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김수현[kimsuhj∂n] 고유명사.

쓰는 것마다 전설이 되고 쓰는 것으로 드라마 장르 이정표를 세운 대한민국의 독보적 드라마 작가. 1968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1972년 일일드라마 <새엄마>를 시작으로 줄기차게 드라마를 썼다. 지금까지 그녀가 쓴 드라마는 총 53편. 시청률 조사를 시작한 1991년에서 1년 뒤인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최고 시청률 30위 안에 김수현의 드라마가 세 편이 들어 있다. <사랑이 뭐길래>(2위·64.9%), <목욕탕집 남자들>(16위·53.4%), <청춘의 덫>(17위·53.1%)이다. 시청률 조사가 이뤄졌다면 대한민국 최고 시청률은 <사랑과 야망>, 2위는 <사랑과 진실>이리라. 당시 수도 사용량이 뚝 떨어지고, 찻길에 다니는 차가 없고, 전화 걸면 실례라는 말이 전설로 곁들여진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들은 전형이 되었다. 일일극과 주말극의 현대식 여자 가정과 보수적 남자 가정의 대립 구조나 결혼한 뒤 고군분투하는 여성 등이 김수현의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선보였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미니시리즈형)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확연하다. <사랑과 진실>은 출생 비밀 드라마의 원조이며, <청춘의 덫>은 미혼모를, <모래성>은 불륜을 다루며 파격이랄 만큼 앞서갔다.

여기에 리메이크 최다 작가의 기록도 경신 중이다. 1999년 <청춘의 덫>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사랑과 야망>이 리메이크됐고, 내년에는 1988년작 <모래성>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녀가 여전히 현역인 것은 리메이크 이유를 드라마 스스로 증명하게 한 것. 강제 종영됐던 <청춘의 덫>은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센세이셔널했고(“다 부셔버릴 거야.”), 부진한 듯 보였던 <사랑과 야망>은 시청률 상위권에 랭크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녀가 일상의 언어 생활에 미친 영향 또한 컸다. <사랑이 뭐길래> 이후 ‘~기에’로 써야 할 말의 자리를 ‘~길래’가 차지했다. 영어식 부정의문문 대답(“~하지 않았니?”라고 물으면 “응, 했어”라고 대답하는 식)도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시청자를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점점 자연스럽게 언어생활로 끼어들었다. 과거가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그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낼 수밖에 없다(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도전하지 않은 유일한 장르랄 수 있는 시트콤, 그중에서도 직장 시트콤을 함께 찍었던 옆자리 김수현 기자를 떠나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