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파병 예정지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현지 르포… 불안한 치안 · 종족간 대립에 정치적 세력다툼까지
2003년 12월23일, 바그다드에서 400km 떨어진 이라크의 북부 도시 키르쿠크로 출발했다. 한국 국회가 키르쿠크로 3천명 규모의 한국군을 추가파견하기로 결정하던 날이었다. 겨울이 되자 이라크 북부는 사막 지역인데도 비가 자주 내리는 등 날씨가 많이 흐려서 을씨년스러웠다. 한국의 전기 기술자들이 희생된 사마라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체포된 티크리트를 지나 다시 세 시간 반가량 차를 달려서 키르쿠크 입구에 도착했다.

△ 키르쿠크 거리에서 만난 쿠르드인, 아랍인, 터키계 주민들. 민족과 종교로 나뉘어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갈등하고 있는 이 복잡한 상황은 한국군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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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물어보려고 차를 세우고 나서 동행한 이라크인 통역이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세웠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이 사람은 이라크 말을 못 알아들었다. 아니, 이라크 땅에서 이라크인이 이라크 말을 못 알아듣다니? 그래서 다른 사람을 붙들고 “아랍어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아랍어, 쿠르드어, 터키어, 아시리아어를 다 할 줄 안다”고 자랑하면서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키르쿠크라는 크지 않은 도시에 이렇게 네 가지의 언어, 즉 네 민족이 공존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이라크 국기와 쿠르드 깃발이 따로 펄럭이고 있었다.
이라크 말이 통하지 않는 키루쿠크
키르쿠크의 주민들은 쿠르드인 40%, 아랍인 30%, 터키계 25%, 아시리아계 5%로 이루어져 있다. 한 민족 안에서도 기독교도와 이슬람 시아파·수니파로 나뉘어 쿠르드인과 아랍인 안에는 다시 시아파와 수니파가 있고, 터키계는 수니·시아·기독교도로 나뉘며, 아시리아계는 기독교도다. 게다가 쿠르드인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술레마니아 계통과 아르빌 계통의 두 당으로 나뉜다. 이곳 주민들은 이런 복잡한 구조 속에 전쟁이 끝난 뒤 미군까지 가세했으니 키르쿠크는 ‘국제적인 도시’라며 장난스레 이야기했다. 키르쿠크는 정말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런 환경에서 키르쿠크의 이 네 민족들 사이에 최근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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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쿠크 입구의 검문소. 최근 불안한 치안 상황 때문에 검문이 매우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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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들어서서 제일 번화하다는 주흐리아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서 왔느냐”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고 물어왔고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국군 언제 오느냐”고 앞을 다투어 궁금해했다.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이미 소식을 들었다면서.
한국군이 이곳에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시장에서 자그마한 잡화점을 한다는 아랍계 수니파 하산(32)은 “웰컴! 꼬리(한국인)! 웰컴!” 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드는 시늉을 했다. 사담 시절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관리들에게 돈을 주고 도피했다가 1년간 수감되기도 했다는 그에게 요즘 키르쿠크의 경제 사정에 대해 묻자 “사담 시절보다는 수입이 몇배 늘었지만 물가가 많이 올라서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길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한국군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환영한다”고 말했다. 전문대학 학생인 터키계 알리(21)는 “한국군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 기왕이면 삼성·LG 같은 한국의 큰 기업들도 같이 와서 우리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라크 정부에서 후원하는 키르쿠크 고용안정사무소 대표인 살만 박사에 의하면 현재 키르쿠크의 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그는 “유전 지대이긴 하지만 대부분 농사나 장사에 의존해 살고 있고, 전쟁 뒤 수많은 이라크 군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드처럼 이곳에서도 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다음날 어제 만났던 잡화점 주인 하산을 다시 찾아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한번 “한국군이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왕 오기로 결정됐는데 내가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웰컴! 꼬리!”를 외치던 어제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그 다음날도 찾아가 “한국군이 오면 환영 안 할 거냐”고 작정을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우리나라에 군복을 입고 외국인이 들어오는데 기분 좋을 리 있느냐. 외국인이 관광객이나 기업인으로 오면 몰라도 총 들고 군복 입고 들어오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군복 입은 외국인을 누가 반기랴”
이쯤해서 나는 왜 만날 때마다 그의 대답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그는 “이라크인들은 사담 시절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살도록 단련됐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자기의 진짜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한국군이 이곳에 온다고 뉴스에까지 나왔는데 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좀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라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괜히 문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했다가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속마음을 감추고 상황에 맞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키르쿠크 파병이 결정된 뒤 일부 국내 언론이 이곳에 와서 키르쿠크 사람들이 한국군을 환영한다고 보도했지만, 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던 것이다.

△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측근인 알 두리를 찾는 미군의 수배 전단. 후세인 정권의 잔존 세력들이 '수니 삼각지대'에 대한 미군의 소탕작전이 강화되면서 키르쿠크로 근거지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저항세력의 활동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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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키르쿠크 전역에는 곧 미군이 모두 떠나고 그 자리에 한국군이 온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주민들은 사담이 없어진 자리에 미군이 왔고 다시 그 자리에 한국군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크지 않은 도시에는 정당이 무려 50여개나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민족간·종교간·종파간 정치적 입장이 달라 너무도 많은 세력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고 그들이 당을 하나씩 만들었다. 사담 시절 억눌려 있다가 전쟁 뒤 갑자기 정치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키르쿠크는 지금 ‘당 춘추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정치적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공들여서 미군쪽에 줄을 잘 섰던 그 정치세력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세력인 한국군이 온다고 하자 한국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 터키계 이슬람 정당인 터키민주이슬람당 사무실에 찾아가니 내가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질문 공세를 하기 바빴다. 아주 기본적인 남북한의 인구나 언어부터 좀더 구체적으로 한국군 지휘관의 이름이 무엇이냐 등등 그들의 궁금증에 내가 오히려 인터뷰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당 대표인 아샴은 “요즘 한국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한다. 한국군이 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각 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반면, 일반 키르쿠크 주민들은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담 시절 사담 병원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키르쿠크 병원으로 바뀐 병원 접수계에 근무하는 아시리아계 여성 지한(32)은 “키르쿠크 시내에는 전기가 하루에 6시간 가량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촛불을 켜고 공부하고 전기제품도 제대로 못 쓰는데 정부 인사들이나 정당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사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키르쿠크 시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은 다 차지하고 좋은 차를 타고 세력를 과시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보고 미군들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쓴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키르쿠크는 저녁이 되면 암흑 천지로 변한다. 일부 여유 있는 가정이나 상점에서는 발전기를 돌리기도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주민들은 후세인의 통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1991년 걸프전 이후 키르쿠크에서는 사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그 불안정한 시기에 쿠르드계 군인들이 11일 동안 시내 곳곳의 기반시설을 파괴했다. 키르쿠크 주민들은 그때 사담의 오른팔 격인 알 두리 장군이 이곳에 와서 두달간 싸워 쿠르드계 군인들을 쫓아내고 전기 등 모든 시설을 복구했다고 이야기한다.
미군에 댄 줄을 다시 한국군에 옮겨야
사담은 두달이면 모든 것을 복구할 수 있었는데 세계의 넘버원 국가라는 미군이 8개월간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미국과 한패가 되고 싶어하며 주민들의 힘든 상황을 돌보지 않는 정당 세력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내세우기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일자리, 전기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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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쿠크 시내에 펄럭이는 쿠르드 깃발. 최근 이 깃발 때문에 쿠르드계와 터키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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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곳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불안한 치안이다. 전쟁 뒤 키르쿠크에 생겨난 많은 인권단체들 가운데 가장 큰 지지를 받는 키르쿠크중앙인권협회의 대표 모하메드(36·터키계)는 미군이 사마라와 티크리트에서 대대적인 저항세력 소탕작전을 벌인 뒤 저항세력들이 키르쿠크 주변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고 전했다. 그는 또 “며칠 전 ‘미국으로부터 이라크 자유를 찾기 위한 이라크 저항 조직’이라고 밝힌 세력으로부터 ‘더 이상 미국에 협조하면 우리가 공격을 하겠다’는 경고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모하메드뿐만 아니라 각 정당에도 같은 편지가 배달되었고, 실제로 몇개 단체가 로켓포 등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그도 자체 경비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저항세력 활동 많고 종족간 유혈 사태도
한국군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곳 또한 저항세력의 활동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위험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미군이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바그다드에서 취재를 했던 나는 당시 이라크 정부 관료들에게서 모술이나 키르쿠크 주변에 집을 구해서 식구들을 피신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하메드도 실제로 과거 후세인 정부 시절 비밀경찰이나 정부 관료들이 전쟁 뒤 키르쿠크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특히 키르쿠크의 하위자라는 곳은 대표적인 수니파 지역으로 최근 미군들이 수배자를 찾는다며 몇번에 걸쳐 수색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키르쿠크도 ‘수니 삼각지대’ 못지않게 많은 후세인 잔당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곳의 쿠르드인과 터키계, 아랍계 사이의 갈등 또한 유혈 사태로 번질 위험이 높다. 아랍계와 터키계는 쿠르드인들이 전쟁 뒤 미군의 힘을 등에 업고 아예 ‘쿠르디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독립국가를 세우고 싶어하고, 이라크 국기가 아닌 쿠르드기를 달아놓고 있어 감정이 상했다고 했다. 반면 오랫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설움을 겪고, 후세인 시절 화학무기를 동원한 참혹한 학살까지 겪으며 억압을 받았던 쿠르드인들은 이라크 내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당한 설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쿠르드인들은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달라고 시내 전역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더구나 불안한 치안 상황 속에서 시내 중심의 시장에서는 무기도 자유롭게 사고팔고 있다. 2003년 8월29일에는 이슬람 시아파 이맘 알리를 기리는 성지인 키르쿠크의 토스호드마흐 마을에서 터키계 시아파와 쿠르드인들 사이에 유혈 사태가 벌어져 9명이 죽고 27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도 여전히 민족간의 총격전과 시위는 계속되고 있고, 1주일에 평균 세 차례가량의 폭발이 시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키르쿠크는 1918년 영국인이 처음 석유를 발견한 이후 갈등과 분쟁의 불씨를 계속 품고 있다. 세계 제2의 산유국인 이라크 석유의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엄청난 경제적 이권이 되는 이 유전을 두고 지금까지 종족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군은 과거 정부 관리 등 수배자 체포 작전에 바빴고, 대립하는 민족들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자니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차라리 시간 끌기 작전으로 버티다가 이제 이 골칫거리를 한국군에 자연스럽게 넘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키르쿠크의 지역 신문인 <미잔>의 편집장 알리 오즈만(45·아랍계)은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미군은 한국군이 이곳에 오는 것에 대해 이곳 주민들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있다. 한국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한국군이 온다면 언어 문제가 가장 걱정된다. 여기 주민들끼리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인들이 과연 키르쿠크 주민들과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국군은 이라크의 해결사가 될 수 있나
2004년 4월 한국군이 이곳 키르쿠크에 파병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한국군은 이곳의 불안한 치안과 주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전기 등 기반시설, 복잡하게 갈등하는 민족, 종교, 정당들 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대할 수 있을지의 문제 등 현재 키르쿠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이 민족, 종교로 얽히고설킨 도시에서 대한민국군이 현실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을지 한국인들 못지않게 키르쿠크 주민들도 궁금해하고 있다. 문제는 이곳 상황이 한국의 예상보다도 훨씬 복잡한 미로라는 것이다.
키르쿠크= 글 · 사진 김영미/ 종군 저널리스트 · 다큐멘터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