼인 줄 알고 안 믿는 것이다. 어떤 때는 지구대 대원이 출동해 우리 신분을 확인해줘야 하는 일도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경찰의 잘못은 아니다.
이날 늦은 오후 대검찰청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터넷을 매개로 기업체에 광고 중단 요구 등 집단적 협박·폭언으로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행위 등’을 특별 단속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고 했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로 누리꾼들에게서 광고 압박을 받고 있는 조·중·동을 구출하겠다는 의도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고발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해자’를 생각해 ‘구속 수사 방침’까지 천명한 검찰의 친절함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특히,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들의 기업 사랑은 대대로 애틋하다. 이번 조처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직접 지시했다.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 조성”을 모토로 내걸고 전경련보다 더 기업친화적이던 김성호 전 법무장관(현 국정원장) 뺨친다.
하지만 이날 검찰의 엄포는 ‘전화통 들지 않은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 수사하겠다는 엄포만으로도 안티 조·중·동 누리꾼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에도 ‘인터넷 괴담’을 수사해 처벌하겠다고 했다가 꼬리 내린 ‘전과’가 그 근거로 제시된다. 무엇보다 누리꾼들의 행위를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의 이날 발표를 믿을 수 없는 근거는 또 있다. 2000년 6월 법학 교수 43명이 에버랜드 사건으로 고발한 이건희 회장을 7년 넘도록 12명의 주임검사가 바뀌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소환하지 않았던 검찰이 아니던가. 변비에 걸린 듯하던 검찰의 엉덩이가 순식간에 가벼워졌을 리가 없다.
올해 5~6월엔 유독 수많은 ‘~녀’들이 관심을 모았다. 복당녀, 확성기녀, 서강대녀 그리고 이번엔 ‘정권의 시녀’. 이러다 수사하는 검사 보고 “시녀잖아”라며 신분 확인을 요청하는 시민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처구니없지만, 검찰의 자업자득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