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혜의 인터뷰 특강’ 보고서… ‘재주 많은 오피니언 리더’가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리라
지난 3월9일부터 25일까지 서강대 동문회관 스티브김홀에서 총 7회에 걸쳐 열린 <한겨레21> 창간 10돌 기념 ‘인터뷰 특강-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7회 모두 좌석을 빼곡히 채워주신 독자와 방청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갑수씨와 특강에 참여해주신 7명의 강사분들, 실무 진행을 맡은 한겨레 문화센터와 녹화방송에 참여한 한국교육방송(EBS) 관계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음 기회에 더 알찬 기획특강으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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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효숙/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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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명사]: 연예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
딴따라의 사전적 의미다. 옛날 ‘어르신’은 자식이 딴따라를 하겠노라면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머리를 빡빡 깎아서라도 뜯어말리려 했다. 지금이야 연예인이라는 말이 이를 대신하고 다들 연예인이 못 돼 안달이지만, 딴따라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는 단어 중의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한겨레21>에 격주마다 실리는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건대 그들에게 왜 ‘딴따라’라는 말을 붙인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올곧은 말을 하는 인물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딴따라’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인터뷰 특강 다섯 번째 주자 오지혜를 만났다.
장동건 효과와 서태지 효과
사회자 김갑수씨의 소개와 독자들의 환호성 속에 등장한 그는 가슴 한켠에 ‘탄핵 무효’가 적힌 천을 달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자신의 정치색을 ‘커밍아웃’한 만큼 낯설지는 않다. 얼마 전 20여만명이 모인 촛불 집회에서 전공인 연기가 아닌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며 사회자가 은근슬쩍 노래를 부탁했다. 이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러 웬만한 사람들은 그의 노래 솜씨를 알겠지만 ‘민망한 정국’(그의 표현을 빌리면)인지라 개사한 ‘민주밖에 난 몰라’의 한 소절을 불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인 특강이 시작됐다.

△ 오지혜씨는 대중들이 딴따라들의 사회적 · 정치적 활동을 두고 '나댄다' '설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주지 않길 당부했다.(사진/김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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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지혜씨가 선택한 주제는 ‘연예인과 프로파간다-시대의 무당 딴따라를 말한다’다. 왠지 생뚱맞다. 연예인과 프로파간다의 관계는 뭐고, 무당과 딴따라의 조합은 또 뭔가. 먼저 딴따라에 대한 정의를 시작으로 운을 뗀다.
“딴따라는 유교 사회 잔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쟁이’들을 일컬어 비하하는 말로 썼지만 저 또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기 때문에 ‘딴따라’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진정한 딴따라가 되는 길이 얼마나 숭고하고 경건한 일인가를 아는 딴따라들은 감히 딴따라로 부르는 것조차 영광이라고 여깁니다.” 일례로 명계남씨에게 인터뷰를 부탁하자 “내가 어디 감히 딴따라야? 난 그냥 양아치야”라고 했단다. 여태껏 비하하는 발언으로만 여겨온 딴따라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역시 ‘오지혜스럽다.’ 지면에서 이미 선보인 말발과 글발은 특강 자리에서도 빛을 뿜어냈다. 영화배우 문소리씨를 인터뷰한 기사로 〈한겨레21〉에 발 들여놓을 무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오지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거침없는 언변과 독특한 표현력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지만 딴따라 하면 따라다니는 편견과는 사뭇 다른 그의 행보에 색다른 기운을 느껴서다. 게다가 깊숙한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연기와 글을 보건대 오지혜야말로 ‘진정한 딴따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지혜씨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대중은 자신을 엄히 꾸짖어줄 존재도 필요했지만 동시에 흥을 돋워주고 슬픔을 위로해줄 존재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신과 인간 사이를 대신 소통시켜준 것이 무당이었다면 무대 위의 딴따라는 작가와 관객을 소통시켜줬습니다.” 예전과 달리 딴따라들의 몫과 힘이 많이 강화된 몇 가지 예도 들어준다. 목청껏 외치며 헌혈하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던 사람들이 ‘장동건 오빠’의 사진이 차량에 붙어 있으면 중·고등 여학생들은 어느새 팔뚝을 뻗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라고 애걸복걸해도 오지 않던 아이들도 서태지의 〈컴백홈〉 노래 하나에 냉큼 왔다며 딴따라들이 가진 대중 조작의 힘을 강조한다. 〈반지의 제왕〉이 가져다준 영향을 ‘프로도 효과’라 하는 것처럼 이는 ‘장동건 효과’ ‘서태지 효과’라 이름 붙여도 손색없을 정도의 막강한 힘인 셈이다.
활동가로 살 계획은 없습니까?
나아가 오지혜씨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딴따라가 자신들이 가진 프로파간다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길 촉구하며,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딴따라들의 사회적인 활동이나 정치적인 활동을 두고 ‘설친다’ ‘나댄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주지 않길 당부한다.
시종일관 힘있고, 빈틈없는 특강에 기가 눌린 탓인지 처음에는 질문이 나오지 않더니 한두명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토론 분위기가 형성됐다. 더구나 딴따라가 속해 있는 곳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화 산업, 연예 산업인지라 질문자들의 발언이 길어 ‘또 하나의 특강’이 마련된 것 같았다.

△ 연예인다운 오지혜씨의 활달한 강의는 좌중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었다.(사진/김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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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씨에게 여배우들 중에서 드물게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똑똑하고 지적인 것처럼 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한 직장인 여성은 “딴따라들이 가지는 사회적 효과를 감안할 때, 한국의 여배우들이 주체적인 캐릭터를 가지지 못해 미치는 좋지 않은 영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배우들이 좀더 올바른 캐릭터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했다. 오지혜씨는 “자본주의 세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영화는 돈의 예술이다’라는 말처럼, 돈 되는 것을 찾다보니 작가들이 아무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쓰려 해도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으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지혜씨 개인에 대한 질문도 오갔다. 지금껏 오지혜씨의 활동이 소극적이라며 본격적으로 구조적인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활동가로 살 계획은 없는지 묻자, “문성근씨나 명계남씨 같은 ‘활동가’ 타입은 아니다”고 답한다. 일단은 문화부 장관인 이창동 감독(‘장관’보다는 ‘감독’이란 호칭이 더 편하다고 한다)이 잘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오지혜씨. 하지만 그는 이미 ‘아름다운 가게’의 열혈 홍보대사로, 평등 부부 전도사로, 활동가 이상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은가?
특강을 마치고 나오며, 국어 사전의 ‘딴따라’ 정의는 새로 씌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딴따라[명사]: 상처받은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자들, 오피니언 리더라고도 함.’
“젊은이들 좋은 질문 고마워요” [인터뷰/‘최고령 수강생’ 김창옥 할머니]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할머니, 할머니가 어떤 분이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아유, 뭘 자꾸 알려고 해요. 난 강연 듣고 그냥 갈 거야.” 하지만 정말 궁금했다. 매회 진지하게 강연을 경청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자도, 진행요원도, 다른 참석자들도 모두 궁금해했다.
할머니의 거절은 우리의 궁금증을 말리지 못했고 할머니는 전체 일정이 끝날 무렵에서야 당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김창옥(76) 할머니. 1929년 평안북도 운산 출생. 해방 전 아홉 식구가 월남했고, 서울에서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수십년간 할아버지와 대서소를 운영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겪어온 할머니 앞에서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이라는 강연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할머니가 강연을 들을 게 아니라 우리가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게 아닐는지.
<한겨레>를 창간호부터 읽어왔다는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청년단체 간부셨어. 김구 선생을 존경하셨지”라며 강연에 오게 된 이유를 에둘러 가르쳐준다. 신학에 관심이 깊은 진보주의자였던 남편과 나란히 꾸려온 수십년의 생활 앞에선 이번 강연에서 얘기한 근대, 전쟁, 노동, 제3세계 문제들이 낯설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 열심히 지내려 해요. 기회가 되는 대로 강연, 강좌를 찾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지. 바쁜 만큼 건강한 거야.” 할머니의 작은 달력에 가득한 빨간 동그라미는 벌써 6월까지 이어져 있다. 얼마 전엔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로 사진 여행을 다녀왔단다. “수동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으신가봐요”라고 우문을 던지니 “요새야 휴대가 편하고 반복해서 찍을 수 있는 ‘디카’를 쓰지”라는 현답을 준다. 요즘 케어복지사 과정 밟기에 바쁜 할머니는 이미 10년 전에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했다고 한다.
“이번 강연에서 젊은이들이 좋은 질문을 해줘서 나도 참 도움이 되었다”고 평해주시는 할머니의 웃음에는 세월이 주는 여유와 겸손, 그리고 당신 삶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온다. 언젠가의 강연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