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부정기적으로 르포 작가들의 좋은 르포를 연재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현업에 종사하며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썼습니다. 편집자

▣ 글·사진 이시규 리얼리스트100 회원·고소작업원

내 나이 마흔다섯. 벌써 11년째 나는 빌딩 외벽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고소(高所)작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른 아침, 황사에 자욱이 가려져 있던 고층 빌딩의 첨탑들이 흐릿한 모습을 드러낼 즈음 나는 까마득히 꺼진 발 아래로 밧줄을 내린다. 아득한 지상으로 내려오기까지, 실낱같은 삶의 끈을 아무리 단단히 붙잡고 있어도 위험은 늘 내 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 고층 빌딩 외벽을 청소하는 고소작업원들. 외환위기 이후 하청 용역업체들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들의 노동 환경은 더욱 위험해졌다.

서울 강남의 24층 오피스텔 옥상에서, 오늘도 밧줄과 호스를 엮는 고소작업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방벽 위를 이동하며 빠른 손놀림으로 설치 작업을 한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몸을 기울여 내려다볼 엄두조차 못 낼 판이지만 우리 숙련공들은 좁은 발판을 딛고 서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실수로 스패너를 떨어뜨렸을 때

“무섭지 않나요?” 주변에서 가장 흔히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하지만 누구나 선뜻 자신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한다. 다만 솔직한 대답을 대신해 스스로에게 하듯 이렇게 웃으며 말하곤 한다. “두려움이요? 사고, 죽음, 그런 걸 시시때때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어느 때든 불시에 닥칠지도 모를 사고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고 그런 상황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둡니다. 가끔 돌발적인 일이 벌어져서 아차, 할 때마다 그 생각을 되뇌면 맘이 진정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나를 비롯한 네 명의 숙련공들은 별다른 회의 없이도 묵묵히 움직이는 몸짓만으로 의사전달을 잘한다. 작업은 보통 건물의 모양새와 외벽의 돌출물, 높이 등에 따라서 쉬운 일과 까다로운 일로 나눠진다. 작업원들이 가장 꺼리는 현장은, 옥상이 방벽에 둘러싸여 있지 않고 경사진 지붕으로 덮여 있거나, 처마가 튀어나와 있어 외벽과 밧줄 사이가 뜨거나, 경사진 빗면이 있어 지면과 수직으로 줄을 내리기 곤란한 곳, 그리고 돌출 간판이나 근접해 있는 고압선, 네온사인이 즐비한 경우들이다. 그런 장애 요소들은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심리적 위축감이 들게 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활동력을 둔하게 하고 생명을 지탱하는 외줄을 갉아먹는다. 고가의 시설물을 파손시킬 우려도 있다.

이제, 밧줄을 지면까지 내려뜨리는 작업을 마치고 앵커(밧줄을 맬 수 있도록 설치된 고리나 견고한 구조물)에 단단히 묶인 밧줄을 힘껏 당겨보며 안전 상태를 점검한다. 밧줄에 끼워 타고 내려갈 안전달비계(밧줄에 끼워넣어 작업자의 몸을 안전하게 지탱해주는 판자 형태의 도구)까지 결속하고 나면 모든 준비 과정이 완료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고소 작업도 첫 줄을 타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이 가장 신경이 곤두서고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밧줄을 옆으로 옮겨가면서 본격적인 청소와 보수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도 끊임없이 주의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특히 대부분의 건물은 인도와 인접해 있는데, 10여 층 높이에서 떨어뜨린 작은 쇳덩이 하나라도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고소작업원들은 공중에 매달린 상태에서 몇 가지 연장들을 손에 쥐고 사용하는데, 걸레나 스펀지도 있지만 작업 내용에 따라 때때로 대형 볼트나 그라인더, 드릴, 망치를 지니기도 한다.

박영순(39)씨는 얼마 전, 자신이 작업 중에 실수로 떨어뜨린 연장이 행인에게 큰 부상을 입힐 뻔했던 일이 있었다. “15층 높이에서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주차장 바닥으로 대형 스패너가 떨어졌는데, 내 몸이 떨어지는 것처럼 오싹하더라고요. 무거운 쇳덩이가 자동차와 행인의 머리 사이를 가까스로 비켜나가 시멘트 바닥에 굉음을 내며 곤두박질칠 때 정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니까요.”

그런 얘기를 할 때면 여러 가지 사고를 당한 일과 사고를 당할 뻔한 기억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바닥에 깔려 있는 밧줄 끝을 포클레인 궤도가 물고 가서 공중에 뜬 채 혼비백산한 일, 옥상의 변전 시설에 물기 젖은 호스가 닿아 감전 사고를 일으킨 일, 실수로 바닥까지 밧줄을 내려뜨리지 않아 줄이 끝난 허공에서 몸이 이탈할 뻔한 일, 옥상 방벽 위에 서서 작업하던 중 균형을 잃고 추락할 뻔한 일, 외벽의 돌출 간판 모서리에 밧줄이 깎여 끊어지기 직전에 발견했던 일, 부실한 고정 앵커가 떨어져나가 보조 밧줄에 의지 한 일 등등.

우리가 고소득 특수직이라고?

이런 일들은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 어떤 예고나 방비도 없는 상태이므로 종종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끔 이 직업이 택시기사보다 안전하다고 웃는 초보들도 있지만 오랫동안 줄에 매달려왔던 고참들은 그런 아찔한 경험을 통해서, 단지 줄 한 가닥에 의지한 우리의 ‘안전과 위험’이 얼마만큼 얇은 백지장 차이인지를 잘 알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인근의 대도시에 몰려 있는 고소작업원 수는 1천 명 내외로 추산되는데, 그 수에 비해 심심찮게 발생하는 사고의 빈도는 다른 어떤 직종과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높은 편이다. 그 밖에도 공사 중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다 꺼내놓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강남의 밀집된 고급 빌딩에서 세척 작업을 할 때는 밑에 주차돼 있는 고급 외제 승용차를 특별히 조심해야 해요. 건물에서 흘러내린 땟물이 차량의 광택을 조금이라도 더럽히면 당장에 주인이 나와 세차비를 청구한다니까요. 호스에 연결된 수돗물로 씻겨주면 그만인데 실제로 저번에 차 두 대의 세차비를 물어줬어요. 또 건물 외벽의 묵은 때를 제거할 때 뭐 좋은 약품을 씁니까? 값싼 산성 세제와 화공 약품을 쓰는데, 환경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몸에도 정말 좋지 않아요.”

노상규(44)씨는 세제 거품이 묻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실외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주로 궂은 날씨 때문에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작업 중에 갑자기 바람이 세지거나 비가 오고 낙뢰가 칠 때도 있는데, 매달린 일꾼들보다 건물주가 먼저 작업 중지를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설치한 밧줄과 장비들을 모두 거두고 현장에서 철수를 하게 되면 결국 하루 품을 못 팔고 고생만 하는 셈이다.

△ 고소 작업은 아무리 조심해도 한번 삐끗하면 ‘큰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외벽 청소 작업을 건물 안에서 내다 본 모습.

경미하건 치명적이건 사고를 경험해본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면 결국 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이 공사 진행 방식에 있다는 것을 서로가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 고층 빌딩의 외벽 공사는 다른 건설 단종 업종과 마찬가지로 다단계 하청 과정을 거친다. 원청사업자나 건물주에게 하도급을 받는 용역업체들이 그 일을 재차 영세 소규모 업체로 재하청을 주는 방식을 통하게 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맡은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계가 많아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같은 열악한 구조 속에서 하청 용역업체들 간에는 서로 낮은 공사가액으로 경쟁을 하게 되고, 공사 단가의 손실분을 어떻게든 인건비에서 뜯어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소수 인원으로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게 된다. 공사 기일이 단축되고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 누구나 서두르고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부른다. 작업 내용도 부실해져 질이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클레임이 걸리고 수금이 지연된다. 결국은 몸으로 힘써 일을 해놓은 현장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그 고통을 떠안아야 한다. 업종 분류상 서비스업이면서도 건설업과 일부 결합돼 있어, 건설업 계통이 가진 고질적인 병폐 구조를 그대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제때 수금이 안 될 때가 가장 큰 문제죠.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노임이 한두 달만 늦으면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습니다. 원청에서 결제를 했음에도 일꾼들에게 노임을 곧바로 지급하지 않거나, 품을 줄이려고 날림 공사를 하다가 간혹 재작업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에 따른 모든 피해는 맨 밑에서 일하는 저희 몫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기존 건물주들의 외벽 공사 주문이 부쩍 줄었고, 정리해고자와 명예퇴직자들이 대거 청소용역업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다. 예전과 달리 작업 환경이 기형적으로 바뀌면서 하청 용역회사도 작업원들과 마찬가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원청, 하청, 재하청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다 보니 원견적서에 기재돼 있는 노임 단가와는 꽤 차이가 나요. 우리를 보고 고소득특수직이라 하는데, 아주 위험한 특수직인 것은 맞지만 고소득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죠. 일당 노임이 보통 15만~20만원인데, 다른 3D 업종들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만 비수기와 성수기가 너무 뚜렷이 나누어져 있어 평균 연봉으로 계산하면 그리 많은 액수가 아닙니다.”

비교적 젊은 축에 들어가는 양현우(37)씨도 일만 생기면 놓치지 않고 열심히 줄을 타지만 이렇듯 월수입 200만원을 밑돌고 있다. 외벽 공사는 황사가 걷힌 뒤 4월에 시작해서 6월 말까지, 그리고 장마가 물러가고 나서 9월부터 11월 말까지가 일감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성수기고, 나머지 한여름과 겨울은 비수기다. 양씨는 봄에 벌어서 여름까지 쓰고, 가을에 벌어서 겨울까지 버티는 것 외에 별다른 수입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비수기가 서너 달인데 마냥 일이 없다고 놀 수만 없는 사람들은 택시운전면허를 따서 임시 운전일도 하고, 대리운전도 하고, 노가다 일용잡부, 심지어는 공공근로를 하기도 한다. 딱히 별다른 돈벌이가 없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3D 업종의 일은 요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고소 작업도 마찬가지로 점차 고령화돼가고 있다. 청년실업자가 사회문제가 되고 갈수록 구직난은 심각해짐에 따라 간혹 하루 노임 단가가 높다는 것만 알고 무작정 자원해서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이 있긴 한데 얼마 못 가서 현장을 떠나고 만다. 사실 초보 때는 기술공의 노임을 다 받을 수 없고, 적어도 1년 이상의 숙련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견습공이 들어오면 엄격히 살펴봐주고 연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는 동안 숙련공은 정작 자신이 일할 시간을 빼앗기고 자기 몫을 다 못하게 된다. 그러니 사실 견습공은 현장에 제대로 적응하기 전까지는 바쁜 시간과 작업량을 잡아먹는 애물단지나 마찬가지다. 이같은 처지를 이해 못하고 단지 줄을 탄다는 이유만으로 숙련공과 견습공이 함께 일하다가 종종 임금 때문에 반목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업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신철민(51)씨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실어보낸다. 그의 말대로라면 다섯 명이 오면 넷 정도가 고소에 적응을 못해 2, 3일 만에 그만두는 것이 보통이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사람마저도 시간과 돈을 손해봐가며 일을 가르쳐야 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3D 업종, 고소 작업도 고령화

“예전만 해도 군대에서 갓 제대한 새파란 애들이 로프 일 배우겠다고 와서 참고 잘 일했는데…. 그때는 돈도 잘 벌리고 일하는 게 신이 나기도 했지. 지금은 자식들 등록금 대느라 아내까지 식당일 나가고, 하루하루 쫓기듯 사는 게 황사 부는 날 공중에 떠 있는 것보다 더 막막혀. 그래도 새끼들 커가는 재미로 살지, 뭐.”

얼마 뒤, 직경 18~20mm의 나일론 밧줄에 끼워진 널빤지 위에 우리는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이 말은 우리가 오전 작업을 시작하면서 늘 하는 인사말이다. 조심조심해도 단 한 번 삐끗하면 떨어져 죽고 마는 인생.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허공에 몸을 얹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생명을 지탱해준, 수없이 닳고 닳도록 매달려온 밧줄보다 오히려 줄타기 곡예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과 버거운 삶을 끝없이 묶어두는 이 세계의 포박이야말로 더욱 위협적이고 위태롭다는 사실을 피로한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만약 빌딩 꼭대기에 아스라이 매달린 나에게 누군가 희망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중간 거래자의 노임 착취 없이 원청 건물주와 직거래하며 뿌듯하게 일할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신자유주의든 뭐든 내 삶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유리창에 붙은 오물 벗어지듯 깡그리 씻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건물을 다 내려와서도 옥상에서 내 등을 떠밀며 지나가던 바람이 발길을 또 휘감아온다. 한동안 흔들리는 밧줄에 매달려 있는 듯 나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도로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들 허공을 밟고 있는 듯 까마득하고 위태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