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후보와 조승수 후보의 대결로 좁혀진 민주노동당 2기 당 대표 선거
“당내 통합을 위해 힘있는 대표 필요” “자주파 독식하면 곤경에 처할 것”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한 자릿수 지지율, 원내 제3당 지위 상실, 재보선 참패 등 당 안팎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1기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석 달째 비상체제로 운영돼온 민주노동당이 지난 1월20~24일 2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했다. 선거권을 가진 4만7400명의 당원 가운데 71.02%인 3만3663명이 투표에 참여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 당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10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하지만 정작 당의 얼굴 격인 대표는 확정짓지 못했다. 2기 지도부를 이끌 선장인 당 대표 자리를 놓고 문성현, 조승수, 주대환 등 3명의 후보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지만 과반을 얻은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당선 예상됐던 문성현, 과반 못 얻어
‘조직표와 명망표’ ‘자주파와 평등파’의 한판 대결로 불렸던 이번 선거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문성현 후보의 대표 선출을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진보정치의 1번지인 울산에서 지방의원, 구청장, 국회의원 등 대중 정치인의 길을 밟으며 성장해온 평등파의 대표선수 조승수 후보가 대외적 지명도는 높지만 같은 평등 계열의 주대환 후보와 표가 갈리는 약점이 있는 반면, 문성현 후보는 민주노총에서 단병호·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좌파인 중앙파로 활동해온 이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안 최대 계파인 자주파의 조직적 지원을 받은 만큼 더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자파 계열 후보를 내지 않고, 옛 평등 계열 출신인 문 후보를 내세우는 ‘영입 후보’ 전술을 구사한 자주파 역시 문 후보가 평등파 일각의 표까지 끌어모아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 자주파의 지원을 받는 문성현(오른쪽)이냐 평등파의 명망가 조승수냐. 당원 투표 마지막 날인 1월24일 두 후보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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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월24일의 1차 투표는 어느 후보도 과반을 얻지 못한 채 끝났다. 문 후보가 예상대로 1등을 차지했지만 47.58%(15596표)를 얻었다. 조직력에서 열세라는 평가를 받아온 조승수 후보는 44.79%(14682표)로 2위, 총사퇴한 1기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했다는 약점이 있는 주대환 후보는 7.62%(2499표)로 3위를 차지했다. 결과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65%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던 투표율이 71.6%까지 치솟으면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새내기 당원’들이 대중 인지도가 높은 조 후보 쪽에 표를 보탠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민주노동당은 새로 선출된 김선동 사무총장이 당 대표 직무를 대행하면서 오는 2월6일부터 닷새 동안 1, 2위를 한 문성현, 조승수 두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벌여 10일 당 대표를 최종 확정한다. 대표직 결선투표를 앞둔 문·조 두 후보 진영과 이들을 지원하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신경전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1월24일 지도부 선거에서 김선동 후보를 사무총장, 이용대 후보를 정책위의장으로 입성시킨 자주파는 문성현 후보를 당 대표로 당선시켜 당을 힘있게 이끌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1기 지도부 때 계파적 색채가 옅은 김혜경 대표로 계파 절충형 지도부를 꾸려 당내 다수파이면서도 확실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평등파의 공세에 흔들리고, 당 내분을 심화시킨 과오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자주파의 대표선수인 문성현 후보는 1차 투표에서 1등한 자신이 압도적 득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확실히 밀어달라고 호소한다. 당의 고질적 병폐인 계파 분열을 극복하고 자신이 내세운 당내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선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힘있는 대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문성현 후보 쪽은 사회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자신이 적임자라며 자주파의 조직표에 무정파적 유동표를 흡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안호국 선거대책본부장은 “오랫동안 금속연맹, 민주노총 등에서 민중운동을 해왔고, 경남도당 위원장으로 시도당을 성공적으로 강화한 경험이 있는 문성현 후보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다양한 당내 세력들의 통합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최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평등파와 조승수 후보는 훨씬 더 절박하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자주파가 최고위원회의 등 당 최고의결기구를 장악하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 정치투쟁에 몰입하면서 민생, 부유세 도입 등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드러낼 사회경제적 의제를 이슈화하지 못한 게 지지율 하락 등 당 위기의 본질인데, 자주파가 대표직까지 독식하면 위기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평등파와 조 후보는 일단 ‘자주파의 당직 독식론’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당원들의 ‘경계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평등파에 속한 한 핵심 당직자는 “지난 1기 지도부에서는 무계파인 김혜경 대표, 자주파인 김창현 사무총장, 평등파인 주대환 정책위의장이 균형을 맞췄는데도 1인 7표제 덕분에 최고위원회의를 독식한 자주파가 민생 현안은 뒤로한 채 정치투쟁에 집중하는 오류를 저질러 당 위기를 자초했다”면서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 이어 대표까지 당 3역을 자주파가 장악할 경우 당은 더욱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 2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선거는 애초 문성현 후보의 당선이 예상됐으나 문 후보는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다. 1월19일 선거 출마자들의 합동 기자회견.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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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정당론과 정체성 강화론의 충돌
조승수 후보도 2월2일 결선투표에 임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당직 선거는 당의 위기를 초래한 지난 1기 지도부에 대한 심판의 장이자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지도부를 뽑는 각별한 선거인데, 1월24일 1차 선거는 지난 1기 지도부의 주류 노선을 계승한 그룹이 사실상 당직을 독식하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특정 성향의 독식이 아닌 진정한 통합, 견제와 균형을 이룰 당 대표를 선출해달라”고 호소했다.
조 후보와 평등파가 제기한 ‘자주파 독식론’에 대해 당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민주노동당 2기 당 대표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문성현 후보 쪽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문 후보 쪽의 핵심 관계자는 “자주파가 당 지도부를 독식했다고 말하지만 최고위원은 1인1표제 도입으로 각 정파에 고르게 안배됐고, 문성현 후보가 (자주파인) 자민통의 지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 활동을 벌여온 인물”이라며 “우리는 계파 간의 통합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성현 후보도 그동안 “난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 혁신이 중요하고, 자주와 평등을 나누는 것도 불만이 있다”면서 “노동자·농민·서민의 삶에 기초해 문제를 풀고 진보적 의제에 대해 토론하면 해결된다. 하나가 돼야 한다”고 통합론을 전면에 내걸었다. 통합의 논리로 ‘자주파 독식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이다.
문·조 두 후보는 2007년 대선을 겨냥한 당의 노선과 당 재정·인력·구조 혁신 방안에서도 미묘한 견해 차를 드러내고 있다. 조 후보는 ‘진보정당 정체성 강화론’을 전면에 내건다. 사회적 화두인 심각한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고, 서민에게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공약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정체성 강화가 최선이며, 2007년 대선 역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독자 노선에 기반해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 쪽은 ‘대중정당론’ ‘통합론’으로 맞선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의 기치를 내세운 소수만의 좌파 정당이 아닌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 쪽의 핵심 인사는 “민주노동당은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 협소한 좌파적 이미지의 정당으로 가자며 정체성 강화론을 내거는 것은 큰 문제”라며 “중요한 것은 당의 통합”이라고 조 후보의 정체성 강화론을 반박했다.
10억원에 이르는 당 재정 적자 해소 등 당 혁신 방안과 관련해 조승수 후보는 ‘선 고통 분담 후 대책 마련’을, 문성현 후보는 ‘당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당비 인상론’을 주장한다. 조 후보는 “과도한 중앙당 상근 인력과 포퓰리즘적 지구당 인건비 지원이 당 재정 위기의 원인”이라며 “중앙당·지구당이 서로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당비 인상 등 수입 확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문성현 후보는 “수년간 함께 고생한 당 상근자들을 (당이) 어렵다고 줄이는 것은 곤란하다”며 “당 재정난을 당원들에게 상세히 공개한 뒤 당비 인상과 당원 확대 사업, 정당 후원제 부활 등을 통해 해결하자”고 말한다.

△ 지도부 선거에서 사무총장에 당선된 김선동 후보(맨 왼쪽)와 정책위의장에 당선된 이용대 후보. 이들은 모두 자주파로 분류된다.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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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표는 어디로 갈까
한편, 1차 투표에서 주대환 후보를 지지했던 7.62%(2499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도 민주노동당 대표 결선투표 결과를 가르는 중대 변수다. 조 후보 쪽은 주대환 후보가 같은 평등 계열이고 자주파의 당권 독식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만큼 그 지지표 역시 조 후보 쪽으로 흡수될 것이라 기대한다. 조 후보 쪽의 한 핵심 관계자는 “1차 투표에서 조직적으로 열세였던 조 후보가 문 후보에 겨우 900표 정도 뒤졌다”면서 “주 후보의 지지표 다수가 조 후보에게 올 것인 만큼 대표직 당선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성현 후보 쪽 관계자들은 “주대환 후보도 독자적인 정견을 갖고 출마해 지지표를 얻은 만큼 조 후보 쪽으로 쏠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1차 투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를 찍지 않았던 표들이 모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주파가 당 3역을 석권할 것인가, 평등파가 대표직을 차지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원들의 관심은 10일 결선투표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