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 품목 90% 이상 무관세 목표로 한 한-미 FTA 협상 공식 개시
장벽 없는 세상, 생산·소비와 산업구조의 거대한 변화가 불가피한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2월3일 워싱턴에서 공식 개시됐다. 양국 FTA 협상단은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협상을 벌여 2007년 3월께 협상을 타결할 방침이다. 한-미 FTA는 앞으로 10년간 단계적으로 양국 간 교역 품목의 90% 이상을 무관세로 개방하는 것이 목표다.
당장 원산지 규정부터 혼란
협상 대상은 공산품·농산물·서비스·투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고, 1만 개가 넘는 교역 품목별로 관세 양허안을 협상해야 한다. 민감한 품목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경쟁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관세 인하·철폐 일정을 조정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양자 간에 전면 개방을 추진한다는 것이 협정의 정신이다. 2001년 현재 산업 전체의 평균관세율은 한국이 12.49%, 미국이 4.02%다. 협상에서는 또 자유무역 대상이 되는 ‘한국산’ ‘미국산’ 제품이라는 ‘원산지 규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무척 복잡하다. 각 상품의 부가가치 중 몇 % 이상이 한국 내에서 창출된 것을 한국산으로 볼 것인지, 제품 공정 중 어느 단계까지를 미국산으로 볼 것인지, 트랜스미션 부품을 한국산으로 쓴 자동차만 무관세로 미국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든지….

△ 2월3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FTA 공식 협상 개시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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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을 다 협상하려면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미 FTA 협상 개시 조건으로 △2003년 말 광우병 파동 이후 금지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지난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격 재개하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다. 정부는 또 2월2일 부랴부랴 공청회를 열고 그 결과를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은 뒤 다음날 새벽 워싱턴에서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칠레와 싱가포르가 연습경기 파트너였다면 미국은 FTA 대상 국가 중 가장 강한 상대다. 우리나라가 1995년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대대적인 개방을 추진했던 것과 맞먹는 거대한 파장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무역장벽을 없애는 한-미 FTA는 국민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관세 인하에 따른 가격 체계의 변화로 각 부문의 생산, 소비는 물론 산업구조의 거대한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득을 볼 수도 있고,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에 종사하는 또 다른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공산품의 경우 미국의 관세율은 평균 1∼2% 수준이고, 한국도 4.5%로 이미 매우 낮은 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농산물에 평균 64.1%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결국 한-미 FTA의 타깃은 한국의 농산물과 서비스업 등 높은 관세로 보호받아온 산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협정이 체결되면 거시경제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실익’이 기대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실질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99%(135억달러) 성장하고 대미 수출은 15.1%(71억달러), 고용은 0.63%(10만4천 명)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수많은 나라가 FTA를 맺고 있는데 우리만 빠질 수 없다는 단순 논리를 넘어 ‘실익’이 크다는 주장인데, △일본·중국 등 경쟁국에 앞서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을 선점하고 △미국의 통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 많은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상적 제도와 규범, 미국식으로
물론 “한-미 FTA가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는 주장도 위험하지만, 분석모형을 돌려서 나온 수치 역시 추정된 숫자에 불과할 뿐 앞으로 전개될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4년 뒤에 한국은 0.69%의 GDP 개선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 셈이다.

△ 한-미 FTA는 기회인가 도전인가?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들. (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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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3월 열린 교육 시민단체의 교육시장 개방 반대 시위.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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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를 추진해온 정부는 이 협정이 무역 자유화 자체를 압도하는 효과, 즉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개방을 통해 외부적인 경쟁 압력을 끌어들이는 ‘충격요법’을 쓰면 비효율적인 산업은 경쟁에 밀려 문을 닫고 더 효율적인 쪽으로 자원이 배분돼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협상 파트너인 미국이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가이므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뒤편에서 취약한 산업의 사회적·정치적 혼란이 빚어질 수도 있지만, 혼란은 “고통을 받아들여라. 고통이 깊을수록 뒤따르는 성장은 강해진다”는 논리에 묻히고 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홍식 FTA팀장은 “미국에 경쟁력이 크게 뒤처지는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우 시장이 개방되면 미국 자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잡혀먹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놔둘 수도 없고, 경쟁 도입을 경쟁력 확보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또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 경제 전반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세제·통상뿐 아니라 노동·환경 등 일상적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제도와 규범들이 미국식으로 바뀌게 될 공산이 크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관계학)는 “서비스업의 경우 미국 거대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 영세상인들은 다 몰락하게 되고, 경제적 실익을 넘어 사회적인 환경·노동권 등이 파괴될 것”이라며 “그동안 저소득층에 대한 재분배 구실을 해왔던 의료·교육 등 공공 서비스가 민간 경쟁에 노출되면 양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의료·교육단체 등이 “우리의 삶과 생명, 식량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미국이 제시한 표준 협상안에서 글자 몇 개 고치는 수준에서 협정이 체결되고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정부는 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의 직접투자가 대폭 늘고, 역외국인 일본도 미국 시장을 겨냥해 우리나라에 직접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는 공장짓고 도로를 놓는 직접투자보다는 포트폴리오 주식투자가 대부분이었고, 구조조정에서 매물로 나온 국내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비싸게 되팔려고 들어온 투기자본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이 제조업 기반 경제라면 미국은 서비스 경제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산물뿐 아니라 국내 서비스 분야도 미국이 노리는 대표적인 시장이다. 미국은 도하개발어젠다(DDA) 다자간 협상이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지자 양자 간 FTA라는 각개격파로 통상 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통신·교육·의료·법률·회계·영화·방송 등 광범위한 서비스 분야는 시장 개방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서비스 부문은 대부분 공적 영역과 관련돼 있고 개방이 되면 국내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이 불가피한데, 교육·의료·사회보장 서비스 등 공적 분야의 축소가 불을 보듯 뻔하다.
총생산의 증가냐, 실업자의 증가냐
이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서비스산업의 비관세 무역장벽이 50% 감소할 경우 국내 서비스산업의 총생산이 장기적으로 3조3천억원(0.49%) 증가하고 약 7만8천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준규 팀장은 “금융·회계·법률·교육·의료·컨설팅 등 비즈니스 관련 서비스는 제조업의 중간재인데, 이런 서비스 분야가 부진을 면치 못해 국내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제약을 받고 있다”며 “미국 미용사가 한국에 들어와서 곧바로 한국 사람의 머리를 깎기 어렵듯이 서비스업을 자유화해도 국가 간의 서로 다른 문화와 성향 때문에 높은 경쟁력을 갖춘 외국의 서비스 산업이 쉽게 국내 시장에 진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사이에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미국의 고도화된 서비스 노하우를 한국 기업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쉽게 채택할 수 있으므로 국내 서비스산업 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영국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정부가 서비스업 개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이 분야에서 많게는 15∼20%의 실업자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