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더 이상 구중궁궐이 아니다. 공적인 행사가 아니면 외부에 좀처럼 알려지기 힘들었던 대통령과의 만남이나 대화 내용까지 언론에 알려지고 보도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총선 개입 시사’ 발언으로 보도된 열린우리당의 초선 의원들과의 만남(지난해 12월31일)이 알려지는 데는 “2시간 걸렸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의원도 “청와대 문을 나선 지 딱 2시간 만에 (언론의 취재) 전화를 받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누설자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졌다.
청와대쪽에서는 “오찬은 당일, 만찬은 다음날 알려지는 양상을 보거나 참석자 수가 많을수록 ‘개봉시간’이 빨라지는 것을 보면 진원지를 알 수 있지 않느냐”고 참석자들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이날 참석자들은 “청와대쪽에서 흘리지 않았다면 (언론에서) 그렇게 빨리 눈치챌 리가 없다”고 부인했다. 이러다보니 청와대 정문 앞에서 차량 번호를 확인해 알려주는 ‘카파라치’가 일부 언론사에 고용돼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속내를 드러내는 자리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유독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만 설화로 번지는 것은 왜일까. 노 대통령의 독특한 화법과 탈권위 행보, 정치환경의 변화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당일, 노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했던 김성호 의원은 “대통령이 입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권력기관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했던 과거와 달리,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력을 놓아버린 만큼 ‘법 테두리 안에서’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선관위에 문의하겠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전달자가 잘못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상대방이 오해할 소지가 있는 표현은 아예 거론하지 않았고 그를 만났던 인사들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말을 아꼈던 데 반해, 요즘은 노 대통령의 화법과 면담자들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청와대의 ‘설화’가 잦은 데는, 불과 몇년 전까지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면서 당의 인사와 공천권을 좌지우지했던 때와 달라진 정치환경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밥 먹고 왔다”는 것으로 대통령과의 친밀도를 자랑하면서도 ‘혀’를 잘못 놀렸다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분위기만 피웠던’ 과거와는 양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난 2000년 민주당 정풍운동의 시작이, 당의 개혁을 주장했던 소장파 의원들의 대통령 면담 요구가 불발에 그치면서 촉발된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