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에서 한번도 전략문서 만든 적 없어… NSC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는 아주 중요한 시작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3월4일 90쪽짜리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를 공식 발간했다. 이 책자가 북한을 ‘직접적 위협’으로 표현하자 ‘주적 개념’ 폐기 논란이 불붙었다.
해묵은 주적 논란에 휩싸여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의 발간 의미는 전혀 눈길을 끌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종합적 안보정책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안보정책 방향에 대한 국론을 수렴하고 국론통합을 지향하는 안보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간 의미를 설명했다.
정부는 이 책자에서 국가이익과 국가안보 목표·전략기조 등 안보정책 구상을 밝혔다. 국가안보전략은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경제·외교·군사·정보 등 모든 분야의 국력 요소를 결집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관된 국가운영의 방법이다.

△ 참여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강화와 국가안보전략서 발간을 통해 체계적인 안보정책 수립에 나서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NSC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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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의 국가목표에 정책틀 맞춰서야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는 안보정책 ‘구상’ 수준으로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로 볼 수 있다.
역대 정권은 경제 분야의 전략문서를 발표한 적이 있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가안보전략 같은 전략문서를 출간한 적은 없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해온 한국에서 정부 수립 뒤 56년 동안 대통령의 안보 분야 비전을 반영하고, 각 부처의 이해를 조정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근거가 되는 외교·안보 전략문서가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껏 명시적인 국가전략 문서가 없다보니 국방부·통일부·외교부 등은 그동안 부처의 경험과 판단 등에 따라 각자 ‘알아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런 각개약진 상황에서는 부처 이기주의도 튀어나오고, 해당 부처의 조직논리가 국가이익에 앞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3월16일 국무회의에서 국가목표를 의결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이념하에 국가를 보위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여 영구적으로 독립을 보존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여 복지사회를 실현한다 △국제적인 지위를 향상시켜 국위를 선양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 등을 국가목표로 정했다. 하지만 이는 30년 전에 정해져 시의성이 떨어지고, 일반적인 목표만 제시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목표설정이 빠져 있다. 1988년 이후 <국방백서>가 발간돼왔지만 여기에는 경제·외교 등 비군사 분야의 전략이 없어 국가안보전략으로는 불완전했다.
군사 분야에서 5년마다 작성하는 국방기본정책서는 국가안보전략이 없기 때문에 1973년에 작성된 국가 목표에 맞추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대중 정부도 출범 초기 국가안보전략 문서 발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햇볕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격화되면서 국가안보전략 문서 발간은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에 의존하다 보니 안보전략 갖지 못해
미국은 안보 환경과 안보 위협을 평가한 뒤 국가이익, 국가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안보전략 문서를 작성한다. 이 국가안보전략에 따라 통일, 경제·과학기술, 국방, 외교, 사회 등 각 부처들이 정책을 추진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안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의 전략을 짜는 절차가 입법화되지 않으면 국가안보전략을 실제로 작성하기 어렵다.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은 1986년부터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왜 그동안 국가안보전략이 없었을까. 국가 지도자들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발전만 이룩한다는 국가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용섭 국방대 교수는 한국의 이런 상황을 키큰 선수 하나에만 의존하는 농구팀에 빗대 묘사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외교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 대통령임을 자부하기도 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외교·군사·정보 분야의 국력을 동원해 사용했던 것이다. 키큰 선수 한명에 의존하는 농구팀이 5명의 선수를 다 활용하는 농구팀에 질 수밖에 없듯이 그동안 우리는 국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군사·정보 분야를 통합·활용할 수 없어 국제경쟁에서도 뒤지게 됐다.”
정부 관계자도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기본틀이다.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기대는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한국이 국가안보전략을 고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세계전략의 큰 틀을 짜고 지역전략으로 동북아 전략을 준비하면 한국 정부는 전술적 행동에 충실하면 충분했을 뿐 ‘전략’까지 고민할 처지가 못 됐다는 것이다.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는 △북한 핵 문제와 군사적 위협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 동맹의 발전 △동북아 전략적 상호관계의 유동성 △세계화·정보화의 심화 및 지역협력 강화 △다양한 안보위협의 대두 같은 5가지를 대표적인 도전이자 기회요소로 파악했다. 정부는 이런 안보환경 속에서 국가안보를 달성할 전략기조로 △평화번영 정책 추진 △균형적 실용외교 추구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포괄안보 지향 등 4가지를 설정했다.
정부는 이런 전략 기조에 바탕하여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미 동맹과 자주국방의 병행 발전 △남북한 공동 번영과 동북아 협력 주도 등 ‘3대 전략과제’로 설정하고, △전방위 국제협력 추구 △대내적 안보기반 확충 을 ‘2대 기반과제’로 설정했다.
한용섭 교수는 <평화번영과 국가안보>가 자주적 군사력의 건설과 함께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추진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것은 북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우리의 군사력을 증강시킴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북한과 대화를 통한 위협 감소를 추진하는 양면 전략에 가깝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군비통제 정책을 국가전략 차원으로 격상시킨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잦은 등장은 '옥의 티'
첫 국가안보전략서 발간이란 의미에도 불구하고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먼저 책자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너무 많이 실려 눈에 거슬린다. 각 장과 절을 시작할 때마다 광복절 경축사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글 첫머리에 나온 것은 편집상의 실수를 넘어 국가안보전략 문서 발간의 의미를 가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초안을 작성하고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 등 외교안보·통일 부처들이 몇달 동안 토론을 벌여 완성한 국가안보전략 문서가 자칫 노무현 대통령 치적 홍보문서란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국가안보전략 문서가 대통령의 국회 보고나 대국민 연설 같은 형식이 아니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이름으로 발간된 점을 ‘흠결’로 지적하고 있다. 3월4일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언론대담 형식으로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를 발표했다. 다른 나라들은 대통령의 연설 형태로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한다.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에서 밝힌 ‘구상’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