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쿠크 무자헤딘 전사 인터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저항세력”
2004년 새해가 막 시작된 지난 3일 저녁 10시께 바그다드 시민들은 엄청난 포성에 떨어야 했다. 물론 바그다드에서 총소리와 가끔씩 들리는 폭발음은 거의 ‘일상사’가 돼가고 있지만, 이날은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포성이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기 때문이다.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관계자에게 어렵사리 연락을 해 물으니 “저항세력의 근거지로 추측되는 알 도라 지역을 집중타격하는 중이다. 그러나 저항세력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 그냥 허허벌판에 쏘는 ‘포인트 사격’이라 별것 아니다”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바그다드 시내에는 간밤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오른팔 격이었던 이자트 알 두리 장군이 이끄는 저항세력들과 미군이 바그다드 남부 알 도라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더욱이 그날 전투에선 알 두리 장군이 미군에 엄청난 타격을 가해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었다. 간밤의 엄청난 포성 때문에 온 바그다드 시민들이 궁금해하는데도 미군쪽에서 아무런 공식 발표나 해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런 소문을 더욱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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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집중적인 추격을 받으면서도 아직 체포되지 않은 후세인 정권의 2인자. 이자트 알 두리. 후세인 체포 이후 저항세력의 활동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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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문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미군의 ‘이라크 전범 수배자 50인’에 포함돼 추격을 받으면서도 체포되지 않고 있는 알 두리 장군의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 더욱 부각됐다. 사담 후세인 체포 뒤 미국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라크 저항세력이 구심점을 잃고 서서히 자멸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알 두리 장군이 붙잡힌 사담 대신 저항조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게 최근 저항세력의 동향에 대한 유력한 관측이다.
살아 있는 전설, 알 두리 장군
그럼, 이자트 알 두리는 누구인가?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 부통령이었던 그는 후세인의 정치적 동지이자 이란-이라크 전쟁 등에서 수많은 전투를 이라크의 승리로 이끌어 “백전노장” “살아 있는 이라크 전설” “최고의 전투기록 소유자” 등 각종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올해 62살의 노장이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군 파병 예정지인 키루쿠크 하위자 마을에서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벌인 것을 비롯해 이라크 곳곳에 수배전단을 뿌리며 알 두리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쨌든 이라크 저항세력은 후세인 체포 뒤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며 지금도 거의 매일 바그다드 곳곳을 공격하고 있다. 바그다드 시민들에겐 구름이 많이 끼고 날이 흐리면 신변안전에 더욱 조심하라는 게 상식처럼 돼버렸다. 구름이 끼면 헬기에서도 저항세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힘들고 시야가 흐리기 때문에 공격 뒤 도주가 훨씬 쉬워 저항세력의 활동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날씨가 흐린 날의 공격 횟수가 훨씬 많다. 이제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에 미군 몇명이 죽고 어디가 폭파되었고 하는 일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지난 일 알 팔루자에서 활동하는 한 저항세력 그룹의 소개로 티크리트에서 전직 이라크군 소령 출신의 무자헤딘 아부 누아(가명)를 만났다. 후세인의 고향이자 저항세력의 본거지로 유명한 티그리트는 요즘도 미군의 저항세력 집중 수색으로 시끄럽다. 후세인 체포 뒤에도 외국인들은 얼씬 못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아부 누아는 “사담이 체포되었어도 저항세력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조직은 곧 재정비됐고 수색작전에 대비해 무기들을 조금씩 나누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조직원들도 지역을 옮겨 다니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는 하부 행동책과 중간조직, 그리고 지휘부로 나뉘어졌다. 어느 쪽이든 타격을 입었을 때 바로 회복할 수 있는 대비책을 항상 준비하기 때문에 이라크의 저항조직은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미군과 그들의 동조자인 연합군들을 모두 몰아내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나는 “미군이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걸고 당신들을 신고하도록 시민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해도 무기를 운반한다든가 조직원들이 모이면 발각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옆집의 60대 할머니는 내가 사담 시절 공화국 수비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미군이 마을 입구에라도 보이면 나를 걱정하면서 다치지 말라고 알라께 기도하기도 한다. 동네 아이들까지도 내가 저항세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마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절대로 미군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기를 숨겨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혹 돈 때문에 신고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우리가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신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씨족사회이기 때문에 동네 전체가 친척 관계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친척 전체가 저항세력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저항세력들은 이라크 사회 깊숙이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부 누아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키도 크고 잘생겨서 외모로만 보면 저항세력의 핵심 조직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상당한 미인인 그의 아내 또한 인터뷰 내내 과자며 차를 내오고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심을 보였다. 대단히 위험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 끝에 지금까지 어렵게 여러 명의 저항세력 조직원들을 인터뷰했지만 막상 만난 그들은 대부분 이처럼 서민적이고 평범해 보였다. 바그다드 길거리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또 신뢰가 쌓이자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며 다른 무자헤딘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미군의 부상, 너무 행복한 날”
또 다른 무자헤딘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군이 파병될 키르쿠크로 향했다. 한국 정부가 안전한 파병지를 고르고 골랐다지만,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키르쿠크 또한 최근 저항세력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군이 ‘수니 삼각지대’라고 부르며 촉각을 곤두세웠던 티그리트, 알 팔루자, 라마디 대신 이제는 키르쿠크, 티그리트, 사마라가 ‘새로운 수니 삼각지대’(New sunni triangle)로 불린다. 키르쿠크 시외곽에는 아랍계 수니파 사람들이 4천년 넘게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려 모여 산다. 최근 잇따른 미군의 수색 작전으로 티크리트와 사마라 지역의 저항세력들이 이곳으로 피신해 조직을 재정비했다는 것이 키르쿠크 지역 신문 <발란스> 편집장 사하의 설명이다 “그 중에 하위자라는 마을은 바로 그 전설적인 장군 이자트 알두리 장군의 은신처로 알려졌다. 실제 그의 비서가 이곳에서 체포되었다. 그곳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저항세력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 5일 나는 하위자 마을을 찾아갔다. 푸른 들판에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넓은 평원 위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신밧드 같은 복장의 아이들이 당나귀를 몰고 있었다. 평원 한가운데로 한국 건설회사가 건설했다는 철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도 평화롭고 조용해 보이는 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나와 같이 간 그들의 통역을 알아보고 다가와 “오늘 너무 행복한 날이다. 우리가 매설한 폭탄이 터져서 미군 한명이 부상당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이 축제 분위기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가까이 가보니 길 한가운데 엄청나게 큰 구덩이가 있고 여기저기 아스팔트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면 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말인가? 그들은 마침 나타난 미군들이 이 길로 지나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너무도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을 전체가 저항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폭탄을 매설하여 오늘의 승리(?)를 이끌어낸 이 지역 저항조직 지도자 시다르(가명·38)를 그의 집에서 만났다.

△ 키르쿠크의 무자헤딘 지도자 시다르. 그는 “한국인들이 군복을 입고 우리 마을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한국군은 나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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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는 벌써 30여명의 주민들이 찾아와 오늘의 성과(?)에 대해 축하를 나누고 있었다. 시다르는 “우리 마을 주민들은 모두 당신들이 말하는 ‘저항세력’이다. 이들 모두 미군과 연합군을 상대로 공격을 한다. 오늘의 성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공화국 수비대 대위였으며, 조직원들은 모두 120명이라고 했다. “바그다드가 무너지던 날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나는 이 조직의 리더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담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내 나라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난 지금도 공화국 수비대의 대위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전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저항하는’ 가족이 자랑스러운 사람들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대위임을 강조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작전 지휘를 집에서 하고 있을 뿐 전투에 나갈 때는 한번도 나의 신분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출정할 때 아내는 항상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나는 수니파고 아내는 시아파이지만 우리는 수니, 시아를 가리지 않고 조국 이라크를 위해서 미군과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들은 다 우리의 적이다. 나는 그들을 죽일 것이다. 내가 못하고 죽는다면 나의 아들들이 자라서 나처럼 저항세력이 되어 그들을 죽일 것이다.”

△ 키르쿠크에서 미군 기지를 공격하다 목숨을 잃은 무자헤딘들의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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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와 세 딸,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때 그의 올해 10살 된 큰딸이 다가와서 아버지를 안으며 “나는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다치거나 죽을까봐 겁이 난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라크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저항세력인 아버지와 그의 딸은 그렇게 한동안 말을 못 잇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8살인 작은딸도 “어제 미군을 위해 통역하는 사람이 길에서 나에게 너희 아버지와 삼촌들 저항세력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고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내가 오히려 더 싸우러 나가라고 한다. 나는 나의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서방 주요 언론에서 보여주는 저항세력은 무서운 테러리스트다. 그러나 나는 이날 이 가족을 보면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다르에게 “한국군이 이 지역으로 파병될 텐데 당신들은 우리 한국군도 공격할 것인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국인인 당신도 우리 가족들을 보았다. 여기 오는 한국군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가족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피를 흘리고 싶지 않고 당신들의 가족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군복을 입고 우리 마을에 나타나는 그 순간부터 한국 군인들은 나의 표적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신에게 맹세할 수 있다. 미군 대신 오는 한국군은 우리의 새로운 적일 뿐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까지 폭탄을 만들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시다르가 살고 있는 이 하위자라는 마을에도 바로 몇 달 뒤 한국군이 오게 된다. 그들은 파병 수나 어떤 성격의 부대인지 등 한국군 파병 정보를 비교적 많이 알고 있었다. 한국군을 상대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저항세력 지도자와 한국인인 나는 그렇게 힘들게 현실 앞에 서 있었다.

△ 키르쿠크 주민들이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이들도 “당신들이 요구하던 자유는 어디 있냐”라고 쓴 종이피켓을 들고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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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다른 무자헤딘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들과 약속한 장소로 간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저항세력 조직원들이 오늘 아침 미군 기지를 공격하다가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 중 한명은 탱크로 머리를 짓눌려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게 된 채로 죽었다고 한다. 그들의 주검을 수습하고 있는 병원으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들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인터뷰를 약속한 무자헤딘의 죽음
주검 수습이 끝난 뒤 바로 모스크로 향했다. 모스크에 모인 그들의 동료 100여명은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고,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흐느낌 속에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코란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관을 열어 그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았다. 미처 눈조차 감지 못한 조직원과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다른 조직원의 시신을 보며 한 사람이 소리쳤다. “우리는 더 많이 싸울 것이다. 이 피의 복수를 미군들에게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그들은 다시 모스크를 떠나 마을 근처 사막으로 향했다. 새하얀 천에 피를 묻힌 채로 그들은 사막에 조용히 묻혔다. 약속한 인터뷰는 끝내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금의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분노와 현실이 아닌가 싶다.
바그다드 · 키르쿠크=
글 · 사진 김영미/ 종군 저널리스트 · 다큐멘터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