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치 > 정치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9월02일 제525호
언론개혁, 가랑이 찢어진다

정기국회 앞두고 서로 다른 법안 준비 중인 여야… “신문 상위 3사 제한해야" vs “한국방송 수술하자”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9월1일 제17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지난 4·15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공언해온 각종 개혁입법안들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 100대 입법 과제를 확정하는 등 강력한 개혁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 법안 가운데 단연 관심을 끄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정한 언론시장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그동안 추진 의지를 밝혀온 신문법, 방송법, 언론피해구제법 등 이른바 ‘언론개혁 3대 법안’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여부다.


△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회에선 언론개혁 입법안 마련을 위한 국민대토론회가 열리고 있지만 여야의 견해차가 커서 입법까진 진통이 예상된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신문사 시장점유율 · 소유지분 잡으려는 우리당

여야 정치권의 표면적 분위기는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해직기자 출신인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자신의 동아투위 활동 등 언론민주화 운동 이력을 근거로 ‘언론개혁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여권의 언론개혁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나라당도 언론개혁의 대의명분에 공감하며 내부적으로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개혁 3대 법안을 마련 중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서 제안한 국회의장 산하 언론발전특위 설치에 전격 동의하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언론개혁 입법 논의가 본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신기남 전 의장 시절부터 “왜곡된 언론시장 정상화”를 부르짖어온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당 차원에서 검토해온 언론개혁 방안을 공개하는 등 정기국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압박전에 나서면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월26일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당 언론발전특위(위원장 김태홍 의원)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언론개혁은 언론의 자율적 정화에 의해 수행해야 할 과제지만, 언론 스스로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언론개혁을 추진할 시점에 와 있다”면서 그동안 준비해온 언론 관련 법안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정 의원이 “당 언론발전특위 위원들이 7차례 회의를 거쳤다”며 ‘언론개혁’이라는 문건을 통해 이날 공개한 내용은 그동안 여권과 진보적 언론계 안팎에서 제기됐던 신문개혁에 관한 의제와 해법에 집중돼 있다.

우선 “현재 신문의 질이 아닌 불법적인 무가지와 경품 제공 경쟁으로 신문시장이 왜곡, 혼탁해지고 있고, 상위 3개사의 경품비가 다른 1개 신문사의 총매출을 넘는다”고 진단하고 △신고포상금제 도입 △신문고시제 강화 △신문사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한 경영자료 신고 의무화 △부가가치세 도입 검토 등을 제안했다. 또 “일부 족벌신문의 시장점유율이 70~80%에 육박한다”며 새로 제정될 신문법(가칭)이나 현행 독점규제법을 개정해 상위 3대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을 60% 이하로 제한하는 민감한 내용도 담겨 있다. ‘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을 15~20%로 제한하거나 상위 3개 신문사의 점유율을 60%로 설정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을 때는 과징금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 벌칙을 주는 것’이 구체적 검토안으로 제시됐다. 이런 방안이 도입될 경우 현재 시장의 74.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3개 신문사는 강제로 시장점유율을 60% 이하로 낮춰야 할 정도로 폭발력을 지닌 것이다.


△ 언론개혁국민행동 등 여러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개혁 핵심과제들이 결실을 맺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뿐이 아니다. 언론개혁 문건은 신문사의 사주가 인사권과 경영권을 통해 사실상 편집권을 좌우하고 있다며, 신문법에 특정인의 소유지분 상한선을 30%로 설정하고, 초과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특정인 소유지분을 30%로 제한한 현행 방송법을 신문업에 준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현재 정간법과 민법 등에 산재된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과 명예회복 규정을 한데 묶어 ‘언론피해구제 절차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언론피해 상담소 설치 운영 등을 검토하고, 일부 언론의 신문배달망 독점을 개선하기 위해 △신문유통공사 설립을 통한 공동배달제 △신문발전기금 조성 계획도 포함돼 있다.

정청래 의원은 “17대 개혁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개혁과제 중에서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1순위는 언론개혁”이라며 “여야가 국회에 구성될 언론발전위원회 등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겠지만, 개혁 방안의 큰 골격은 그대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신문사의 방송운영 허락해야”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혁안이 정기국회에서 법안으로 열매 맺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 3대 법안의 핵심 내용 대부분에 대해 강력한 반대 방침을 굳힌 것이 큰 걸림돌이다.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는 그동안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 입법 드라이브에 대비해 당 차원에서 신문법을 가다듬는 등 치밀한 대응책을 준비해왔다.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열린당이 추진 중인 주요 신문사에 대한 시장점유율 제한, 소유지분 제한 조치는 기업활동 영역인 신문을 시장통제적 방식으로 재편하려는 사회주의적인 접근법”이라며 “반대 원칙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열린우리당 등 여권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방송개혁을 집중 공략해 여권의 신문개혁 드라이브에 대항할 계획이다.

실제 한나라당이 조만간 확정·발표할 신문법과 방송법에 신문과 방송의 겸업 허용 등을 명시해 위기에 처한 신문산업을 육성하고 방송 3사의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박형준 의원은 “신문사의 방송사 운영 등을 막는 ‘겸업금지 조항’을 조건부로 없애야만 복합 다매체 시대에 대비하고 신문산업의 위기도 해소할 수 있다”며 “이런 내용이 한나라당의 언론개혁 법안에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력 보수신문사들이 갈망해온 방송매체 경영의 길을 터주면서, 동시에 야당에 비판적인 방송사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양수겸장 전략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한국방송을 국가 기간방송으로 자리잡도록 하되, 부분적 민영화와 사장 선임시 국회 동의 의무화 등을 통해 전면적인 수술을 가하는 데 주력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한나라당은 또 열린우리당의 특정인의 소유지분 상한선 도입 방침에 맞서 편집위원회나 옴부즈맨제도 강화를 통해 신문사 내부의 자율적 편집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신문법을 손질하고 있다.

결국 여야 합의로 국회에 언론발전특위가 구성돼도 열린우리당의 신문개혁론 대 한나라당의 방송개혁론을 중심축으로 언론개혁의 핵심 의제를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당이 검토 중인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 시정점유율 제한 등의 개혁의 핵심 내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여권의 언론개혁 입법 추진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언론발전특위 소속의 한 의원은 “정청래 간사가 지난 8월26일 정책의총에서 보고한 개혁안 가운데 몇몇 쟁점은 특위안에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 최종 결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그동안 열린우리당 특위 논의 과정에서 몇몇 의원들은 소유지분 제한의 경우 신문사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지분 분산 등 자구책을 마련하면 유명무실해져 실효성이 사라지고, 시장점유율 강제도 해당 언론사의 저항,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비판 등으로 법 통과가 쉽지 않다는 이견이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품금지 · 배달제도 개선에 그칠 수도?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열린우리당 안팎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부영 신임 의장 등 여권 핵심부의 적극적인 언론개혁 입법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아주 제한적인 범위의 법제화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열린우리당 언론발전특위의 다른 한 의원은 “여야 및 여권 안의 치열한 논쟁이나 이견을 고려할 때 정기국회에서는 과다한 경품 제공 등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도, 신문유통공사 설립을 통한 공동배달제 도입 등에 집중하는 게 그나마 실현 가능한 수준일 수 있다”며 “결국 여기에 매달리는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