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4월01일 제503호
어젯밤 ‘도급택시’를 타셨나요

‘달리는 흉기’ 양산하는 택시 도급제… 무자격자가 운전하고 탈세 · 범죄 유발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택시업체와 중간사장들은 도급택시 운영으로 세금 없는 현금 장사에 열올리고 있다. 고물상 모퉁이에 차려진 서울시내 한 유령 택시회사.

택시라고 다 같은 택시가 아니다.

혹시 택시를 탔을 때 운전기사의 얼굴과 기사자격증에 있는 얼굴이 달라 의아했던 적이 있는가. 아니면 경기도에서 서울 번호판을 단 택시를 타본 적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십중팔구는 일반회사에 소속된 택시가 아니라, ‘도급형 택시’일 공산이 크다. 도급제는 회사가 택시 한대당 하루 또는 한달 단위로 돈을 받기로 하고 외부인에게 차를 넘겨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도급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는 회사 소속이 아니다. 도급기사들은 회사에서 월급은 못 받지만, 회사에 입금하는 일정금액을 제외한 초과 수입금을 가져간다.

‘운휴차량’신고 뒤 브로커에 넘겨

경기 불황에 택시기사 구인난으로 각 회사들의 택시가동률이 50%대로 떨어지면서, ‘남는 택시’를 회사 주차장에서 놀리기 아까운 사업주들이 앞다투어 도급제에 뛰어들고 있다. 택시회사는 이를 ‘운휴차량’으로 행정관청에 신고한 뒤, 그만큼의 세금을 면제받고, 뒤로는 이렇게 세금 한푼 떼지 않는 ‘알짜배기 현금장사’에 열을 올린다.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사다.

도급제는 매일 일정금액을 입금하는 ‘일도급’과 한달에 특정 액수를 정해놓는 ‘월도급’, 아예 2500만원 안팎을 내고 택시에 대한 권한을 사버리는 ‘지입제’ 등으로 나뉜다. 대부분 일도급은 하루 5만원, 월도급은 한달에 250만원 정도를 회사에 입금해야 한다.

회사에서 직접 파견한 중간관리인 또는 한대당 얼마간의 보증금을 내고 택시를 ‘빌려온’ 외부인(중간사장)은 운전기사 모집부터 회사 사납금 입금 등을 모두 책임진다.

비밀유지를 위해 도급차량들의 교대와 수금은 차고지 바깥에서 관리된다. 서울 변두리 기사식당이나 LPG 가스충전소, 주택가 근처의 외진 공터 등이 ‘회합’ 장소다.


△ 기사식당 앞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도급 택시들.

지난 3월26일 오후, 서울 중랑구 상봉동의 한 기사식당 앞에는 ㅈ운수 소속 택시 10여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얼핏 식사를 하기 위해 차를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식당 안은 텅 비어 있고 운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 택시기사가 “다 도급택시들”이라고 귀띔했다. 도급기사가 오전반(새벽 4시~오후 4시)을 끝내고 식당 앞에 차를 세워놓으면 다음 운전자가 교대시간에 맞춰 나타나 차를 몰고 간다. 물론 차 열쇠는 두개다. 식당에서 운전자들이 밥을 먹는 조건으로 기사식당쪽은 식당 앞길을 내주는 것은 물론, 일일 ‘사납금’을 대신 받아주고 세차까지 맡아서 해준다.

근처에 있는 LPG 가스충전소에도 교대시간인 6시를 전후로 택시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대시간 안팎으로 택시가 10여대씩 서 있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대부분은 가스충전도 하고 다음 운전자에게 차량을 교대하기 위해 들어온 차량들이다. 서울 망우동에서는 아예 컨테이너를 마련해놓고 도급운전사를 모집하는 ‘기업형 도급’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예 택시기사 인력시장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의 한 대로변 공터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인력시장’이 열린다. 택시회사에서 보증금을 내고 ‘빌려온’ 차량 대여섯대가 공터에 서 있고, 택시운전을 하려는 사람들은 교대시간에 맞춰 이곳에 오면 된다. 택시를 빌려온 이른바 ‘중간사장’은 찾아온 이에게 택시를 내준다. ‘중간사장’은 택시를 가져올 때 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택시 한대당 매월 200만원을 회사에 납입하기로 계약한 뒤, 자신이 모집한 기사들에게는 매달 270만원을 벌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남는 차액이 중간사장의 몫이다. 보통 10대 안팎을 굴리니, 가만히 앉아서 매달 700만원의 수입을 챙기는 셈이다.

해고자 · 신용불량자들이 무리한 운행강행

반면, 도급기사들은 사납금을 제외한 초과수입금을 챙기는 대신, LPG 가스비와 차량 운행에 들어가는 소소한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아, 삶은 피폐해지고 운행은 점점 무리해진다. 도급기사 ㅇ씨는 “보통 오전에는 12시간 동안 250km를 달려도 10만원 벌기가 바쁘다”며 “회사에 내는 5만원과 가스비 3만원, 밥값 등을 제외하면 한달에 만질 수 있는 돈은 많아야 80만원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 만난 한 도급기사는 기사 대부분이 택시회사 해고자나 신용불량자, 단기간만 운전하려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택시업계에서는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된 경우 등에는 ‘블랙리스트’가 있어 다른 회사로 취업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해고자들이 도급차량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 또 월급을 받으면 절반을 압류당하는 신용불량자들도 도급차로 몰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대열에 들어섰다. 사업을 하다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ㄱ씨는 “1~2년 죽어라 일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 도급택시를 몰게 됐다”며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 거리에서 일당을 지급받는 도급 택시기사.

‘끝까지 내몰린’ 이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택시운전에 필수적인 택시운전 자격증이 없거나 택시운전에 필요한 정밀검사를 받지 않은 이들도 운전대를 잡는다. 도급기사 ㅅ씨는 “서류를 요구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형식적일 뿐 나중에 내겠다고 하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차 열쇠를 넘겨준다”며 “도급기사 중에 최소한의 자격증이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12시간 단위로 계속 쉬지 않고 차를 ‘돌리다’ 보니, 최소한의 정비를 할 시간도 장소도 없다.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 상태가 심하지 않으면 ‘모르는 척’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운전자 개인에게 넘어간다. 도급기사 ㅎ씨는 지난해 승용차를 뒤에서 받는 사고를 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수리비와 합의금을 합쳐 200만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차량이 원래 소속된 회사가 우선 보험으로 처리한 뒤, ㅎ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했다. ㅎ씨는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기 때문에 꼼짝없이 돈을 물어줘야 했다”고 털어놨다.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등 택시범죄의 대부분이 도급차량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택시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비밀’이다. 도급기사들이 회사 소속이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부족한데다, 자질도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도급차량을 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체택시의 40% 추정… 솜방망이 처벌

하지만 도급제를 단속해야 할 관청들은 너무 ‘무심’하거나 ‘관대’하다. 기본적으로 진정이 있어야만, 해당 사안에 대해 단속할 채비를 한다. 지난해 서울시는 중랑구의 ㅅ교통이 40여대를 도급차량으로 운영했다는 ‘혐의’를 두고, 해당 구청으로 넘겼다. 하지만 막상 도급이 인정된 것은 고작 3대뿐이었다. 서울 노원구의 ㅎ교통도 27대를 도급 운영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2대만이 도급 사실이 인정돼, 해당 차량 60일 운행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택시업계 관계자들은 전국 회사택시의 적어도 40% 가량이 도급택시일 것이라고 잘라말한다. 사업주와 중간사장들이 택시 몇대로 앉아서 세금 한푼 떼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는 사이,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도급차량들은 ‘달리는 흉기’가 되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