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치 > 정치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6월10일 제513호
노동 전문가의 ‘초심’으로…

노사정위원회 복원 나선 노무현 대통령… 노동계와 대화하면서 ‘타협 모델’ 구상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노 대통령 주재의 노사정 대표자 토론회(6월1일), 노사정위원회 복원을 위한 노사정 지도자회의 첫 개최(6월4일) 등의 흐름을 두고 노동계와 정치권에선 이런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사회세력간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내겠다는 ‘노무현식 리더십’에 다시 시동이 걸린 듯하기 때문이다.

사실 노사 관계는 참여정부 출범 첫해 노 대통령을 가장 괴롭힌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노조를 배려하는 듯한 인상의 정책 행보를 하다가, 재계를 비롯한 보수 진영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쳤다.


△ 노무현 대통령이 '노·정관계'의 제자리 찾기에 나섰다. 5월31일 노사정 대표자 토론회를 계기로 대통령의 대화모드는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이 1년 만에 제자리 왔다”

그 뒤로 화물연대 파업 등이 빚어지자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노동계, 특히 대공장 노조의 조직 이기주의 따위를 비판했다. 그러자 민주노총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며 노동문제 전문성을 자부해온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감정 대립까지 겹쳐 과거 정권 시절 이상으로 노-정 관계가 악화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던 셈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노사 문제를 비롯한 사회갈등 조정에는 내가 적임자”임을 자처해왔다.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굵직한 노동쟁의 현장에 직접 뛰어든 정치적 이력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기에, 취임 첫해 우여곡절을 통해 자존심의 상처를 깊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어떤 과정을 거쳐 ‘초심’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을까?

지난 1월16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게 첫 번째 계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논의할 수 있다”며 ‘투쟁과 대화 병행 노선’을 주장하고 당선됐다. 대정부 교섭에 관해 전임 집행부와 달리 한결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노동계와의 대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수호 집행부와도 대화하지 못한다면 참여정부에서 노동계와의 대화는 영영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청와대를 지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2월10일 권기홍 장관의 후임으로 김대환 인하대 교수를 노동부 장관에 기용한 것에도 나름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읽혔다.


△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정책에서 주요 참모로 부상한 김대환 노동부 장관 ·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 · 이원덕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 권재철 청와대 노동비서관의 모습(왼쪽부터).

2·10 개각에서 노동부 장관 후보로는 김 교수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올랐다고 한다. 문 사장은 근무교대조 개편 등으로 신규고용 창출과 생산성 증대를 함께 달성한 인물이다. 반면에 김 교수는 국민의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노·사·정간 대화모델에 관심이 깊은 편이다. 따라서 ‘문국현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냐, 아니면 김대환을 통한 노사정 대화 복원’이냐의 인사 구도에서 노 대통령이 나름의 가닥을 잡았던 셈이다. 두 사람 가운데선 김 교수가 좀더 개혁 성향이 강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3월4일 민주노총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한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노동계와 진지한 대화도 못해보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지난 1년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약속하고 합의사항은 합의정신에 위배되지 않도록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민주노총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노사 관계가 안정적으로 연착륙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민주노총 · 한국노총 지도부 잇달아 만나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나는 재야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다. 변했다”고 말하는 등 양쪽 사이에 뼈있는 대화도 오갔다. 그러나 양쪽이 마주앉긴커녕 “대통령이 보수화됐다”(노동계) “노조가 이기주의에 빠진 게 문제”(대통령)라며 서로 물어뜯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만은 분명했다.

노 대통령은 곧이어 한국노총 지도부와도 대좌했다. 청와대는 물러난 단병호 전임 민주노총 위원장도 따로 만나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3·12 탄핵 의결 때문에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청와대는 3월4일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와의 만남 직후부터 노사정위원회 복원을 위한 노사정 지도자 회의 아이디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민주노총 사이에 물밑 응수 타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3월12일 국회 의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서 후속 추진이 중단됐다.

그러나 ‘청와대 관저 유폐 63일간’에도 노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 모델의 복원에 관한 구상을 구체화해나갔다.

노 대통령은 이 기간에 노동계 사정에 밝은 참모와 재야·학계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다고 한다. 특히 노조 파업을 공권력으로 진압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사례와, 사회협약을 통해 노사가 상생의 길을 찾은 스페인, 네덜란드, 아일랜드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비교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은 ‘설령 임기 말에나 이르러야 성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에 맞는 방법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탄핵 의결 직후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의 권유로 <마거릿 대처 전기>를 읽은 것으로 청와대가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여전히 우파적 강성 모델로 쏠리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관측이 나왔는데, 실상은 그와 달랐던 셈이다. 노 대통령에게 ‘대처 읽기’를 권한 권 전 수석은 5·16 청와대 개편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6월1일 노사정 대표자 토론회는 탄핵안 의결로 유보됐던 ‘대화 모드’를 직무 복귀와 함께 본격 가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내심으로 가닥을 잡아온 대통령의 ‘제자리 찾기’가 가시적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당 노동위원장 내정자), 김영대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권재철 청와대 노동비서관 등이 노 대통령의 주요한 참모로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5·16 청와대 개편에 따라 이원덕 사회정책수석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6·1 노사정 대표자 토론회에 앞서 1주일쯤 전에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 주재로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노사 선진화 로드맵 △비정규직 문제 △노동정책 인적 라인 정비 등에 대해 폭넓게 토론했다고 한다.

‘여름 투쟁’과 견제 여론 있지만…

물론 노·사·정간 대화의 장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대목도 꽤 있다. 이를테면 민주노총이 예고한 ‘여름 투쟁’ 와중에서 의외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으며, 보수 성향 신문들이 “청와대에서는 왜 국가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느냐”며 벌써부터 견제를 꾀하는 흐름들이 그것이다. 한나라당도 노사정 대표자 토론회 직후 “정부가 왜 노사 문제에 개입하느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노동계와의 대화에 몸을 실은 것에 주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대선 이래 최근까지 노 대통령의 행보를 종합해볼 때 이로써 그가 ‘초심’에 가까운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