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온 나라가 고교등급제 쇼크로 떠들썩하지만, 정작 ‘주범’으로 밝혀진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교정은 차분하다. 세 학교 총학생회가 교육부 발표 직후 학교 당국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도 학생들의 반응은 차갑다. 이는 중간고사 기간인 탓도 있지만, 고교등급제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공감하지 않는 학내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사진 / 박항구 기자)

연세대의 한 강사는 최근 자신의 강의 시간에 고교등급제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토론에 나선 학생들 중 상당수가 고교등급제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은 “학생들을 상대로 찬반 여부를 조사해봤는데, 찬성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라며 “강사님이 고교등급제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는데도, 학교간 학력차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들 중에는 이번 교육부의 발표를 ‘한건주의식’ 정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화여대 학보사의 한 학생기자는 “고교등급제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인데, 정부가 마치 병역비리 수사하듯 한건 터뜨리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학의 법학과 학생은 “수업시간에 고교등급제의 당위성에 대해 말하는 교수님도 계신다”며 “냉정하게 보면 분명 잘못된 일인 것 같은데, 다른 의견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교육부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고려대의 한 학생은 “우리 대학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어서 두 대학에 비하면 죄질이 가볍다. 그러나 고대이기 때문에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지적은 교육부 장관이 연세대 교수 출신임을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