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31일 제503호
법과 현실의 괴리를 놔둬야 하나

탄핵 정국 이어지면서 의회권력 견제 · 대통령 이중 지위 · 국민 의사표현 제한 등 논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탄핵소추안 가결이 촛불집회를 거쳐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과 관련한 법과 제도의 일부가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식 삼권분립제도의 허점, 집회·시위의 자유를 골간으로 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이의 사회적 토론과 법적·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3월20일 열린 촛불시위에서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전경들. 촛불집회와 관련해 정부 당국은 무리한 법 집행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류우종 기자)

“삼권분립 제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먼저 탄핵 정국을 불러온 근본 원인으로서의 ‘탄핵제도의 허점’은 헌법적 차원에서 거론되는 논란거리다. ‘법치’라는 이름으로 사법적 판단이 최종심급에서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탄핵심판제도의 비민주적 본질에 관한 지적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인 최장집 교수는 지난 3월22일치 <교수신문>에 기고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의 상황을 두고 “오늘날의 탄핵 위기는 단순히 야당의 무모한 선택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의 결함과도 관련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최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대통령의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상이한 분할 정부적 상황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패턴이 됐고, 정부 대 의회의 대결 구조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의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정부의 작동 그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국민주권을 대표하게 되는 이런 이중 대표성의 문제는 대통령중심제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두 부문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한 삼권분립은 또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모델로 한 한국의 대통령제가 미국의 제도디자인과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3개의 정부 부문 가운데서 의회를 가장 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봤던 미국의 헌법제정학자들은 의회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제도디자인의 초점을 뒀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견제할 초강력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의 권력 제한 가능성은 경시됐다.”


△ 3월12일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이 헌법재판소를 찾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서를 제출하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국적 삼권분립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인 셈이다. 최 교수는 이같은 한계를 더욱 악화하는 원인으로 “보수독점적 정당 체제가 민주화 이후의 사회 변화를 대변하지 못하는 점”을 꼽았다.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의회 권력의 주체인 정당들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 그리고 기능적이고 계층적인 이익에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대표 기능과 유권자에 대한 책임의 고리는 더더욱 허약해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중의 참여·대표·책임의 원리가 정당을 통해 구현되지 못하는, 후진적 정당구조 자체가 파국적 정치 위기의 가능성을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국민주권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를 극복할 정치적 계기로서 총선이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 교수는 결론적으로 “총선 이후 새로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고 시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안들을 만들어내는 데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가 3월23일 나눔문화포럼에서 발표한 ‘탄핵소추와 한국민주주의-위기와 심화, 재앙과 희극의 갈림길에서’라는 발제 역시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의견을 선보였다. 그는 먼저 탄핵 문제의 권위자인 하버드 법대 라울 버거 교수의 견해를 소개한다. “대통령 탄핵은 극도의 조심성을 갖고 극단적 경우에 대해(with extreme caution in extreme cases) 행사될 때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당 성향에 따라 오염될 수 있음이 증명돼왔기 때문에 단지 격분한 다수의 동의가 아니라 ‘올바른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경우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이번 사태의) 최대 딜레마는 헌법재판관 9인의 판단 능력과 지혜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193명의 집단적 비이성을 보고도 9명의 현명한 이성을 기대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재판관들은 시민 또는 인민의 집합 의사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국민의 대표를 탄핵할 근거는 무엇인가.” 그는 이어 지금은 이전과는 다른 복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 “지금까지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충돌이라는 단순 구도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했지만 이제 정부와 의회의 충돌, 국민과 의회의 충돌, 의회와 법원의 충돌, 국민과 법원의 충돌이 중첩된 복잡한 문제에 당면했다”는 것이다. 좀더 정교하게 표현하자면 “정치적 수준에서는 대통령과 야당의 대결이지만, 법률적 수준에서는 입법 미비 상태의 표출이며, 근원적으로는 1987년 헌법 개정이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기성 정치세력들의 협약으로 끝난 결과”라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 3월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박관용 국회의장.(이용호 기자)

박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담론을 장악했지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의회 전제에 대한 견제이론이 더 발달했다고 지적했다. 의회가 인민주권과 민주주의 방향이 아닌 자신들의 제도적·정치적 이익만을 추구는 정치계급으로 변질됐을 때 이를 견제하는 수단과 방법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제 아래서 의회는 본질적인 권력 교체의 권한을 갖고 있는가. 아니다.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것은 권력 견제의 역할이며 본질적인 권력 교체의 주체는 오직 주권과 투표권을 가진 시민뿐이다. 근대 헌정주의 양대 원리는 ‘권력 분립’과 ‘시민적 권리’의 원칙이다. 따라서 의회의 정치 행위를 권력 분립 차원에서 의회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의회 견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박 교수는 이어 ‘법치’(법의 지배)와 ‘민주주의’(다수 지배)의 관계 문제가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법치로 인해 발전했으나 오늘날 법치는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제약한다. ‘다수지배’ 대 ‘법의 지배’ 사이의 갈등은 각각 투표와 법률을 자신들의 도구로 삼는 행위자들의 갈등이다. 의회정치는 시민정치의 연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투표 행위는 시민의 의사와 유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의회는 그 정치적 해결 능력을 상실한다. 결국 헌재는 시민사회의 의사를 받아들여 의회의 (탄핵)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를 위축시키지 않을 수 있다. 원칙적 문제(시민의 의사와 주권에 반함)와 절차적 문제(중대범죄 해당사항 없음, 관련 입법 미비)를 들어 의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하는 지혜로운 결론을 헌재가 수용해야 한다.”

박 교수는 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의 이중 지위(행정부 수반과 정당 지도자) 문제에 대한 입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회는 속히 대통령의 어느 부분이 행정 수반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이고, 어느 부분이 정당 지도자로서의 가능한 행동인지 명확히 입법해야 한다. 이런 규정 없이 선거법 위반을 추궁하고 징치하는 것은 입법 미비 상황을 근거로 위법성을 판단하는 극도의 논리 모순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입법 미비 상태에서의 탄핵 추진이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는 근본을 부정할 수 있으며 △대통령의 공개적인 정당 활동을 부정하여 과거와 같은 불법적이고 은밀한 여당 지원 활동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결론적으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민주세력은 탄핵 정국 이후 곧바로 공고한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 개정 구상과 노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현재의 국민 저항은 노 대통령의 구출보다는 그를 통한 민주주의를 구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후의 행동도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질 높은 민주주의 실현이어야 한다.”

건국대 임지봉 교수는 탄핵소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입법 미비를 개헌 없이 보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탄핵소추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헌법 65조와 국회법, 헌법재판소법이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헌법 1·2·3조에서 각각 자세히 관련 조항을 다루고 있을 만큼 구체적인 법 조항이 있다. 또 우리의 경우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는 즉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중지되는데, 미국이나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권한 정지가 되는 만큼 국회 탄핵소추안 발안 이전에 청문회 등 토론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도 그런 규정이 없다. 탄핵 사유에서도 탄핵할 만한 중대한 범죄의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탄핵 사유의 추가 문제, 탄핵소추안의 철회 문제 등도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헌법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탄핵 관련 특별법으로 일괄 처리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탄핵 국면에서 드러난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확대하자는 뜻에서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역시 기본적으로 개헌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1987년 헌법 이전에 규정돼 있던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도입’을 언급하는 의견이 일부 있지만, 권위주의 대통령 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 공무원노조의 민주노동당 지지로 벌어진 논란은 현실과 동떨어진 현행법의 문제를 보여준다. 공무원노조의 정기대의원대회.(충청일보)

한편 ‘탄핵 반대 촛불집회’의 불법 여부를 둘러싼 당국과 시민사회의 갈등, 네티즌들의 인터넷 정치풍자 창작물에 대한 사법 당국의 형사처벌 시도, 민주노동당 지지(전국공무원노조)와 탄핵무효 시국선언(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움직임 등도 현실의 급격한 변화와 기존의 법·제도·관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로 꼽힌다.

17대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 논의

촛불집회와 관련해 정부 당국은 무리한 법 집행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근거로 쓰인 집시법 10조(“누구든지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가 단서조항(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해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 한해 경찰서장이 옥회집회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두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이 언론·출판·결사의 자유와 함께 헌법이 규정한 4개의 주요한 기본권을 하위법인 집시법을 통해 지나치게 규제하려 했다는 비난을 샀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원봉사대를 만들어 집회의 형식과 내용을 자율적으로 ‘장악’하며 스스로 준법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한 집시법 개정 논의가 17대 국회 초반에 이뤄질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인터넷에서도 법과 현실 충돌

정치적 의사표현이 성숙해지는 현상은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서도 법·제도와 표현의 자유가 부딪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논란이 된 것은 다양한 정치풍자 창작물에 대한 수사기관의 처벌 시도다. 합성사진이 주류를 이루는 이들 작품에 대해 경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등 형사처벌에 나서고,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같은 움직임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문제가 된 풍자 합성사진과 함께 “나도 잡아가시오”라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정치적인 관심사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풍자나 패러디로 봐주지 않는 데 따른 반발인 것이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움직임에 대해 자치단체와 교육부가 공무원 중립 의무를 어겼다면서 이들을 처벌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헌법 정신에 따른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과 ‘현행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나 특정 정당과 특정인을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원천 금지한 현행법이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르고 있어 17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 개정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업무와 관련해 중립을 지키는 것이 본질이 아니냐”는 이들의 주장이 제도로 귀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탄핵소추안 가결이 가져온 ‘후폭풍’은 정치권의 판갈이만을 뜻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진적인 법·제도와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가치의 충돌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