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2003년10월29일 제482호 

‘경계인’도 못 품는 쩨쩨한 나라

김형태 변호사의 송두율을 위한 변명… 10년쯤 뒤 되돌아보면 우스꽝스런 소동에 불과할 터

경계인도 못 품는 째째한 나라. 10년 뒤 송두율 교수 구속 사건은 어떻게 남을까.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로 기록되지 않을까 송 교수의 변호인 김형태 변호사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송두율’이란 이름 석자에 온 나라가 오래도록 시끄럽다. 남쪽 대통령이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린 일도 이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엊그제 누가 인터넷 서신을 보냈다. 변호사가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빨갱이 변론해서야 쓰겠느냐고. 송 교수는 가난뱅이고 나에게 변론을 부탁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기획입북 의혹까지 받고 있는 터라 10원짜리 한장 낼 수 없으니 변론비 받기는 아예 글렀다.

몇년 전 신부, 수녀님들과 물자지원 협의를 하러 북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북의 어떤 이가 나더러 그랬다. “임수경, 문규현 신부 변호한 것을 북쪽 인민들이 고맙게 여기고 있다. 좋은 날이 오면 꼭 보답하겠다.” 같이 갔던 이가 그 말을 듣고 내 걱정을 해주었다. “변호사님 큰일났네요. 이제 서울 가면 잡혀갈 거예요.”


사진/ “우리는 그를 맞을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격동의 한달, 그 여러 풍경들. 웃음 띤 얼굴로 가족들과 함께 귀국한 그는 결국 계속되는 검찰의 소환 끝에 구속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김진수기자,박승화기자,김태형기자,김종수기자/위부터).


그는 너무 일찍 돌아온 걸까

송 교수 변론비를 받을 데가 없으니 자본주의 변호사인 내 처지가 딱하다. 나는 빨갱이 변론하지 말라던 그이에게 답신을 보내려 했다. 돈 한푼도 안 받았노라고. 아니 못 받았노라고. 그런데 잠깐 생각을 돌이켜보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돈도 안 받고 빨갱이 변론하는 것으로 보아 당신도 틀림없는 빨갱이라는 답신이 올 게 분명했다. 아무 답변도 안 했다.

요즈음 하늘 참 넓고 높다. 구름 한점도 없다. 어느 산골 아이가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 목 터져라 불렀을 애국가 세 번째 절 그대로다. 그런데 이 ‘공활하고 높고 구름 없는’ 가을 하늘 아래 우리네 살림살이는 참 좁쌀 같고 밴댕이 속같이 쩨쩨하다.

‘애국가’를 풀어쓰면 나라 사랑 노래일 터. 나라가 무엇일까. 도대체 나라가 무엇이관데 50년 전 남과 북 둘로 나뉘어 수백만명이 죽어갔고, 이제 또 이라크라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딴 나라 백성들과 싸우러 우리 젊은 청춘들을 보내려는가.

그 옛날에도 우리 할아비들은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었다. 나라는 핏줄보다 더 무서운 게 틀림없다. 당나라 군대까지 끌어들여 같은 핏줄을 몰아댔던 일이 슬프다고 하면 범죄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공안당국은 이 ‘슬픔’에서부터 미군 철수를 유추해내고 보안법을 들이댈까 겁난다.

세 나라가 목숨 걸고 싸우던 그 시절, 불가의 가르침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왔다. ‘너 없이 나 없고 나 없이 너 없어 서로가 기대어 있다’(緣起·연기)는, 그래서 ‘서로 더불어 살라’(相生·상생)는 가르침을 전하러 신라에 갔던 고구려 스님이 첩자로 몰려 죽는 일은 없었을까.

천수백년이 지나 경주 최씨 내 친구가 고구려 사람 왕산악을 제 할배로 여기듯이, 또 천수백년이 지나면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을 처단하라 목청 높이는 이의 손자가 송 교수를 제 할배로 받아줄까.

송 교수는 아직 준비도 안 된 이 땅에 너무 일찍 돌아왔다. 본인도 준비가 안 되고 북도 준비가 안 되고 남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북은 그를 부르주아 철학자로, 머리를 뜯어고쳐야 할 회색분자로, 남은 그를 경계를 얼쩡거리는 빨갱이로 보았다.

통일운동을 한다는 남쪽 사람들조차 노동당 입당 소리에 놀라 좀처럼 그에게 손 내밀지 않았다. 경계인도 못 품으면서 저 북에 있는 ‘빨갱이 원조들’과는 어찌 통일을 논할꼬.

그의 삶에 대해 감히 한마디 하면…

송 교수 부친은 독일 유학 떠나는 아들에게 ‘세계인’이 되라는 당부를 했다. 아들은 그 뜻을 받들어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도 충성하지 않는 ‘경계인’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경계인’을 박쥐 같은 ‘회색인’으로 오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는 경계인에서 서로 다른 두 사회나 문화를 함께 연결시키는 적극적 역할을 자임한다. ‘네가 없어져야 내가 있다’는 잘못된 ‘국익’ 중심의 사고를 깨고, 나와 다른 너를 서로 받아들이자는 그의 경계인의 철학은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에 닿는다면 너무 나아간 것일까.

온 나라가 그를 거짓말쟁이라 욕하고 마침내 감옥에 가두기까지 한 이번 일은 어찌 보면 그의 업보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 현실에 뿌리박지 않고 ‘세계인’ 같은 보편이 나올 수는 없다. 송 교수의 변호인으로서 ‘세상이 다 그를 버려도’ 끝까지 ‘빨갱이’를 변호할 터이나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의 삶에 대해서 감히 한마디 하고 싶다.

남이 되었건 북이 되었건 어느 쪽 현실에 구체적으로 뿌리박고 그 현실이 주는 고통에 책임 있게 동참하고 겪어내는 데서부터 그 현실을 비판하고 남과 북의 상생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남과 북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유랑하는 화란인’ 같은 슬픈 존재다. 이제 그는 이 땅에 뿌리내리려 한다. 이 선택을 두고 북을 버리고 남에 전향했다고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양쪽 모두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일 뿐이다.


사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선영에서 조부의 묘에 술을 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송두율 교수. 그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연합)


그는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음모를 꾸밀 위인도 못 되고 그저 세계인을 지향하는 유약한 샌님 학자일 뿐이다. 수개 국어에 능통하고 석학 하버마스로부터 전수받은 이론이 출중하다 하나 이제 감옥에 갇힘으로써 비로소 남북 분단의 고통에 동참하고, 남과 북에 책임을 지고, 그리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첫걸음을 뗀 셈이다.

삼국시대까지 돌아갈 것도 없다. 십수년 전 문규현 신부는 휴전선에 서서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고 두 주먹을 공중에 휘둘렀다. 정치권이며 언론이며 온 나라가 문 신부뿐 아니라 그가 몸담은 가톨릭교회 전체를 빨갱이로 몰았다.

이 땅에 뿌리박고 진정한 세계인으로

법정에선 성난 노인들이 지팡이로 문 신부며 변호인들을 때렸다. 이제 그는 남쪽은 물론 북쪽 사람들에게도 남북의 화해와 상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지금 여기’ 이 현실에서, 송 교수는 그를 간첩이라 욕하는 이나 공안당국에게도, 그리고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증오를 일깨우고 괴로움을 주는 걸림돌이다. 그러나 10년쯤 세월이 흐른 뒤 ‘지금 여기’를 돌이켜보면 온 나라가 홀려 돌아간 한바탕의 우스꽝스런 소동 또는 에피소드일 터다.

송 교수는 어떻게든 추방되지 않고 감옥에서 몇년을 사는 한이 있어도 이 땅에 뿌리박고 진정한 ‘세계인’으로 거듭나려 한다. 그는 지금의 처지를 예상한 듯 2000년 6월14일치 한 신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통일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 것이고 서로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각각 자기 속에 있는 타자로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와 똑같지 않으면서도 남이 아닌 타자로서 상대방을 대할 때 남과 북은 관점을 서로 바꾸어 볼 수 있는 합리성과 함께 관용과 여유를 배울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요즈음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들이며 언론이며 국정원 직원이며 공안검사인 저들이 아직도 냉전 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나는 과연 저들을 내 안에 있는 남이 아닌 타자로, 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들로 받아들일 자세는 되어 있는 것일까.


김형태 | 송두율 교수 변호인
(사진/박승화기자)

  • ‘공안부 검사’도 법조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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