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기업도시법’ 제정 일방통행 추진 중… 주요 경제·민생 의제임에도 치열한 찬반토론 없어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열린우리당은 10월17일 정책의원총회에서 기업도시법 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려다 일단 뒤로 미뤘다. 국가보안법 폐지·대안 등 4대 개혁입법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2주일 안에 당론화 절차를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법을 처리하겠다는 방침 자체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4대 개혁입법’에 밀려 부각조차 안돼
기업도시법(정식 명칭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복합도시 개발 특별법’)은 2003년 10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전경련은 “투자 활성화와 국가 균형개발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2004년 6월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이에 건설교통부가 건의를 수용해 법 초안을 마련한 것을, 열린우리당이 넘겨받아 의원입법 형식으로 ‘명의 변경’해 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열린우리당에는 이강래 의원(남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담당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있다.
기업도시법은 기업이 필요한 곳에 기업 주도로 도시를 개발하도록 하자는 게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즉, 그동안 정부 주도로 지방공단 따위를 조성했지만 시설과 여건이 맞지 않아 분양 자체가 저조한 현실에서, 아예 기업이 투자이전 계획을 갖고 자기 조건에 맞도록 직접 도시를 만들어보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기업도시 유형으로는 △산업교역형(제조업과 교역 중심) △지식기반형(연구·개발 등 사이언스파크형) △관광레저형 △혁신거점형(공공기관 지방이전 중심) 등이 거론된다.

△ 10월 17일 열린우리당 총회가 열렸다. 4대 개혁입법안으로 분주한 탓에 기업도시법은 뒤로 밀려났다. (사진 / 한겨레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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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시 법안은 사업 촉진을 위한 각종 특례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기업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초안에서는 기업이 땅 주인들한테서 필요한 땅의 50%를 협의해 사들인 다음 나머지 땅에 대해서는 수용권을 발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자금조달 면에서도 재벌개혁 차원의 장치인 출자총액제한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기업도시에는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외국계 교육기관 등을 지원하거나 허용하며 외국계 의료기관도 유치한다.
이 법안에 대해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은 ‘재벌특혜 종합선물 세트 법’이라며 입법 추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도시법은 민간기업에게 토지수용권과 처분권을 통한 개발이익 보장에서부터 포괄적 규제 완화를 통한 특례 조치와 세제 지원, 세금 감면까지 몰아주는 초강력 대기업 특혜보장법”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도시법 반대운동에는 경실련·참여연대·환경연합·녹색연합·전교조·보건의료단체연합·민주노총 등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이 법과 관련해선 ‘재벌 특혜 시비’ 외에, 능력 있는 재벌 기업들이 실제로 기업도시에 투자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냐라는 좀더 현실적인 의문도 나오고 있다.
제조업 감감… 골프도시 가능성?
재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삼성은 충남 아산 탕정지구에 독자적인 투자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나, 이는 기업도시법보다는 기존 산업단지 관련법에 따른 프로젝트이다. 기업도시법은 국가균형발전의 명분 때문에 수도권과 충청권은 대상지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에 대규모 신규 투자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따라서 현대차가 국내에 또 다른 대규모 투자를 할 여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도시법 제정에 적극적인 강봉균 의원(열린우리당·군산)도 기자의 물음에 “5대 기업, 10대 기업이 나서진 않더라도 컨소시엄을 형성해 지방에 근거지를 확보하려는 중견기업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다른 관계자는 “중견기업들은 기획력과 자금력이 부족해 기본적으로 기업도시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관광레저형 기업도시에는 일부 국내외 자본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테면 한반도 서남해안에 3~4개의 대형 골프 리조트를 조성하는 계획에 미국의 부동산 개발기업 등이 투자 의향을 내비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도시법이 제정되더라도 애초의 명분인 ‘첨단 제조업 투자’보다는, 골프장·카지노 등을 갖춘 복합 리조트 몇개가 더 들어서는 데 그칠 가능성마저 예견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에서는 ‘법 제정 찬성 일변도’의 흐름만 감지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0월10일 공식적으로는 단 한 차례의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어 건교부 초안을 거의 수정 없이 ‘자신들의 안’으로 확정했다. 위원장인 이강래 의원은 “개혁 성향의 386 의원들을 일부러 멤버로 많이 넣었는데 그들이 오히려 ‘이런 법안은 꼭 해야 한다’고 찬성해 이견을 조정하고 말 게 없었다”고 밝혔다. 태스크포스는 이강래·윤호중·전병헌·강봉균·박영선·우상호·김재윤·김태년·최철국·장경수 의원으로 구성됐다.
또한 열린우리당에서는 강봉균 의원이 ‘지역혁신-기업도시 정책포럼’을 만들어 법제정 찬성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이광재·서갑원 의원 등 청와대 출신 소장파 인사들이 주축인 신의정연구센터도 이 법 제정에 적극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강래 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이 국회의원한테 공장이나 공공기관을 유치해오라는 압력이 거세다”며 “수도권도 아닌 지방의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역 발전에 기여할 법안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내 지역구인 남원에도 기업도시를 유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경제·사회 정책이 정치의 최우선 의제가 될 수는 없는가. 9월 22일 건설교통부가 주최한 관련 공청회 모습. (사진 / 한겨레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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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의원은 “기업의 투자 부진 원인 가운데 70%는 사실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서’라고 봐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에서 나머지 30% 요인인 규제 완화 노력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지역구인 군산에 토지개발공사가 조성하고도 미분양 상태인 공단 터가 많이 있는데 이 터를 기업도시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설명들로 미뤄볼 때 의원들은 ‘경제가 나쁘다’ ‘정치가 경제를 살려야’라는 아우성에 시달리던 나머지 기업도시법을 ‘가뭄의 단비’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읽힌다. 그것이 전경련의 아이디어인 탓에 ‘대기업의 이익 위주로’ 흐르거나 ‘경제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점들은 따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찬성파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런 법을 통과시켜주면 참여정부가 반기업이니, 좌파니 하는 이야기를 안 들을 것 아니냐”라는 말도 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국가보안법, 과거사기본법, 언론개혁법 등을 둘러싼 내부 찬반토론이 그동안 치열했다. 그러나 기업도시법은 민생·경제 정책의 기조 수정 여지가 담긴 것임에도, 열린우리당에선 일부 의원들의 밀고 가기 외에 다양한 산업정책 대안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평소 개혁파를 자처해온 다른 의원들은 이 문제 자체를 잘 모르며 알더라도 어렵게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니 찬성파 의원 10여명의 주장이 곧바로 당론으로 이어질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냥 ‘찬성’한다고 경제가 사나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 이념적 문제보다는 경제와 사회 정책 문제를 정치의 최우선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아세아연구> 최근호). 경제와 사회 정책 토론을 통해 최적의 해법을 도출함으로써 민생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시급함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딱히 비범할 게 없는 이런 지적이 열린우리당에선 아직 충분히 먹혀들지 않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