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경제 > 재계오디세이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2년08월14일 제422호
보세 옷가게의 성공담

[이랜드]

패션·유통 기업 이랜드의 역사는 1980년 이화여대 앞 ‘잉글런드’라는 2평 남짓한 보세 옷가게에서 출발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창업주 박성수(49) 회장은 단골고객을 바탕으로 놀라운 사업수완을 발휘하면서 속속 점포를 늘려갔다. 6년 뒤에는 주식회사 이랜드(E·LAND)로 회사를 따로 차려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당시 이랜드는 박 회장 주변의 대학 및 교회 사람들의 의기투합으로 설립됐다. 기독교 기업으로서 이랜드는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끝맺는 신앙공동체였다. 박 회장 역시 기업을 선교사역의 일환으로 여겼고, 이에 따라 대기업에 다니던 크리스천 가운데서 이랜드의 기업문화를 보고 이랜드로 직장을 옮기는 사례도 많았다.

중저가 캐주얼이란 틈새시장 공략을 내건 이랜드 전략은 ‘역사의 복권’이 맞아떨어지듯 시대의 흐름을 탔다. 80년대 중반 학원자율화 조처로 학생들이 교복을 벗고 캐주얼을 입기 시작하면서 비약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구멍가게에서 태동한 이랜드는 15년 만인 95년 8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대기업들까지 캐주얼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랜드의 성인 캐주얼 브랜드는 실패를 거듭했고, 급기야 97년엔 부도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러나 미국의 연기금펀드인 워버그 핀쿠스로부터 3300만달러를 유치하면서 간신히 살아난 이랜드는 이때부터 ‘지식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성장을 거듭하면서 한때 30개 법인, 50개 브랜드에 이르렀지만 경영위기를 겪은 뒤 8개 법인 32개로 정리했다. 대표적 브랜드로는 (주)이랜드(이랜드·푸마·브렌따노·언더우드·헌트·스코필드 등), (주)리틀브렌(이랜드주니어·베이비헌트·헌트인너웨어·언더우드스쿨 등), (주)이엘인터내셔날(로엠·로이드·피자몰 등), (주)2001아울렛(켄싱턴스타호텔 포함), 그리고 (주)이랜드개발 등이 있다. 패션·유통 전문기업이지만 건설·식음료·여행·호텔 등 이른바 ‘의(衣)·식(食)·주(住)·미(美)·휴(休)’에 모두 진출한 셈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