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전투물자 하역 훈련에 이은 연합전시증원 · 독수리 훈련에 북한 강력 반발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남북 관계에 꽃샘추위가 몰아치고 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3월18일 정례 브리핑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남북 관계 꽃샘추위의 큰 원인은 한-미 군사연습이다.
3월 24일부터 사흘간 개성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철도도로연결실무협의회와 임진강공동수해방지실무협의회가 4월초로 연기됐다. 북한은 3월 22일 오전 전화통지문에서 “남측이 독수리합동군사연습과 연합전시증원연습(RSOI)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회담을 개최할 수 없다”며 군사훈련이 끝난 뒤 4월초에 개성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3월 29일 있을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먹구름이 꼈다.
요즘 북한은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에 대한 비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북한 군부까지 합세해 성토
“미국의 북침 전쟁 책동에 가담하여 대화 상대를 자극하는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남조선 당국의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배신행위이다.”(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3월21일치) “RSOI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대북 핵 선제 공격을 노린 북침 전쟁 도발 책동이다.”(3월19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합동 군사연습은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와 유관국들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배신이다.”(3월1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을 ‘북침 불장난’이라 비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군부까지 합세해 눈길을 끈다.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3월14일 “한-미 연합전시증원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대북 선제 공격을 노린 전쟁행위”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 “응당한 대응조치 준비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침 책동’이란 비판에 대해 한미연합사는 “두 연습은 방어에 중점을 둔 연례 연습이고 이 계획을 3월9일 북한에 사전 통보했다”라고 말했다. 올해 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은 3월22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된다. 이 연습에는 한국군과 미 본토와 태평양 주둔 미군 5천명, 항공모함 1척, 구축함 2척, 신속기동여단 소속인 스트라이커 부대 등이 참가한다.
독수리 연습은 1961년부터 정례적으로 열렸으며, 북한 특수전 부대의 후방 침투에 대비해 벌이는 한-미 연합 야외 기동연습이다. 이 연습은 후방지역과 병참선 방호, 특수전, 상륙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RSOI 연습은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된 뒤인 1994년부터 시작됐다. RSOI 연습은 한반도 유사시 투입될 미 증원군의 수용(Reception), 대기(Staging), 전방이동(Onward movement), 통합(Integration) 절차와 이를 지원하는 한국군의 전시 지원, 상호 군수 지원, 전투력 복원 절차 등을 컴퓨터를 통해 실시하는 연례 지휘소연습(CPX)이다. 한미연합사는 지휘소연습과 기동연습을 연계해 실전적인 훈련 기회를 갖기 위해 2002년부터 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을 통합 실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의 부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훈련에 대응해야 하는 북한의 출혈
RSOI 연습은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밀접한 관련이있다.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 등에서 미군 증원 계획을 갖고 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해 69만여명으로 구성됐으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육군 사단, 최신 전투기를 탑재한 항모전투단, 전투비행단, 오키나와와 미 본토의 해병기동군(Marine Expeditionary Force)을 포함한다.
미 증원 전력의 종류에는 신속억제방안(FDO)·전투력증강(FMP)·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이 있으며, 한반도의 위기상황 발생시 한-미 연합사령관이 요청하고 미 합참의 지시에 의해 부대 통합과정을 거쳐 전장에 투입된다. 다시 말하면 RSOI 연습은 한반도 유사시에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거 증강 투입될 미군의 사전 배치 훈련이다.
북한은 해마다 3월이면 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를 문제 삼았지만 올해 더욱 논란이 가중된 것은 3월8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경기 평택항에서 있었던 미 해병대의 ‘프리덤 배너 04’ 훈련 때문이었다. 프리덤 배너 훈련은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 해병 제3원정대 1만7천명이 한달가량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무기와 장비 등을 20시간 안에 특정 지역에 배치·하역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북한에 통보하지도 않았다. 평택항에서 벌어진 이번 훈련에서 미 해병대는 탱크, 상륙장갑차, 전투차량 406대, M198 곡사포, 컨테이너 등을 하역했다. 이 훈련에는 미 해병대 병력 등 8천여명이 참가했다.
올 ‘프리덤 배너 04’ 훈련이 예년과 다른 점은 두 가지다. 미군은 예전에 진해와 포항에서 전투물자를 하역하는 훈련을 했다. 올해에는 훈련지가 평택으로 북상했다. 북한 처지에서 보면, 공세적인 전력인 미 해병대 8천명이 코앞에 몰려와 한달가량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물자와 장비를 쌓아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 평화단체들은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들이 집결할 평택을 대북한 군사작전의 거점으로 삼아 대북 선제 타격력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미군 관계자는 “미 해병대가 벌이는 통상적인 훈련이기 때문에 북한에 통보하지 않았다. 평택항이 문을 연 뒤 미해병대가 하역 훈련을 한번도 하지 않아 적응훈련 차원에서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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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 평화네트워크 등은 한-미 군사연습 중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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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프리덤 배너 훈련 때는 장비와 물자, 무기 등을 하역한 뒤 일정한 시간 동안 부두에서 관리하다 다시 배에 싣는 것으로 훈련이 끝났지만 이번 훈련에서 평택항에서 부린 장비와 물자 등은 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 훈련장으로 이동 배치되어 사용된다. RSOI 연습과 프리덤 배너 훈련을 하러 미 해병대 병력 수천명이 평택에 들어오고, 한국과 미국 특전사 병력이 초고속 수송선을 타고 훈련을 하면 북한군에도 비상이 걸리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식량과 기름을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기름 부족으로 평소 전투기 비행 훈련도 거의 못하는 북한군이 맞대응을 벌이는 게 쉽지 않다. 북한 처지에서는 말 그대로 출혈이다.
시민단체 중단 촉구 공동성명
남한에서 군사연습이 벌어지면 북한군은 충분치 않는 내부 역량이 소모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계속적 군사 대응을 주장하는 북한 군부 등 강경파와 대응 자제를 주장하는 세력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난해 여름 알려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30의 뼈대가 갑작스러운 군사훈련 등으로 북한의 신경을 건드려 내부 역량을 소모시키고 분란을 유도해 궁극적으로 ‘김정일 체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평화네트워크 등은 3월18일 공동성명을 내어 “남북한의 첨예한 군사 대치는 언제라도 우발적 충동을 불러올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지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