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기고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1년03월27일 제352호
“김훈련병 미안합니다”

집총거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2년형을 선고했던 나의 군법무관 시절… 이제 변호인단 구성에 나서기로


임종인/ 변호사

10년 동안 잊고 지냈다. 최근 <한겨레21>에 실린 양심적 병역거부기사를 보고 군법무관 제대 뒤 잊고 지내던 여호와의 증인들을 기억해냈다. 법무관 시절 징역 2년형을 주었던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었고, 평화주의자들이었다. 나는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선량한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군법무관으로 있을 때 이들에게 일률적으로 형벌을 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바쁜 변호인 생활에 쫓겨 까맣게 잊고 지낸 것이다. 억울한 학생, 재야인사, 노동자들 변호는 나름대로 많이 했는데, 같은 양심범인 이들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선하고 맑았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법무관으로 있었던 80년대에는 집총을 거부해 구속된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고등학교 졸업 뒤 육체노동을 하다 군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법무관으로 논산훈련소에 근무할 때 서울의 명문대학에 재학중인 김아무개 훈련병이 나에게 여호와의 증인들이 왜 집총을 거부하는지를 조용히, 침착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한 적이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 육군교도소 전경.(사진/ 이용호 기자)

그는 모든 사람이 총을 들지 않으면 남북한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듣고, 그에게 너의 뜻이 이 세상에서 관철될 날이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군사재판에서는 군판사인 군법무관 외에 일반 장교인 소령이나 중령도 심판관으로 재판에 관여한다. 그런데 김 훈련병 재판에서 나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중령 한명이 심판관으로 참여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곧 심판관과 김 훈련병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심판관이 “왜 총을 받지 않느냐”고 묻자, 김 훈련병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입각해 자기 견해를 밝혔다. 그러자 심판관은 버럭 화를 내며 나무랐다. “너는 빨갱이다. 아니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이다. 네가 밥 먹고 사는 것은 우리 같은 사람이 나라를 굳건히 지켜주기 때문이다. 네가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도 다 그 덕이다.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다니, 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그러자 그는 침착하게 다시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그 심판관은 더 크게 화를 내며 자기 주장을 반복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심판관의 말은 그 당시 군복무를 오래한 군인들의 일반적 생각이었다.

실제 재판에서는 이런 논쟁조차 매운 드문 일이었다. 일률적으로 의례적인 질문과 짧은 답변으로 재판은 끝나버렸다. 일단 검찰관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가? 집총을 하고 군사훈련을 받으라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가?”라고 물으면 피고인이 “그렇다”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다시 한번 군판사가 집총거부의사를 확인하고, 피고인이 간단히 최후진술을 하면 재판이 끝난다. 미래가 창창한 청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는 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번도 여호와의 증인을 위해 군법무관인 국선 변호인말고 일반 변호사가 선임돼 이들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이들은 항소도 하지 않는다. 매년 20대 초반의 건장한 젊은이 500여명이 ‘정찰제’ 3년 징역형을 무저항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80년대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총 받기를 거부하면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거부했다고 하여 군형법 44조 항명죄 위반으로 그 당시 법정 최고형인 2년형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90년대 초부터 상관이 총을 두번 주어 두번 다 받기를 거절하면 경합범이라고 하여 최고형의 2분의 1을 더 늘려 3년형을 선고하였다. 먼저 여호와의 증인신자에게 군복을 지급할 때 총을 주고, 다음 날 훈련할 때 또다시 총을 주어 거절하면 두번 거부로 간주해 경합범으로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해괴한 법 적용이었다. 어차피 총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두번 총을 준다고 한번은 받고, 한번은 안받겠는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두번 거부하면 3년형” 해괴한 법 적용


△ 재소자들. 한해 약 500명 정도의 집총거부자들이 무조건 형을 사는 일이 없도록 민변 소속 변호사들 10명이 변호인단을 꾸릴 계획이다.(사진/ 이용호 기자)

일부 군법무관이 군장성들의 투철한 군인정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총을 안 받느냐, 이런 나쁜 놈들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장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에 영합하여 개발한 해괴한 법 적용이었다. 이를 계속 유효하다고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1992년 9월14일 선고한 92도 1534 대법원 판례는 “상관으로부터 집총을 하고 군사교육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고도 여러 번 이를 거부한 경우에는 하나의 항명죄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횟수만큼 항명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많은 군법무관들이 이는 너무 어색한 법 적용이라고 지적하자, 94년 아예 군형법 44조 항명죄의 최고형량을 3년으로 높였다. 그뒤로 지금까지 계속 3년형을 선고하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군 의무 복무기간은 2년6개월에서 2년2개월로 줄었는데, 집총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들의 형량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일부 법무관들은 오래 전부터 현행법상 대체근무제가 없으니 여호와의 증인을 어쩔 수 없이 항명죄로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형량이 군복무기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군복무 대신 형벌을 받는 것이고, 교도소 생활이 군복무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징역 2년도 길다고 생각했다. 군법무관이었을 때 이같은 고민을 했지만 현실 재판에서는 기계적으로 2년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후배 군법무관들도 기계적으로 3년형을 선고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여호와의 증인 수는 8만8천명이고, 1년에 약 500명 정도가 집총거부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젊은이 1천5백명 정도가 같은 죄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심범으로 형을 살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국민적으로 이렇게 무관심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독재정권시절 민주화를 주장하다가 1천5백명이 징역 3년형을 받고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무관심하였을까. 수혈거부 등으로 여호와의 증인신자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우리나라에 사상의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역사적으로 없었던 탓에 여호와의 증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많은 국민들은 생각한다. 뿌리깊은 반공주의는 처벌을 정당화하는 또다른 배경이다.

헌법소원도 제기할 계획… 의원들도 나서길

징병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양심상의 이유로 전쟁을 반대하고,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을 징집할 것인가, 만약 징집을 거부할 경우에 범법자로서 처벌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1, 2차세계대전 뒤 세계 각국에서 문제가 되었다.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만 등 30여개국에서 헌법 또는 법률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전쟁거부에만 병역거부를 인정하지만, 스웨덴 등 많은 나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무기사용으로부터 일어나는 중대한 양심적 고뇌도 포함하고 있고, 독일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세계 최초로 헌법에 명시했다.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근거로서 종교적 이유만이 인정되던 것이 최근에 와서 도덕적, 인도적, 정치적 동기에 의한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인가 여부로 입법 정책상의 쟁점이 옮아가고 있다.(유남석, <양심상의 병역거부에 관한 법적 고찰>, 1985, 군사법연구 3집 육군본부 법무감실 발행 참조)

이제 우리도 평화를 주장하는 종교적 이유에 의한 병역거부 정도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변화, 민주주의의 성숙, 현대전의 군 인력형태의 변화가 그 배경이다. 생각깊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간절히 기대한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사상의 자유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나와 이기욱 변호사를 비롯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동료변호사 10여명은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변호인단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변호인도 없이 재판받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변론할 것이다. 또한 우리 변호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평화주의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옹호하고, 항명죄 처벌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우리나라 헌법 19조 위반이라는 헌법소원도 제기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