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최종 순간의 협상이 공동성명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면서 “위기 종식쪽으로 긍정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는 보도가 회담 중에 나왔지만, 빛바랜 결론은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간격이 좁혀졌다는 증거를 별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은 미국의 태도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시큰둥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만이 이례적으로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이 보여준 태도는 그리 반길 만한 게 아니었다. 북한은 여전히 고농축 우라늄의 존재 자체를 강하게 부인했다. 모든 핵을 동결하겠다던 당초의 제안에서 물러서 평화적 목적의 핵프로그램의 개발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2월29일치 보도에 따르면 평양은 지난해 12월과 1월에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받는 대가로 핵무기 프로그램은 물론 민간 핵산업까지 동결하겠다고 제안했다.
“적대시 정책 포기 않고 요술만”
또 북한은 최종 순간에 사소한 부분의 수정을 요구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선언의 채택을 막고, 대신 중국이 공동성명보다 덜 공식적인 의장성명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경우 워싱턴 강경파들은 미국 대표단을 향해 회담을 그만두고 귀국하라는 훈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 2월28일 베이징 북한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계관 북쪽 수석대표. 그는 미국 대표단의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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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환영성명을 낸 것이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2월28일 낸 언론성명에서 “2차 6자회담의 결과를 환영한다”면서 “회담 참가국들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등 두 가지 모두에 기반을 둔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폐기의 필요성을 포함한 한반도의 포괄적인 비핵화에 관해 매우 진지한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회담에서 우리의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의했고, 우리 사이의 고도의 협력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즉,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 성과보다는 나머지 나라들과의 협력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적한 것처럼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자신들은 양보하지 않고서도 5개국과의 공조를 더욱 확고히 다졌다는 점에서 외교적 성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6자회담에 임하는 부시 행정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설득해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폐기’라는 목표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간 한국과 중국 등이 믿지 않았던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의 존재를 주변국들이 인정하게 만든 것을 큰 성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을 고립시킨 데 대해 의미를 두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미국의 이런 의도를 이번 6자회담에서 간파했다. 이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 내용이나 2월29일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서 잘 감지된다.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지하고 인내성 있는 입장으로부터 다음번 6자회담의 개최 시기와 실무그룹 조직 문제에 합의를 해주었다”면서 “그러나 회담이 이어진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기는 어려우며, 앞으로 핵문제 해결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쪽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 이번 회담에서 다른 복잡한 이슈들도 비중 있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은 선핵포기와 미사일, 재래식 무기, 생화학무기, 인권 등을 제기해 회담의 장애를 조성했다”는 북한 외무성의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서 드러났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과연 핵문제를 해결하고 관계 개선을 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만한 정황들이다.
북한, 부시 재선에 유리한 카드 안 쓴다
김계관 부상의 “미국이 적대시 정책은 포기하지 않고 요술만 쓰려고 한다”고 말한 데서도 북한의 우려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북-미간의 차이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판단은 그리 틀려 보이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미리 짜맞춘 듯 6자회담이 열리는 당일에 연례인권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정권들 가운데 하나”라고 비난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나오는 소식들은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정권들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암담한 그림을 계속 보여준다”면서 “엄격한 정보 통제는 북한 사회의 전체주의적 압제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날인 2월26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정권이 평화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약점을 보이면 세계는 비극쪽으로 표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는 겉으로 북한과 6자회담이라는 대화틀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이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향후 북핵 문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러시아쪽 수석대표로 참석한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문제는 여러 정치적 요인들 때문에 올해 안에 해결되기 어렵다”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월25일치에서 미국보다는 북한이 오는 11월의 미국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기대하면서 시간벌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대선 때문에 북핵 프로그램 중지를 위한 6자회담의 진전이 별로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번 2차 6차회담에서 넘기 힘든 부시 행정부의 높은 벽을 더욱 절감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현 부시 대통령만 빼면 다른 어떤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협상을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북한은 자신들의 태도가 부시의 재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치밀하게 검토한 뒤 행동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부시의 재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유리한 카드를 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북한이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부시 행정부와의 적절한 타협은 꾸준히 모색할 것이다. 현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식량난과 경제난을 덜기 위해서도 타협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다음 회담 개최 시기와 실무그룹 구성에 흔쾌히 합의한 것도 미국이나 국제사회와의 극단적 대립이나 충돌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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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혁 한국 수석대표가 2월28일 브리핑 도중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을 받으며 피곤한 듯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6개국 합의문서인 ‘의장성명’ 채택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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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부진하면 핵 개발에 박차를?
한국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대선을 앞둔 지금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따라 일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게 가장 소망스럽지만, 북한이 그렇게 나오리라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들이 양보를 해 북핵 문제를 풀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북핵 위기를 방치하거나 더 악화시켜서도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대선까지 북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우선목표를 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 시간을 끌 경우 어느 쪽이 유리할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은 저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이나 끌자는 것 같은데, 핵문제 해결이 지연된다고 하여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없다”며 “그동안 우리는 필요한 조치를 ‘계속 더 빠르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이 지지부진할 경우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리라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참으로 위험한 곡예를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