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치 > 정치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9월09일 제526호
16대 국회도 ‘사절단’ 남발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실 국회의원들의 외유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의원 외교 활동의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접근과 감시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에 <한겨레21>은 16대 국회(2000~2003년)에서 추진된 의원 외교 활동을, 외국 방문 뒤 제출이 의무화된 ‘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을 시도했다. 이 자료는 의원들의 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사무처의 국제협력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가 입수한 결과 보고서는 100여건이다. 이 가운데 공식적인 국제 회의 참석이나 국회의장·부의장이 의례적으로 외국을 방문한 국회 대표단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공식적인 일정 앞뒤로 며칠 간의 관광 일정이 있고 경우에 따라 심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는 본업에 충실하고 짬을 내어 견문을 넓힌 범위 이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외국까지 갔는데 일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다. 이는 다른 사례들이 악질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이기엔 방문 목적과 활동 내역이 빈약한 대표적인 사례는 ‘의원친선협회 사절단’이다. 2001년 1월15일부터 13일 동안의 일정으로 진행된 ‘한·슬로바키아/한·불가리아 의원친선협회 사절단 공식 방문 보고서’를 보자. 이 두 협회의 회장과 부회장 등 4명은 △ 상대국 의회 및 정부 지도자의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 증진 및 우호 협력 강화 △ 국내 진출 기업 방문 및 방문국 공관원과 현지 교민 격려를 목적으로 두 나라를 찾았다. 그런데 문제는 경유지다. 목적지는 두 나라인데 경유지는 네 나라다. 직항로가 없다는 불가피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본말이 전도된 관광성 외유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일단 방문 대상국인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 이집트로 갔다. 카이로와 룩소 등지를 ‘시찰’이란 이름으로 관광을 하고 사흘 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슬로바키아로 갔다. 다시 오스트리아를 거쳐 불가리아를 방문한 이들은 후반 일정 1주일을 프랑스와 베트남에서 보냈다. 전체 13일 일정 가운데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에서 각각 하루씩 볼 일을 봤고 나머지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나라에서 관광을 즐긴 것이다. 같은 해에 진행된 한·브라질/한·파라과이, 한·그리스/한·스위스, 한·영/한·아일랜드, 한·터키/한·튀니지 사절단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상임위의 해외 시찰은 어떨까. 2003년 12월 운영위원장과 한나라당 간사는 선진의회운영제도 시찰 명목으로 뉴질랜드와 호주를 11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방문 목적에 해당되는 일정은, 두 나라의 국회를 방문한 것과 두 나라에 나가 있는 우리 대사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정도였다. 이에 앞서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8월중 13일 동안 유럽 5개국을 순방했다. 반드시 그 나라를 가야만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는지는 보고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입수한 보고서 100여건이 16대 국회의원들의 외유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지만, 1년에 평균 25차례의 외유가 있었고 대략 수십억원대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열심히 관광지로도 이름난 선진국을 방문해 제도와 문물을 익힌 의원들의 내공이, 16대 국회에서 제대로 발현됐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