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09월11일 제42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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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환] 삶은 계속된다, 잔해를 헤치며

수마가 할퀴고 간 강릉 수해현장 자원봉사 체험…흙탕물과의 투쟁은 밤새워 계속됐다


△ 수마가 할퀴고 간 강릉시 내곡동 수재현장은 전쟁터의 모습 그대로였다.

주민들에게 자칫 방해나 되지 않을까.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피해규모 앞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초보 자원봉사자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 없었다.

대관령 5호 터널을 지나면서 수마가 할퀴고 간 상흔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지반이 무너져내린 도로는 그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고속버스를 집어삼킬 기세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허물어져내린 산자락은 거센 물살과 뒤엉켜 알곡이 패기 시작한 논을 덮쳤다. 황금빛으로 물들어야 할 드넓은 들녘은 모래펄로 변해 있었다. 밑동째 뽑힌 나무는 앙상한 모습으로 길가에 누워 있었다. 구호물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창 밖으로 바쁘게 스쳐갔다. 나는 수해현장에 다가가고 있었다. 가슴이 뻐근했다.

황토가 점령한 먼지의 도시

9월3일 오후 1시께,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도착한 강릉은 거대한 ‘먼지의 도시’였다. 폭우를 타고 시내로 진출한 황토는 점령군과 같았다. 염치없이 그대로 도로를 차지하고 앉아 도시를 온통 황사로 뒤덮고 있었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차량이 질주하며 일으키는 황사바람은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의 갸냘픈 호흡기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잰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릉시청에 들어서려는데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건장한 사내들이 곳곳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시청사 12층에 마련된 재난상황실에 도착해서야 대통령 일행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출발 전날 “내려와서 전화하라”던 자원봉사센터 관계자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구호물품 접수처와 여성복지과 등 전화기 건너편 목소리가 계속 바뀌었지만, 담당자들은 모두 ‘잠깐’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대통령 일행이 떠나기 전까지 그렇게 하릴없이 서너 시간이 지나갔다. 어렵사리 강릉시종합자원봉사센터 박인균 기획개발실장을 만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대관령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강릉시를 관통해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남대천은 이번 수해의 중심지다. 남대천을 따라 내곡동·포남동·성남동 등 수해지역이 길게 이어져 있다. 첫번째 자원활동을 위해 도착한 포남동은 입구부터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구점 앞에는 흙탕물로 범벅이 된 소파와 탁자 등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물에 잠겼던 냉장고·세탁기 등을 집 밖으로 꺼내놓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동네 일대가 완전히 물바다였어요. 제가 운영하는 피아노학원도 바로 거긴데 1층 전체가 물에 감겼었죠. 피아노는 건반이 모두 뒤틀려서 하나도 못 건지게 생겼습니다.” 박 실장이 마치 남의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미 버리게 생겼는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요. 자원봉사라도 해야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잇는 동안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포남1동 태평양노래방을 작업장으로 정해준 그는 바삐 또다른 자원봉사자를 태우기 위해 차를 돌렸다.

주인 김상중(49·강릉시 강문동)씨를 따라 내려간 지하 노래방의 철제 출입문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집과 가게 모두 물에 잠겼다. 생계 때문에 물에 잠긴 집은 정리도 못하고, 사흘째 밤낮으로 가게에 나와 물을 빼고 있다.” 김씨는 허망하게 웃으며 캔 맥주를 들이켰다. 양수기를 동원해 꼬박 하루 반나절 동안 물을 퍼올렸다지만, 바닥은 여전히 흙탕물로 흥건했다. 물기를 말리기 위해 켜놓은 2대의 석유 난로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진흙과 어울려 칙칙한 냄새를 풍겼다.

“둥둥 떠오른 집기를 보니 죽고 싶었다”


△ 정인환 기자. 흙탕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씻어내기 위해 옮기고 있는 모습.

김씨의 부인 이옥화(44)씨를 따라 고무장갑을 끼고 스펀지와 쓰레받기를 손에 쥐었다. 양동이를 가득 채우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퍼올리고 다시 채우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사이 조금씩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쪼그리고 앉아 남은 물기를 스펀지로 빨아들인 다음 양동이에 짜내고 다시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1시간여 만에 조그만 방 하나에서 물기를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8월31일에도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했어요. 집에 돌아가 막 쉬려고 하는데 ‘건물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고 건물주가 전화를 하더군요.” 다급히 돌아와보니 지하층은 이미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텔레비전과 의자 등 집기가 둥둥 떠오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씨는 “딱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출까지 받아 9천여만원을 들여 노래방을 시작한 것이 4개월 전이다. 이번 수해로 2천여만원어치 노래방 기계는 모두 버려야 할 판이고, 나머지 집기도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숨을 내쉬던 이씨가 천천히 걸레를 다시 잡았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밤 9시에 다가서고 있었다. 주인 김씨가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도저히 피곤해서 안 되겠다. 오늘은 그만하자”고 무겁게 입을 연다. 가게 안의 물기는 조금씩 가시고 있었지만, 거꾸로 김씨의 몸은 젖은 솜이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기를 다 빼내고 내다놓은 집기를 들여놓기까지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할까. 어두워진 골목길을 끼고 시청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먼지는 여전히 숨쉬기를 방해했다.

이튿날 아침. “늦어도 9시까지 12층 재난상황실로 나오라”던 말과는 달리 자원봉사센터는 9시가 넘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일찌감치 도착한 자원봉사자를 내보낼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각지에서 자원봉사자가 몰려들고 있었지만, 정작 이들을 피해주민과 연결해줄 수 있는 통로는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만에야 “10시30분에 박 실장이 데리러 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 맹행일(60)씨, 부산에서 온 30대 김아무개씨-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와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2명의 자원봉사가가 합류했다.

이날 작업장으로 배정된 곳은 수해가 가장 극심하다는 내곡동의 남산초등학교였다. 학교에는 수해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임시거처가 마련돼 있었다. 운동장에는 물에 잠긴 전자제품을 수리해주기 위해 나온 업체들의 커다란 천막 사이로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 등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학창시절 ‘유흥비’ 마련을 목적으로 가끔씩 나갔던 ‘일용 건설노동’을 떠올리며 동료 자원봉사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이재민 숙소를 청소하라”는 뜻밖의 작업지시가 내려졌다.

짐이 되는 '높은 분'의 행차


△ 자원봉사자들이 군장병과 함께 구호물품을 나르고 있다.

3층짜리 건물 곳곳에는 환자처럼 보이는 이재민들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마땅히 청소할 것은 보이지 않았다. 빈 병과 빵봉지 같은 쓰레기도 한쪽에 가지런히 치워져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계단을 오르던 서진교(21·춘천시 온의동)씨가 “청소할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야 “적십자사 서영훈 총재가 오후에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한 자원봉사자는 “누군가 ‘높은 분’ 오신다고 쓸데없는 짓을 한 모양”이라며 혀를 찼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일행은 마을 뒤편에서부터 쓰레기더미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가구와 공사장에서 쓸려내려온 듯한 자재들이 쓰레기와 뒤엉켜 골목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주민들은 집 앞에 쌓아뒀던 가구며 옷가지, 가전제품 따위를 손으로 큰길가까지 옮겨놓아야 했다. 방안을 뒤덮은 진흙더미를 걷어내지 못해 잠잘 곳조차 없는 주민들은 그렇게 입을 것과 먹을 것까지 하나하나 떠나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바삐 움직이던 퇴직교사 최명규(65·강릉시 사천면)씨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자”고 제안했다. “개천은 복개를 해버리고, 굽이굽이 흐르던 강은 직선으로 만들다 보니 물살이 빨라졌다. 이런 걸 발전이라고 여기고 살다 보니 물난리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비가 온 것도 처음이긴 하지만 마구잡이 개발로 벌어진 일이니 인재는 인재다.” 20여년째 복용한다는 혈압약을 입에 털어넣으며 최씨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요행히 수해를 피했다는 그는 “늙었다고 그냥 두고볼 수 없어” 이날부터 자원봉사자로 나선 참이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서 골목길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쓰레기는 모두 큰길가로 자리를 옮겼다. 높다랗게 쌓인 흉물스런 쓰레기더미를 뒤로 한 채 천천히 남산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십자 주부봉사대가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자원봉사센터에서는 기별이 없었다. 여전히 도로 곳곳이 막혀 있는데다 대중교통도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걸어서 자원봉사자 숙소가 마련된 시청에 들어설 무렵 이미 사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물에 떠내려간 형의 주검을 찾아

시청사 지하 1층에 있는 ‘산림공익요원 대기실’에 자원봉사자 임시숙소가 마련됐다. 맹행일씨는 “어제는 2층 휴게실에서 안산노점상연합회 자원봉사단과 함께 잤는데 새벽녘에 추워서 잠을 설쳤다”며 “오늘은 덮을 이불까지 생겼으니 잘 자게 생겼다”며 웃었다. 12층 재난상황실로는 이날도 해병전우회에서 아파트부녀회까지 단체 자원봉사단은 물론 여중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수해복구를 돕고 싶다”는 개인 자원봉사자의 문의전화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하는 난맥상은 전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

9월5일 아침은 일찍 시작됐다. 오전 7시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청년이 “주검을 찾아줄 지관이 있다고 들었다”며 자원봉사센터를 찾아왔다. 지난 밤 도착한 산악인 박종한(48·춘천시 효자동)씨를 ‘지관’으로 잘못 알고 온 모양이다. 강릉시 학산 비행장 부근에서 산다는 청년은 “물살에 떠나려간 형의 주검을 찾기 위해 닷새째 주변 일대를 뒤지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가 난감한 표정으로 “일단 한번 가보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남아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김용연(37·경기 양주군)씨를 따라 산사태가 난 강남동으로 출발했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린 강남동 571번지에는 박종락(69)·장순자(66)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노부부의 쇠락한 보금자리는 무너진 지반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그날 밤 비가 두어 시간만 더 왔으면 우리집도 무너졌을 게다. 저 앞집은 쏟아져내린 흙더미가 벽을 무너뜨리며 방 안에까지 들어닥쳤다.” 담배를 피워문 박씨가 산사태가 나던 날 얘기를 하는 사이 율곡중학교 3학년 학생 4명이 담임교사 강태화(30)씨와 함께 도착했다.

전날도 흙 쌓기 작업을 했던 대학생 최민일(20)·김민주(20)씨와 함은식(44·서울 강남구 논현동)씨, 이날 아침 합류한 안태균(29·인천 남구 학익동)씨까지 가세하면서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마대에 흙을 퍼담아 계단식으로 무너진 산기슭을 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을 흠씬 들이킨 황토는 마른 흙보다 두배 이상 무겁게 느껴졌고, 질척거리는 진흙 때문에 발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오랜만에 삽자루를 잡아쥔 팔뚝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고, 흙으로 가득 찬 마대자루는 두 사람이 옮기기에도 힘에 부쳤다. 볼펜이나 휘두르고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겨대던 팔 근육은 이내 팽팽해지면서 주먹 쥐기조차 버거워졌다. 몇 차례 마대 잡은 손을 놓치기를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급식소로 향하던 발걸음을 늙은 부부가 붙잡아 앉혔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은 뜨거운 밥과 정성스런 반찬을 내놓았다.

정신 없이 식사를 마친 뒤, 오전 내내 힘든 일을 도맡았던 안태균씨에게 말을 건넸다. 강원도 홍천 출신이라는 안씨는 수해복구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양양을 거쳐 강릉으로 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도시 전체가 쑥대밭 아니냐. 그제 양양에 도착해보니 길이 거의 끊어지고, 전봇대가 다 넘어간 곳도 많더라. 도심이 이 지경인데 시 외곽이나 산간 고립지역은 어떻겠나. 생필품도 떨어졌을 텐데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고향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소식에 휴가를 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함은식씨도 “동해·삼척 쪽에는 구조헬기도 안들어 온 곳이 많다더라”며 걱정을 보탠다. 그는 친척 집에 별다른 피해가 없음을 확인하고도 주말까지 남아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강릉 시내를 돌며 복구작업을 거들 계획이라고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자 몸이 서서히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늘 오후에 올라가기로 했으니 이쯤에서 손을 털고 일어설까’ 하는 얄팍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오후 4시를 넘기면서 누런 마대자루가 산기슭을 따라 제법 계단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틀째 버리고 비우기만 했던 내 눈앞에 사흘 만에 무언가 쌓이기 시작했다. 마대 쌓기를 주도한 김용연씨는 “비전문가들이 쌓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지만, 늙은 부부의 얼굴에는 어느새 엷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밤을 또 어디서 보낼까


△ 수재민은 전염병의 공포와도 싸우고 있다. 수해현장에서 연막 소독을 하는 모습.

흙더미를 모아 마무리 작업을 하고 나자 마대로 10여m쯤 쌓아올린 축대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무너져내리기라도 한다면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앞집까지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호물자 조달업무조차 버거워하고 있는 동사무소에서 후미진 이곳까지 신경쓸 겨를이 있을까. 일을 마치고 돌아서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8월31일 강원도 강릉지방을 관통한 제5호 태풍 ‘루사’는 무려 897.5mm의 비를 이 지역에 퍼붓고 달아났다. 시간당 최대 100mm가 넘게 쏟아진 폭우는 각종 기상관측 기록을 바꿔놓았다. 9월7일 현재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전국 피해상황은 사망 122명, 실종 62명에 재산피해도 5조516억원. 그러나 어제의 집계가 오늘 쓸모 없어지는 일은 아직도 날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피곤한 몸은 요행히도 2박3일을 버텨줬다. 수재민들은 여전히 밤잠을 설쳐가며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끝없이 쏟아지는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한 강릉시가 남대천변을 따라 쌓아놓은 쓰레기더미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강릉터미널을 벗어나려는데 다시 빗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식수조차 부족한 마당에 전염병이라도 파고든다면 어쩔까 마음이 착잡했다. 저수지 붕괴로 가옥 20여채가 모두 휩쓸려 내려간 장현동 주민들은 이 밤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강릉=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