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키르쿠크 공동주둔 요구로 다시 꼬이는 이라크 파병… 약속과 달리 작전권도 미 사령관 밑으로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말 많던 이라크 추가 파병이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은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국군 파병이지만 지난달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된 뒤 한동안 논란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군이 전담하기로 한 키르쿠크 지역에 공동 주둔을 요구하면서 이라크 파병 문제는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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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쿠크가 위험하다. 올해 들어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미군은 계속 소탕전을 진행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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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 미군’으로 보이면…
미국의 요구대로 될 경우 한국군이 특정 지역을 전담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며, 이라크 현지인들에게 한국군은 미군과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주게 돼 그만큼 파병 장병의 안전이 더 위험해질 전망이다. 파병을 추진해왔던 합동참모본부(합참)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국방부는 ‘한-미 동맹 불변’을 강조하면서 이라크 파병을 예정대로 하겠다고 말하지만, 공동 주둔 문제가 해결돼야만 파병이 가능한 형편이다. 미군은 이미 지난해 12월13일 사담 후세인의 체포를 계기로 키르쿠크에서 2인자였던 알 두리의 체포 등 대대적인 작전을 벌일 만큼 이 지역에 대단한 관심을 두고 있어서 한국이 우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형편이다.
미국이 당초 약속과 달리 말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은 키르쿠크 시내의 공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키르쿠크주(타밈주) 주요 도시 중 하나인 하위자에 미군을 계속 배치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한-미 약속은 키르쿠크주 전체를 한국이 전담하며, 한국은 이 지역에서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전과 달리 이라크 평화재건 사업에 몰두해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번복은 작전통제권이다. 당초 미국은 이라크 한국군에 대해 바그다드 연합합동군사령부(CJTF-7) 사령관인 리카르도 산체스 미 육군 중장의 작전통제를 직접 받도록 했다. 그러나 미군과 공동주둔 주장이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즉, 한국군이 키르쿠크주 일부만 맡되 연합합동군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키르쿠크를 관할하는 미 4사단 또는 곧 교체될 미 1사단의 작전통제를 받는 것이다. 이는 미군 사단이 한국군 사단을 지휘하는 꼴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군이 키르쿠크주 일부만 맡고 연합합동군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 안이 있으나 작전효율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미국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으며, 한국도 애초 약속과 달라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마지막으로 미군은 키르쿠크에서 한국군에 작전 배속되면서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나름의 소탕 작전에 나선다는 복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안은 이라크인들에게 ‘한국군=미군’이라는 인식을 주게 돼 합참은 고개를 저었다.
미국의 약속 번복은 키르쿠크의 현지 상황과 연결돼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저항세력의 공격이 극심한 ‘수니 삼각지대’(바그다드-티크리트-라마디)에서 집중 소탕 작전을 편 결과 여기에 있던 5천여명의 저항세력이 키르쿠크 지역으로 도피했다는 것이다. 합참 김장수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키르쿠크 지역에서 지난해 12월까지 박격포 공격이 하루 평균 2∼3회 이뤄졌으나 올 들어 급조 폭발물 설치, 미군 시설에 대한 기습과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등 저항세력의 공격 수법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키르쿠크 지역의 위험성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합참은 지난 2월에 발간한 ‘이라크 파병 길라잡이’에서 키르쿠크 지역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합참은 이 책자에서 “특히 키르쿠크 지역은 종족 갈등, 원유 이권 확보, 저항세력의 이동 가능성 등으로 앞으로 이라크에서 가장 복잡한 치안 상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확히 예측했다. 합참은 이어 이라크 저항세력이 시리아·터키·이란에서 잠입한 테러 분자와 연계해 키르쿠크의 송유관 정유시설 등에 대한 공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저항세력 5천명 키르쿠크로 도피해와
알려진 대로 키르쿠크는 이라크 석유매장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직경 40인치로 터키 세이한항까지 하루 110만 배럴을 보내는 송유관 등 각지로 연결된 송유관이 모여 있어 키르쿠크는 북부 모술과 함께 ‘석유 위에 떠 있는 도시’로 불린다. 저항세력들의 목표가 △미국과 동맹군 축출 △과도정부 전복 △원유 수출 저지 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키르쿠크는 저항세력이 놓칠 수 없는 지역이다. 합참이 키르쿠크 지역을 선정하면서 석유자원 확보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와 반대로 석유 때문에 매우 복잡한 지역이 되고 있다.
또 키르쿠크 유전지대 보호는 다국적 전문업체가 맡고 있으나 테러 공격 위험이 있을 경우 한국군이 재건활동이 주임무이지만 경계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현지에 비슷하게 분포된 쿠르드족(40%), 아랍족(30%), 투르크만족(25%)의 갈등으로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한국군이 지지해주길 원한다면 한국군은 중립 유지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합참은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한국군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비전투병이라도 과격세력의 표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한국군 파병 지역으로 키르쿠크를 선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 병력의 교대를 배려하다가 이런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부대가 키르쿠크에 주둔하는 미 173공정여단과 교대한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미 173공정여단은 지난 2월 말 철수했고 지금은 하와이에 주둔하던 미 25사단 2여단이 배치돼 있다.
설상가상으로 키르쿠크 지역의 저항세력에는 이라크 정예군단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다. 후세인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자 미군이 북쪽에서 내려올 것으로 잘못 판단해 이라크 정예군단을 수니 삼각지대 일대에 포진시켰다. 나중에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발한 미군은 무풍지대처럼 이라크 남부를 휩쓸며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북부에 남은 정예군단은 뿔뿔이 흩어져 잠재 저항세력이 됐다. 전후 이라크군 30~40만명이 무기가 회수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체됐으므로 이들 정예군단 출신도 무기를 갖고 있다. 이라크 암시장에서는 RPG-7로켓 71~357달러, AK소총 60달러, 권총 71~214달러, 기관총 214달러에 유통되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무기제조 능력도 있어 사제폭탄과 차량폭탄 등을 원격 조종해 대형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라크 중·북부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수니파로서 친후세인 성향이다. 키르쿠크주 북동부는 게릴라 활동에 유리한 산악지역이기도 하다. 경보병 장비로 파병되는 한국군에게는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이라크 남부는 폴란드와 영국이 담당하고 있고, 바그다드를 포함한 중부를 한국이 맡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북부 지역을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파병 군대를 전차와 전투헬기 등으로 무장한 중보병 부대로 바꾸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지난 3월4일 미 워싱턴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에게 “이라크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므로 한국군은 위험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군이 그 정도의 무력으로 키르쿠크에 온다는 것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군쪽 “한국군 무장상태 부족하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라크 현지에서 순찰에 필요한 험비 차량의 제공을 거부했다. 험비 차량은 지프보다 더 큰 형태의 전투 차량으로 기관총 등을 장착할 수 있고 수류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갑을 갖추고 있다. 시가지 순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미군도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군에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헬기는 수리부속과 정비요원이 뒤따라야 하므로 또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 특히 이라크는 미세한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곳이어서 헬기 정비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중장비 부대 파견은 ‘피는 피를 부를 뿐’이라는 격언을 되새기게 한다. 이라크 파병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