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창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질긴 생명력 간 데없고 1인 정당으로 전락
국민중심당·한나라당과의 통합 가능성도 희박해지며 당 간판 내려야 할 상황
▣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2월1일 찾은 당사는 썰렁했다. 2층 기자실은 텅 비어 더 넓어 보였다. 5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도록 언론사별로 부스를 만들어놨지만 부스엔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YTN 부스에 컴퓨터가 한 대 켜 있었다. 누군가 앉아서 열심히 인터넷을 훔쳐보고 있었지만, 기자가 아닌 보좌관이었다. 엘리베이터와 당사 곳곳엔 ‘당 대표 후보자 등록 공고’가 붙어 있었다. 1월31일 마감된 후보 등록엔 현 김학원 대표 혼자 등록을 마쳤다. 2월10일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는 안내장도 눈에 띄었다. 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민련은 이제 의원 1인에 당 대표 1인의 ‘1인 정당’으로 전락했다.
의원 4명중 3명 국민중심당으로
김종필(JP)씨와 박준규(전 국회의장)씨는 ‘내각책임제 추진’을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지난 1995년 3월 자민련을 만들었다. 이 보다 앞서 자민련의 전통은 1963년 김종필의 공화당 창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화당 때부터 일했던 일반 당직자들이 아직도 당사에 남아 일하고 있다. 당의 연원으로 따지나 당명 유지를 봤을 때나 자민련은 현 정당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당임에 틀림없다. 한국 정당사에서 정당의 평균 수명이 의원의 임기보다 짧은 2.6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민련의 생명력은 ‘의외로’ 길게 느껴진다.

△ JP와 충청으로 상징되는 자민련이 11년의 영욕을 뒤로 한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자민련 당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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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은 창당 직후인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충청과 대구를 중심으로 50석을 차지했다. 97년엔 DJP 공조를 통해 공동 정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자력으로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수 없는 17석 획득에 그치면서 몰락의 징조를 보였다. 지난 4·15 총선에서 4석에 그치고, 정신적 대부인 JP가 퇴진하면서 당의 폐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지지도에서도 자민련은 ‘기타’로 취급됐다. 다른 정당들이 모두 전세살이를 하는 속에서 마포구 신수동에 지상 7층 지하 1층짜리 싯가 70억원에 이르는 당사는 자랑거리였지만 지난해 가을 당사의 2개 층을 빼고 나머지 층을 임대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자민련이 정당으로서 존재가치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잃게 된 것은 최근이다. 심대평 지사를 중심으로 한 국민중심당에 의원 3명이 흡수되면서부터다. 당장 5월31일 지방선거를 독자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각 당이 당내 경선을 치르기 위해 광역단체장 예비 후보 등록을 받고 있지만 자민련엔 아직 한 명도 없다. 2월10일 전당대회를 개최하지만 마지막 전당대회가 될 거라는 비관적인 얘기들이 기정사실처럼 떠돈다. 현실적으로 마지막 탈출구로 여겼던 국민중심당과의 통합이 결렬되면서 일반 당직자들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이병우 기획관리실장은 “대의원의 동요가 없었다고 볼 순 없지만 의원 3명이 나갔을 뿐, 큰 동요는 없다”고 말했다.
통합이 불발된 이후 국민중심당과는 아예 원수가 됐다. 김학원 대표는 “국민중심당은 충청권을 볼모로 정치적 거래를 하는 정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 국민중심당과의 재통합을 거론하기엔 부담스러울만큼 감정적 앙금이 커졌다.
폐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렇다면 자민련의 살길은? 국민중심당의 통합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자민련이 독자적 생존을 포기한 지는 꽤 오래됐다. 보수세력의 대연합을 외치고 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한나라당과의 통합설은 1~2년 된 오래된 얘기지만 한나라당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최근에 먼저 나서서 한나라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대놓고 얘기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자민련과의 통합 제의를 받아본 적도, 한 적도, 할 이유도 없다. 의원 1명이 있는 정당을 무슨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냐”라고 잘라 말했다. 자민련에서 국민중심당으로 둥지를 옮겨 튼 김낙성 의원은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생명력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통합도 어려울 것”이라며 “당에 딸린 식구들이 많은데 누가 거둬주겠냐”라고 말했다. 국민중심당 쪽에서는 여전히 자민련과의 통합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 1인 정당으로 전락한 자민련 당사 기자실은 기자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언론사별로 만들어놓은 부스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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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당 간판을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당 간판을 내리는 것은 대표에서부터 일반 당직자들까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규양 자민련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자민련 문패를 달고) 갈 수 있으면 좋은데 1석 정당으로 고비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지급되는 국고보조금도 의원 3명이 빠져나가면서 연 6천만원이 줄어들 판이다. 어느 당, 어느 세력과 결합할지 모르지만 국회의원 1명에 사무처 당직자 등을 포함한 3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형적인 형태로 자민련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자민련의 몰락을 놓고 “지역만을 근거로 했을 때 생명력이 길 수 없다는 지역주의 정당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울러 3김 정치의 종식과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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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공조는 자민련 몰락의 서곡” [인터뷰_ 김학원 대표]
스스로 지역정당을 표방하고 나선 국민중심당과는 색깔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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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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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당사 대표실엔 대표를 지낸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씨의 사진이 차례로 걸려 있다. 셋 다 DJP 공조로 탄생한 김대중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공통점이 있다. 당의 화려한 시절을 상징하는 얼굴들이다. 그러나 JP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김학원 대표는 침몰해가는 배의 선장처럼 보였다. 지난 2월1일 그를 만났다.
당장 5·31 지방선거는 어떻게 치르나.
=자유민주주의 세력, 즉 재야 보수세력의 부분적인 대통합을 하든가 보수세력인 한나라당과의 통합을 시도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치러야 한다. 정치란 끊임 없이 변하는 것이다. 아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자민련이라는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
=중요한 것은 당의 이념만 똑바로 유지하면 된다. 우리와 같은 이념과 정책을 갖는 곳과 통합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계속 우리의 이념을 실천해나간다면 당명은 사라지겠지만 오히려 승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중심당을 어떻게 보나.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권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당을 만들 때부터 자신들의 독자적인 대선 후보를 내지 않고, 고건 전 총리를 데려오겠다고 하는 발상은 잘못됐다. 또 권력을 잡겠다면 전국정당으로 가야 하는데 국민중심당은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정당이라고 스스로 표방하고 나서지 않나. 지역정당은 오히려 타파돼야 한다. 국민중심당이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정당들과는 색깔이 맞지 않는다.
당을 만든 JP는 지금의 자민련을 어떻게 보나.
=안타까워한다. DJP 공조가 당 몰락의 서곡이었다. DJP 공조는 충청권의 외면을 가져왔다. 이념이 다른 정당과 공조를 한 것이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JP도 당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한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말하더라. JP는 국민중심당이 이쪽저쪽으로 기웃거리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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