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03년10월29일 제482호 

[아시아의 모계사회 | 인도네시아 미낭까바우족] 남자들은 독립을 꿈꾼다

여자가 집안의 대모 구실하며 교육도 맡아… 고향 떠난 남자들은 ‘부계’ 꿈꾸며 눌러앉아

인도네시아의 북부 수마트라섬 서남부 지방의 부끼띵기 일대에 살고 있는 미낭까바우족. 이들은 모계 공동체 사회에서 일상을 영위한다. 대가족을 이뤄 문중 중심으로 살아가는데 혈연은 어머니를 따른다. 뿐만 아니라 문중과 가족의 재산이나 가옥도 딸에게로 상속된다. 모계집단의 남자 구성원은 재산 상속의 권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벌어들인 개인적인 재산도 맘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식에게 상속해야 하는지, 누이와 누이들의 자식에게 상속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정도다.


△ 신부집에서의 피로연에 여자 친척들이 모여든다.

남자는 개인 재산도 맘대로 상속 못해

미낭까바우족은 엄격한 이슬람 교리를 따른다. 이에 따르면 남자들은 네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고 후처를 들이려면 반드시 첫 번째 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 부인들은 자식이 없는 경우에만 후처를 허락한다. 게다가 정부기관은 남자가 죽었을 때 연금 지급 문제로 인해 부인을 한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낭까바우족은 가계에서 나이가 많고 현명한 여자를 ‘분도깜둥’이라 부른다. 분도깜둥은 집안에서 ‘대모’ 구실을 한다. 가족들은 분도깜둥을 존경하는 어머니로 여긴다. 이 분도깜둥은 가족 구성원의 인격이나 성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자녀는 물론이고 친족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 미낭까바우 왕족의 집. 물소의 뿔처럼 지붕을 뾰족하게 장식한 것은 전설에 따른 것이다.


미낭까바우족의 결혼식은 사위를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신부집에서 적당한 사윗감을 찾으면 신랑집으로 사람을 보내 결혼 의사를 타진한다. 신랑집에서 혼인 제안을 받아들이면 양가 외삼촌들이 만나서 결혼 일정을 잡는다. 외삼촌들이 가족의 대외적인 일을 맡는 것이다. 어머니 중심으로 대가족이 형성되기에 부계가족이 할 일은 많지 않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쪽은 신랑집에 한화로 최소 8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의 지참금을 줘야 한다. 현지의 물가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그래도 신부쪽은 이를 여자의 ‘입김’을 위한 비용으로 여기며 아까워하지 않는다.


△ 신랑집에서의 피로연에 신부의 여자 인척들만 참석한다(왼쪽). 결혼식은 이슬람 사원에서 결혼서약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오른쪽).

이런 절차를 마친 뒤 양가는 결혼식을 준비한다. 결혼식은 이슬람 사원에서 선서식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의식은 간단하게 이뤄지지만 이슬람 교도인 미낭까바우족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원에서 선서식을 마친 날 혹은 다음날에 결혼잔치가 벌어진다. 결혼잔치는 양가를 오가며 진행된다. 먼저 신부집에서 ‘딸람’이라는 이바지 음식을 들고 여자 친척들이 신부와 함께 신랑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잔치가 끝나면 신랑집에서 준비한 딸람을 들고 여자 친척들이 신랑을 데리고 신부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신부와 신랑의 여자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 여자아이들은 자기 방을 갖는다(왼쪽). 남자아이들은 자기 방이 따로 없고 거실에서 잔다(오른쪽).

미낭까바우족의 결혼식은 지역에 따라 규모와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시골에서는 전통적인 미낭까바우족의 방식대로 신부의 여자 친척들이 신랑을 데리러 갔다가 다음날 신랑의 여자 친척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온다. 이에 비해 도시에서는 신랑 신부의 집을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으므로 오전에 신부집에서 대규모 피로연을 열고, 오후에 신랑집에서 작은 규모로 피로연을 연다. 신랑집의 피로연에 신부쪽에서는 여자 친척들만 참석한다. 아버지나 남자형제들은 다른 하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집안의 잔치에만 참석한다.


△ 신랑과 신부가 신부의 집으로 가고 있다(왼쪽). 신랑 집으로 가는 신부 가족들(오른쪽).

여자들만 양가 오가며 피로연 참석

신혼부부는 신부의 집에서 지낸다. 신랑은 낮에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신부의 집으로 돌아온다. 미낭까바우족 청년들에게는 타지로 나가 돈을 벌어오는 ‘머란따우’(여행)라는 풍습이 있다. 아들에게는 재산이 상속되지 않으므로 타지에 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것이다. 머란따우로 널리 알려진 미낭까바우족 인물은 독립 뒤 초대 부통령을 지낸 모하마드 하타이다. 하타는 자카르타 공항을 수카르노-하타 공항으로 이름 붙였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미낭까바우족 남자들은 타지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아예 그곳에서 정착해 부계가정을 이루려는 것이다.


△ 신부집에서의 피로연. 안쪽에 신랑의 여자 친척들이 앉고 바깥쪽에 신부의 여자 친척들이 앉는다. 남자들은 참석하지 않는다(왼쪽). 미낭까바우족 사람들의 일반주택(오른쪽).


△ 미낭까바우족은 물소싸움을 즐긴다. 오래 전 자바인이 침입해 물소싸움으로 승부를 가린 데서 유래했다.

수마트라= 사진 · 글 백지순 | 사진가 bekjis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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