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단층에 세워진 울진 핵발전소의 문제… 정부는 눈가림식 지진 조사로 ‘안전하다’ 주장
글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5월31일부터 6월1일까지 네 차례 연이어 경북 울진을 강타한 지진(기상청 관측 최대 기록은 리히터 규모 5.2)은 국내에서 지진이 관측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한반도 관측사 이래 최대 규모 지진
미국 국립지진정보센터(USGS NEIC)의 관측조사 결과(리히터 규모 5.3)로도 이번 울진 지진은 남북한을 통틀어 한반도 지진 관측사 이래 최대 기록이다.

△ 최근 강도 높은 지진이 잇따라 발생한 울진의 한 원전 모습. 울진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이 드러남에 따라 원전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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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발생 위치에서도 그동안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통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현재 울진에는 4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2기가 완공 단계에 있는데다, 산업자원부가 추가로 4기의 원전 부지까지 선정해놓은 상태다. 게다가 지난 5월 말에는 이곳 울진군의 3개 읍면 방사성폐기물 유치위원회가 산업자원부에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 청원까지 냈다. 이처럼 위험시설이 집중돼 있는 울진 앞바다에서 잇따라 지진이 일어났기에 울진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진이 한번 일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원전의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는 과장일 것이다. 실제로 원전 부지를 선정할 때는 원자력법상의 활성단층, 즉 과거 3만5천년 내에 1회 또는 50만년 내 2회 이상의 지각변동이 있었는지를 조사한 뒤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4개 원전 부지를 처음 선정할 당시 대부분의 활성단층 조사가 매우 개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국내 지질학계의 최대 쟁점이었던 고리 원전 인근의 양산단층만 하더라도 지난 1970년대 부지 선정 당시 지질시료 분석이 아닌 항공촬영에만 의지해서 활성 여부를 판단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내 지질학계는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정부 당국에 월성과 고리 원전 부지에 인접한 양산단층대의 활성 여부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해왔다.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는 지질학계의 문제제기에 대해 초기에는 사업자인 한전에게, 후반에는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 하여금 양산단층을 포함한 원전 부지 인근 단층들의 활성 여부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사업자가 발주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지진연구 용역에서 민간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과기부는 지난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양산단층이 활성임을 보여주는 근거로 과거 지각변동 연대를 조사한 결과를 제기한 학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과기부 산하 연구기관을 내세워 조사결과를 누락한 채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조사결과를 누락한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양산단층이 활성이 아니라는 근거로 조사한 단층의 길이가 짧다는 궁색한 발표를 함으로써 과기부 스스로 지진 연구의 객관성에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즉, 활성단층인지 여부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하기보다는 원전건설 허가에 임박해서 일정에 끼워맞추기 위해 연구과정을 왜곡했다는 문제가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된 것이다.
경보시스템 미작동… 안전설계 근거없어
과기부의 이런 태도는 지진 연구를 국가의 과학기술 육성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원자력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 정부기관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최초로 활성단층임이 판명된 인천 굴업도의 경우도 지난 1995년 당시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 부지로 선정된 이후에야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됐다. 지진 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질학자들은 당연히 연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신규 원전 허가 일정에 임박해서 연구에 참여할 경우 국내 지진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당 부지 역시 있는 그대로 연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원자력 발전과는 무관하게 정부 주도로 활성단층 연구조사를 추진해 국가적으로 활성단층 분포지도까지 작성하는 등 지진 연구 기반이 잘 확립돼 있다. 미국의 경우 역시 국립지진정보센터나 지진피해 저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체계적인 지진 연구조사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과기부는 울진 지진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올 들어 지진의 횟수가 부쩍 늘어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지진 횟수가 늘어난 것은 지진장비가 개선된 결과 미세한 지진까지 다 측정됐기 때문이고, 오히려 국내 지진 대응 시스템이 그만큼 선진화됐다는 방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했다.

△ 원전의 안전성 논란은 울진 주민들의 일상적인 공포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울진 주민들이 바다에서 갓 잡은 전어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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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이 지진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도 내진 설계가 충분하므로 원전 건설과 운영에 문제없다”는 식의 과신을 버려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의 원전 공급자들이 지난 1960~70년대에 활성단층 연구가 일천한 한국에서 일사천리로 원전 판매 수주를 끝냈던 그때, 미국에서는 활성단층 문제로 캘리포니아주 보데가만 원전건설 계획이 취소(1964)되고 디아블로 캐넌 원전은 건설기간이 계획보다 10년이상 늦춰졌다. 당시 미국의 원전사업자들 역시 이러한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와도 끄떡없다”는 식의 홍보를 했으나, 미국 사회는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내진 설계 홍보내용을 들어다보면 원전은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 일정 수준(중력가속도 0.01g)에 이르면 경보가 울리고, 더 심각한 수준(0.1g)에는 원전이 자동 정지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울진 원전 1, 2호기에서는 경보 시스템이 제때에 울리지 않아 울진 지역주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더욱이 내진 설계 시스템이 작동해 원전 가동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섭씨 수천도까지 올라가 있는 원자로 노심을 냉각하는 냉각 계통은 끊임없이 작동돼야 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 있는 홍보는 아니다.
원전개발용 벗어나 독립적인 종합조사를
따라서 정부는 국내 지진 연구 체계를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이나 원전 건설과 같은 원전 사업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또 국내 활성단층 연구를 신규 원전이나 핵폐기장 부지가 선정된 이후에 시작하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가 활성단층 정보시스템 구축 같은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국가 차원의 기초 지진 연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전력 공급 안정성 확보라는 명분 아래 무리한 신규 원전 건설사업과 핵폐기장 유치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