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2월07일 제596호
[한-미 FTA] “한국 꺾어야 아시아를 꺾는다”

미국은 할리우드와 비교가 안 되는 한국 영화시장 개방에 왜 목숨 걸었나
스크린쿼터 축소에 뒤통수 맞은 영화인들의 투쟁, 그리 녹록지는 않을 듯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정부가 FTA협상개시를 일주일 앞둔 지난 1월26일 한국 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자 영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2004년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일수의 축소 조정과 변화에 대해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이 불거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발표 당사자인 한덕수 부총리와 정동채 문화부 장관 등이 지난해 “스크린쿼터 문제는 영화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해나가겠다”고 말해왔으며, 특히 정 장관은 “스크린쿼터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표명해왔던 터라 영화인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스크린쿼터는 제작 아닌 유통의 문제”

지난 2일 기존의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를 대폭 정비해서 출범한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에는 임권택 감독 등 영화계 원로에서 충무로의 주요 제작자, 학계와 영화산업노조, 직능별 단체가 총망라돼 있어 이번 정부의 기습 발표에 영화인들이 받은 충격과 위기감을 보여준다. 1일부터 남산 감독협회에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릴레이 철야농성에 들어간 대책위는 8일 현재 진행 중인 한국 영화 제작을 전면 중단하고 광화문에서 범영화인 장외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1998년 한-미투자협정(BIT) 협상 때 도마 위에 올랐던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해낸 영화인들의 이번 투쟁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FTA 체결 필수불가결론’을 펼친 것을 비롯해 정부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데다 여론 역시 전과 다르게 스크린쿼터 축소론이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대책위의 양기환 대변인은 영화산업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부가 장밋빛 미래만을 막연하게 제시하고 있는 한-미 FTA의 실정과 그로 인해 농업과 교육, 의료 서비스 시장 등에도 미칠 수 있는 피해를 알리는 데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누가 관객과의 만남을 막으려 하는가." 영화인들이 지난 2월1일부터 서울 남산의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릴레이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정부의 FTA 대세론과 발맞춰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하는 편에서 내놓는 주요한 근거는 2년 연속 50%가 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한국 영화 점유율로,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한국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을 요구하는 건 집단이기주의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지영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결과만을 보고 그 결과를 낳게 한 원인을 제거하자는 뜻”이라며 “스크린쿼터는 제작이 아니라 유통의 문제이며, 아무리 잘 만든 영화도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스크린쿼터가 일부 대작 영화에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정작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마이터쿼터(예술영화 의무상영일수) 도입 등은 정부가 문화 다양성을 위해 별개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며, 이것을 스크린쿼터와 바꾼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이은 MK픽처스 대표 역시 “당장 한국 영화의 제작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쿼터 축소가 야기하는 심리적 위축은 장기적으로 투자 축소와 제작 편수 축소, 한국 영화의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로 국제 통상 협상 관례상 한 번 축소된 스크린쿼터는 한국 영화시장이 침체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2004년 이창동 장관은 한국 영화시장 점유율에 따라 스크린쿼터를 조절할 수 있는 연동제를 제시했지만, 스크린쿼터를 통상 협상과 연계하게 되면 연동제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0일 축소하면 5380억원 손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를 거래해서 한국에 돌아오는 실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2004년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국내 통상 전문가들과 공동 기획해 발표한 ‘스크린쿼터제의 경제적 효과와 한-미투자협정’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린쿼터를 하루 축소할 경우 영화시장 규모는 약 160억원 감소하며, 50일을 축소할 경우 그 손실액은 53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2조6천억원에 이르는 한국 영화산업 규모액(2003년 영진위 발표)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반면 미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200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음해 협정이 체결된다고 가정할 때, 협정 체결 4년 뒤 미국의 대한 수출은 54%(192억달러),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103억달러) 증가할 것이라 예측했다. 즉, 대미 수출보다 수입 증가가 높아지면서 몇 년 안에 한국이 무역 적자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 영화인들은 뒤통수를 맞고 한국 영화는 터널속에 빠져들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극장가에서는 한국 영화 간판이 자리를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 윤운식 기자)

한신대 이해영(국제관계학) 교수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서 입는 손해보다 이득이 많다면 당연히 축소해야겠지만 득실에 대한 정교한 계산이 빠진 정부의 FTA 대세론은 설득력이 없으며 백번 양보해 FTA 협상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주요한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협상 전에 미국에 갖다 바치는 식으로 양보하는 것은 외교 협상에서 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산업 규모로 따지면 국내 국내총생산(GDP) 5천억달러의 100분의 1에 불과하고 전세계적으로도 할리우드와 비교가 안 되는 한국 영화시장 개방에 미국이 왜 그처럼 맹목적인지를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의 스크린쿼터가 문화 주권 정책의 상징으로 세계인들에게 인식된 만큼 이 상징을 깸으로써 이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통상 협정을 맺을 때도 문화적 예외 조항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또 조만간 열릴 거대한 중국 영화시장에서 한류를 꺾고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스크린쿼터 축소의 강력한 요구에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관광부는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다음날인 27일 4천억원 규모의 영화계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영화인들은 “관심 없다”는 냉소적 분위기다.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발표 내용 대부분이 영진위를 중심으로 영화인과 정부가 논의해왔거나 이미 추진되고 있는 사업인데,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가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이것이 구체적인 비전 없이 급조된 발표라는 걸 여지없이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예술영화관을 1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 역시 “현재 예술영화관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는 결정이며, 예산 낭비와 기존의 경쟁력 있는 예술영화관의 존립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극장업계도 4천억원 지원금의 절반인 2천억원을 극장 관람료에서 5%를 떼어내 한국영화발전기금을 설립한다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극장의 이익 일부를 환수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결국 관람료 인상을 불러올 거라는 게 극장업계의 예측이다.

두마리 토끼 모두 놓치는 최악 시나리오

2월5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정부 쪽 대표로 출연한 이시형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은 “만약 FTA 협상이 결렬된다면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바뀔 수 있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FTA 협상은 시작됐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예측 가능한 결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