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창간 10돌을 맞아 1기부터 7기까지 독자편집위원들이 어렵게 머리를 맞댔다. 인터넷 카페에서 이름만 들었던 각 기수 위원들이 화기애애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깐. <한겨레21>의 10년을 평가하는 진지한 회의가 진행됐다. 칭찬은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독자편집위원회 말고도 해줄 사람들은 많을 테니. 위원들은 작정하고 <한겨레21>에 쓴소리를 하기로 했다. 그것이 <한겨레21>을 사랑하는 독자편집위원회의 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 10돌 회의에 참여한 위원들. 제정희(맨 앞), 승인 강지영 김종옥(둘쨋줄), 김건우 하종강 오경택 이동화(셋쨋줄), 조일억 박운양 이지현 류재수 김성훈(넷쨋줄), 백정필(맨 뒤).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 필자였던 하씨는 '우정출연' 했다.(스카이라이프 정용일)

제정희: 시사주간지 성격 자체가 사회·정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정치 중심이 너무 강하다. 우리가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정치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관심도 없는데 기사를 써서 오히려 그 사람 지명도만 높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정치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부부의 이중생활, 핸드라이팅, 쿨 문화 등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해주는 기사를 봤을 때 손이 가서 읽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위주로 가면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문화 등을 짚어냄이 어떨까.

김건우: 독편위의 모습을 통해서 <한겨레21> 전체를 알 수 있다. <한겨레21>이 있을 때까지 독편위는 계속될 것이다. 초창기 독편위 회의를 할 때 뭔가 토론이 되는 분위기였다. 어느 순간 각자 해야 되는 숙제처럼 바뀌었다. 너무 아쉽다. 독편위는 토론의 자리여야 한다. 독편위가 뭔가 요구를 하면 응답이 없었다. 학생 구독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자는 제안을 하거나 기자의 글에 아쉬운 점, 스타일 등을 지적했지만 그냥 지면에 실리면 그만이다.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독편위가 <한겨레21>의 구색 맞추기에 이용되는 것 아닌가.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겨레21> 전체에 전달됐으면 한다. 해명을 다 해줬으면 좋겠다. 독편위가 토론의 장이 돼야 하듯, <한겨레21>도 그래야 한다. 토론의 장이 아니라 편집의 장일 뿐 아닌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에 대해 줏대를 가지고 토론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어진 것 같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아닌가. <한겨레21> 독자 수가 정체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소장가치가 현저히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겨레21>은 주간지이므로 주간지만의 색깔이 있다. 절박한 것이 있으면 두배로 돈 주고라도 살 거다. <한겨레21>이 행동을 위한 고전 같은 주간지가 돼야 한다. <녹색평론>은 <한겨레21>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양을 재생지로 만든다. 그래도 <녹색평론>은 책을 만들며 죽인 나무만큼 세상을 더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한겨레21>은 종이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정은

김성훈: 최근 <한겨레21> 표지에서 노무현, 최병렬 등 정치인들을 빼고 나면 반이나 남을까 의구심이 든다. 이건 표지 디자인의 상상력 부족이기도 하지만 내용도 정치의 과잉이다. 표지 디자인에 대해 더 말하자면, 사람들이 집어들고 싶도록 만들면서도 기사의 내용들이 좀더 깊게 담겨 있는 디자인이 아쉽다. 배달 체계에 대한 문제도 제기해야 한다. 제발 안정적인 체제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승인: 외부인이 쓰는 칼럼이 많아졌다. 기자들이 어떻게 썼는가 읽어보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이다. 칼럼을 좀 줄였으면 싶다. <한겨레21>이 문화 분야에 더 신경써야 한다. 단편적인 평 위주이지 담론이나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다. 문화 분야에 깊이 있는 기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인터넷판도 많이 바꿔야 한다. 개편한다 해놓고 편집만 좀 달라졌을 뿐 특별한 기능이 거의 없다. <씨네21>은 이메일로 이주의 기사들이 어떻다는 것을 소개해주는데, <한겨레21>도 해준다면 더 관심 있게 볼 것 같다.

독자편집위원회는 예전에 토론 위주로 회의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각자 돌아가며 자기 의견을 쭉 말하고 끝나는 것 같다. 좀더 토론식으로 재미있게 구성했으면 한다. <한겨레21>이 처음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다. 초창기 <한겨레21>의 장점이 담론을 만들어내고 지역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예전만 못하다.

이동화: 정기구독자에 대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집에 똑같은 가방(정기구독자에게 주는 선물)만 여러 개 있다. 기존 회원을 잘 관리해야 한다. ‘당근’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지 고민해보자.

조일억: 예전보다 방향이 다른 기사가 꽤 많다. 대중화나 사회 변화가 그런 걸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항상 기본을 지켰으면 싶다. <한겨레21>에도 디지털 마인드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동안 아날로그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마이 뉴스>는 해당 기사에 독자 의견을 개진하는 점이 좋다. 인터넷판에도 그런 기능이 있지만 훨씬 떨어진다. 사소한 것이지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전엔 김현철, 베트남 등 <한겨레21> 하면 떠오르는 이슈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점도 아쉽다.

김종옥: 소수의 인력을 가지고 이만한 양의 내용을 이만한 부피로 매주 낸다는 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조금 여유를 갖고 기사를 쓰고 편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힘들게 쓰다 보면 사실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할 부분을 놓치고 2% 부족한 기사를 쓰게 되지 않나. 사실 ‘위원’이라는 말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독편위는 모니터단이었지 않나 싶다. 진짜 편집위원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또 <한겨레21> 디자인이 그렇게 예쁘지 않다. 심지어 시간에 쫓겨 조잡하게 만든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보는 잡지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돋보기 세대를 위해 활자도 좀 커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한겨레21>이 비전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는 좀 부족하다.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그 배경을 파헤치는 건 좋은데,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새로운 사회 모델이나 비전을 많이 보여달라.

△ "독자 여러분, 아직 안 버리셨죠?" <한겨레21> 창간 직전이던 94년 2월, <한겨레>에 등장했던 신문 광고.

강지영: 신문은 단순히 사건만을 말해주지만 <한겨레21>은 사건의 원인, 결과, 파장 등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21>은 우리 사회가 생각해야 할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언론이다. 또 기사 중간에 광고가 들어가는 것은 정말 짜증난다. 교사들이 학생에게 기사를 복사해줄 때 광고가 있어 불편하다. 광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박운양: 정치적 상황처럼 <한겨레21>도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를 생각하자. 씨앗은 좋은 밭에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기자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고 좋은 기사를 <한겨레21>에 싣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그들의 관점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겨레21>이 진보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정체성을 확실하게 무 자르듯이 얘기할 수 없지만 중대한 기로에 있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의 흐름은 어떤 것인가 봐야 한다. 그런 것에 대한 특집 기사 등을 실어보는 게 어떨까. 좀더 집중해서 독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념적 지형도 등을 구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정리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지현: 개인적으로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한겨레21>은 농촌 문제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 사진으로 농촌 풍경을 가끔 싣는 것이 전부다. 이건 <한겨레21>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도시 비정규직 문제처럼 파고들지 못하는 모습을 계속 봤다. 물론 기자 관심에 따라 기사가 달라지겠지만, 외부 필진을 더 보충해서라도 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편위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각자 분야와 관심사가 다르다. 이분들을 <한겨레21>에서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 위원들 중에도 기자 못지않게 전문성을 지닌 분야가 있다. 그 분야에 대해 돌아가면서 맡긴다든지, 한 기수가 어떤 주제를 정해서 특집 기사 하나 정도라도 써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표현진: 논술 기간만 되면 논술지 선전처럼 광고하는데 그런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나 동성애자 차별의 문제를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한겨레21>에는 온통 정치인들 얘기뿐이다. 그런 것을 좀 고쳐주었으면 한다. <한겨레21>에서만 읽을 수 있는 기사는 왜 이렇게 줄어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