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끝 손학규 1위, 비노-친노로 나뉜 예비경선 결과로 본경선 구도 예측하기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감동적인 드라마가 있을까 싶어 채널을 돌렸는데 사고 소식을 알리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1위 손학규 쪽 “사실상 17:1 싸움”
1위 할 사람은 1위를, 3위 할 사람은 3위를 했다. 턱걸이로 5위 할 사람은 5위를 한 반면, 아쉽게 컷오프 탈락할 것 같았던 사람은 탈락했다. 대신 신당은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개표 과정에서 4~5위 순위가 뒤바뀌는 황당한 해프닝을 보여준 것이다. 신당 예비경선에는 대망신, 부실, 날림 등 온갖 모욕적 언사들이 쏟아졌다.
예측 가능한 결과를 보여준 신당의 예비경선이었지만 짚어볼 대목은 있다. 9월15일부터 곧바로 본경선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예비경선 결과에 대한 분석은 본경선 구도를 전망하는 데에도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 9월5일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결과가 발표됐다. 본경선에 진출하게 된 5명의 예비후보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학규, 정동영,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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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손학규 대선 예비후보가 1위를 차지한 것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손 후보는 예비경선 직전까지 나머지 8명의 후보들에게 포위된 채 악전고투를 벌였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는 범여권으로부터 집요하게 탈당을 권유받았지만 정작 지난 6월 범여권에 합류하자 다른 주자들은 그의 한나라당 전력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여기에 손 후보 본인도 “광주를 털고 가야 한다”는 발언으로 이같은 공세를 자초했다.
손 후보 입장에서 볼 때 한나라당 전력과 정체성 논란이 ‘고약했던’ 것은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 뻔한데, 그렇다고 강하게 반격을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신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면 모두 껴안고 가야 할 세력이라는 점과 감정적 반박은 오히려 범여권 ‘집토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 캠프 내부에서 제기됐다.
9월5일 예비경선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 한때 여의도 정가에서 손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손 후보 쪽 일부 관계자들은 손학규 대세론이 이대로 꺾이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만큼 손 후보 쪽에서는 1위 자리에 목말라했다는 얘기다.
개표 결과 예비경선 2위인 정동영 후보와는 불과 0.29% 차이밖에 나지 않는 1위였지만 손 후보 쪽에서는 순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비경선 1위 통과로 손 후보가 확실한 ‘신당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손 후보 쪽 생각이다.
손 후보 쪽 전병헌 의원은 “예비경선이 1인2표제로 치러졌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17 대 1’의 구도에서 싸움을 벌인 셈”이라며 “집중적인 견제와 배제에도 불구하고 손 후보가 예비경선 1위를 했다는 것은 손 후보의 한나라당 전력과 정체성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손학규·정동영 vs 이해찬·유시민·한명숙
손 후보가 예비경선 1위를 사수했다는 사실을 통해 범여권 유권자들의 후보 선택 기준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정체성을 따진다면 가장 한나라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손 후보가 선택된 배경은 결국 본선 경쟁력에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컨설팅 업체인 ‘민’의 박성민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의 본산인 대구·경북에서 압승을 거둔 박근혜 전 대표를 꺾고 후보가 된 것도 그렇고, 신당에서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 탈당 후보임에도 열린우리당 출신 4명의 후보를 제치고 1위를 한 이유는 결국 본선 경쟁력이 가장 낫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본선 경쟁력이 신당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손 후보의 강점으로 연관짓기는 힘들다. 손 후보와 2위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0.29%에 불과했을 정도로 1~2위 싸움은 초박빙의 승부였다. 정 후보 쪽에서는 “마라톤에서 1등을 달리던 후보가 한번 뒤쳐지기 시작하면 다시 앞서갈 수 없듯이 ‘손학규 대세론’은 이미 꺾였다고 봐야 한다”며 “본선에서 손 후보와 본격적으로 자웅을 가리게 될 텐데 추석 전후로 대세는 정 후보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후보 쪽은 예비경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게 만든 ‘조직표’의 힘이 본경선에서는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 후보의 한나라당 전력 시비는 본경선에서도 언제든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같은 공세가 본경선 득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미지수다. 9월6일 예비경선 직후 열린 첫 번째 합동토론회에서 유시민 후보는 “과거 일을 따져서 어디서 왔냐고 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손 후보로는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전력이 아니라 본선 경쟁력이 관건이란 사실을 발빠르게 간파한 것이다.
예비경선에서 추미애 전 의원이 간발의 차로 탈락하고 대신 한명숙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한 것도 본선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대목이다. 한 후보의 합류로 손학규, 정동영 등 이른바 ‘비노’ 후보와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3명의 ‘친노’ 후보가 비노-친노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물론 본경선의 기본 구도는 어디까지나 ‘손학규-정동영’의 양강 구도다. 친노 후보가 단일화를 통해 양강 후보를 위협할 만한 지지율을 보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오히려 ‘친노-비노’ 구도의 의미는 비노 후보가 나란히 1~2위를, 친노 후보가 하위 세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노대통령 대선 영향력은 덧셈보단 뺄셈
예비경선 직전까지도 노 대통령은 ‘요즘 정치가 가관’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손 후보 쪽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역시 예비경선 직전 손학규, 정동영 두 후보를 겨냥해 “과거에 운동권 출신이었으면 오케이냐”는 등의 말로 공세를 가했다.
반면 ‘친노’ 이해찬 후보 쪽에는 안 위원장의 지지 발언은 물론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의 결합까지 이어졌다. 경선 기간 내내 ‘노심은 이해찬’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이 후보는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후보와 큰 차이를 보이며 3위를 기록했다. 또 다른 친노 주자인 한명숙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불과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는 추미애 전 의원에게 밀릴 뻔했다.
노 대통령이 신당 경선에 개입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정동영 후보 쪽 정청래 의원은 “추미애 전 의원이 탈락한 것은 한명숙이라는 친노 후보에게 밀린 것이 아니라 신당 예비경선 합류 시점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신당 본경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면 이는 덧셈보다는 뺄셈의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이 연이어 의혹에 연루되면서 신당 예비경선 흥행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9월7일 청와대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도 신당 경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것이 대다수 신당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한명숙 후보가 본경선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손에 넣으면서 친노 후보들의 단일화 가능성도 변수로 떠올랐다.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3명의 친노 후보들이 예비경선에서 보여준 지지율을 합하면 34%에 달한다. 24.46%를 기록한 정동영 후보는 물론 24.75%의 지지율을 보인 1위 손학규 후보를 능가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는 단순 셈법으로 따질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3명의 지지도가 단일화 후보에게 그대로 쏠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친노 후보 단일화를 이룬다고 해도 시너지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며 “가령 유시민 후보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했을 경우 절반 정도만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 후보 단일화가 플러스 알파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전과 감동이 필수다. 그렇지만 결과가 미리 예고된 드라마의 감동은 당연히 반감될 수밖에 없다.
친노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변수
단일화에 이르는 길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우선 손학규, 정동영 양강 후보가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실제 정 후보 쪽 정청래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나왔으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단일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출마 권유 등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화 시기와 방법 등을 놓고 세 후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단일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개혁 후보라고 할 수 있었던 천정배, 김두관, 신기남 후보가 모두 컷오프에서 탈락한 것도 신당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그동안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던 신당의 정체성이 중도·보수 쪽으로 굳어지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당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문국현 후보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문 후보가 본격적으로 부상할 경우 개혁·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이쪽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3명의 개혁 주자들도 그동안 문 후보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물론 지금 당장은 ‘경선 불복’이라는 굴레 등에 묶여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 후보의 지지율이 기존 주자들을 위협할 만한 수준까지 뜬다면 신당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개혁 주자들과 문 후보의 연대 움직임은 언제든지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