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31일 제503호
불법 자금, 예전엔 세금 매겼다

현행법상 불법 정치자금에 과세하기 어렵다고 밝힌 국세청, 거짓말인가 무능인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 3월25일 서울중앙지법(형사합의 21부)은 지난 대선때 한화, 금호그룹 등에서 32억6천만원을 받은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상수 의원이 항소를 할 것이 확실하므로 아직 확정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써 이 의원 등 정치인들이 지난 대선 때 기업인들에게 돈을 받은 것이 불법이었음은 명백해졌다. 그렇다면 이미 받은 불법 자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법원은 이 의원이 받은 돈이 당에 전달된 돈이라는 점에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추징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형사처벌만 받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 참여연대 관계자가 국세청 앞에서 불법 정치자금에 과세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류우종 기자)

받은 돈 추징당해도 과세했다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도 당연히 과세를 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외로운’ 주장이 몇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정치인이 불법으로 받은 돈에 대해 “뇌물 또는 횡령에 의한 불법 소득으로 과세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열거주의를 채택하는 현행 소득세법상 과세에 어려움이 있다”고 과세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을 지휘하고 있는 재정경제부의 입장은 좀더 적극적이긴 하다. 김진표 전 부총리는 재직 당시 과세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불법 정치자금의 경우 대가성이 없으면 증여세를 부과하고, 대가성이 있으면 기타소득(사례금)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김 전 부총리는 당시 “과세를 하더라도 실익은 없다”고 주장했다. 불법 정치자금으로 확정될 경우 전액 몰수하도록 하고 있는데, 몰수를 하면 과세를 취소해야 하기 때문에 과세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금 문제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 집단인 국세청, 그리고 재경부 세제실장을 지내기도 한,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 전문가 김 전 부총리의 말이 실제 국세청의 과세 집행과 크게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국세청이 사례금에 대해서도 세금을 매겼고, 불법으로 받은 돈을 추징당한 사람에게도 추가로 세금을 매긴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94년 3월 ㅅ건설 주택기획부 과장이던 김아무개씨는 업무용 토지를 사면서 땅 주인 정아무개씨에게 부당한 청탁을 받고 사례비 명목으로 1억원을 받는 등 그해 9월까지 모두 10억원을 받았다가 4년 뒤 붙잡혀 배임수재죄로 기소됐다. 그는 1998년 7월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함께, 불법으로 받은 돈 10억원을 추징당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김씨가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기 전인 그해 6월 김씨가 받은 돈 10억원에 대해 5억7천여만원의 세금을 매겼다. 김씨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낸 것은 물론이다.

당시 김씨의 항변은 요즘 국세청과 재경부가 내세운 논리와 비슷하다. “받은 돈 10억원은 위법행위로 인한 소득이며, 추징금 확정판결을 받아 경제적 이득을 상실했다. 따라서 과세 처분은 위법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과거 대법원의 판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법원은 “추징은 원고의 금품 수수행위에 대해 부가적인 형벌이 가해진 것에 불과하다”며 “돈을 받은 이상 소득세법상 과세가 되는 소득은 이미 실현된 것이다”고 판결했다.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당시 법원은 “소득세법상 과세 대상이 되는 소득은 이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 이득을 지배·관리하면서 이를 누리고 있으면 된다”며 “비록 범죄행위로 인해 얻은 소득이라 할지라도 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타 소득에 해당하는 이상 (세무당국은) 적법하게 과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김씨는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같은 이유로 모두 기각당했다.

정치자금에 과세한 적 없어서…

이에 앞서 지난 1983년 10월 대법원은 ㅇ통상 부사장 권아무개씨가 회사 부동산을 판 돈을 착복한 사건에 대해서도 “불법으로 얻은 소득이지만, 소득이 있는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또한 국세청의 세금부과에 권씨가 불복해 낸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밖에도 지난 1997년 서울고등법원이 배임수재죄로 처벌받으면서 불법으로 받은 돈을 추징당한 사람에게 국세청이 소득세를 물린 것은 정당하다고 한 판결이 있는 것으로 참여연대의 조사결과 확인됐다.

국세청은 그동안 불법 정치자금이라도 대가성 있는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길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증여가 아니어서 증여세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가성이 있는 돈에 대해 소득세법상의 기타소득인 사례금으로 보고 과세를 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소득세법은 열거주의라 열거된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할 수 있다”고 과세를 회피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해온 국세청이 과거에는 ‘대가성 있는 돈’에 대해서도 기타소득(사례금)으로 보고 과세를 해왔던 것이다. 국세청은 과거 자신들의 행적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국민을 속여왔던 것일까?

참여연대 경제개혁팀 박근용 간사는 “김진표 전 부총리가 뇌물이든 불법 정치자금이든 형사재판을 받으면 몰수추징되니까, 과세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법원 판결문을 보면 몰수추징됐는데도 별도로 과세를 하고 있으며, 몰수추징과 과세는 상관이 없다고 분명히 해두고 있다”며 “이를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세청 관계자는 과세를 하더라도 불법자금을 받은 당사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끝나면 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과거에는 형사재판 판결과 무관하게 과세를 했다”고 강조했다.


△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희정(왼쪽,이용호기자)씨와 김영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오른쪽,한겨레이정용기자).

국세청이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과세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불법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세금을 매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이를 뒤집기가 불편한 것이다. 실제 ㅅ건설 김아무개씨는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불법자금을 받고 추징금 판결을 선고받은 국가지도자나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과 형평에 어긋난다”며 소송 이유를 대기도 했다. 국세청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밝혀낸 지난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의 규모는 한나라당쪽이 823억원에 이르고,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 32억원,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9억5천만원, 최도술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 11억원 등이다.

전문가 225명 “불법 정치자금 과세 대상”

국세청이 과세 회피를 위해 내놓는 마지막 카드는 늘 ‘정당이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 증여세를 매기지 않도록’ 한 상속 및 증여세법 46조다. 그러나 세법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합법적인 정치자금에 대해서만 세금을 면제하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해 국세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3월25일 최명근 경남대 석좌교수, 박원순 국세청 세정혁신추진위원장, 송쌍종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장, 나성린 한양대 교수, 유경문 한국납세자연합회 사무총장(서경대 교수) 등 조세와 법률 전문가 225명은 불법 정치자금도 과세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225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법이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사회적 순기능에 역행하지 않는 사람과 단체만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정당법과 헌법에서도 민주적 기본 질서를 해치지 않는 정당만을 보호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정당이 받은 돈이라고 과세를 하지 않는 것은, 조세정의를 수호해야 할 과세 관청이 조세정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세청과 재경부의 변명이 갈수록 궁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