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간첩[gant∫∂b](間諜) 명사. 英 spy.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 등 국어사전의 중성적 개념이기보다는 국민 보안 용어. 북에서 파견하여 우리나라의 보안을 위협하는, 혹은 북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빨갱이’에 쓰인다. 빨갱이라지만 <똘이장군>에서와 달리 늑대의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아 겉모습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우니 정의로운 시민은 ‘간첩 식별법’을 익혀 이들을 감별해내야 한다.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온 국민이 식별해야 했으므로 항목은 구체적이고 친절했다. 가게에서 담배를 사는데 담뱃값을 잘 모르는 사람, 이슬에 젖고 진흙 묻은 신발로 뒷산을 내려오는 양복 차림의 사람 등 말이다. 오랜만에 속상한 일이 있어 담배를 피우거나 집에 들어갈 면목도 없는 실직자 등의 사연은 알 바 아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선진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에서는 ‘안보’ 메뉴 밑의 ‘신고의식’(http://www.nis.go.kr/docs/security/maybe.html) 웹문서에서 ‘혹시 이런 사람’이라는 제목 아래 간첩 식별 요령을 알려준다. 몇 내용에는 “클났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수시로 PC방을 바꿔가면서 외국 포털 사이트 E-mail과 메신저 등을 이용(컴퓨터 고장났을 때 쾌적한 PC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숫자·특수문자로 구성된 문서를 전송하거나 채팅(조카애는 아이디에도 특수문자를 집어넣는다),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여러 개 가지고 있거나(어쩌다 보니 지갑에는 주민등록증, 기자증, 운전면허증 세 개가 들어 있다), 행색·태도 등에 어울리지 않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나를 보고 누가 기자라 할 것인가), 고속철(KTX) 등 새로운 운송수단 이용을 꺼리는 사람(어머니는 KTX는 비싸기만 하고 어지럽다고 하셨다).

17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된 장민호씨에게서는 “무선통신 해독용 CD, 소형 메모리칩(USB포트), 지령 수신용 단파 라디오, 무선통신 연락 제원표, 컴퓨터 단말기 등 증거가 무더기로 나왔다”고 한다. 이불 뒤집어쓰고 단파 라디오를 듣는 그림이 그려진 안보책자와는 맞아들어가는데, USB포트는 뭘까. 문제는 증거가 항상 한 지점만을 향하지는 않는다는 것(도대체 증거가 되는 컴퓨터 단말기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