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03일 제499호
일터 바꾼다고, 누구 맘대로!

이주노동자 옭아매는 고용주 특권 ‘사업장 이동제한 규정’…임금착취 · 인권침해 도구로 불법 체류자 양산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2월26일 방글라데시인 하치브가 연행된 이주노동자 석방을 위한 단식 10일째를 맞아 항의의 뜻으로 삭발시위를 펼치고 있다.(한겨레 임종진 기자)

“너, 니네 나라로 가.”

한국말을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도 이 말은 알아듣는다. 고된 노동도 참아내고 인간적 모멸감도 견딜 수 있지만, 손에 쥔 것도 없는데 집에 돌아가라고 등 떠미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둔 정부는 불법 체류자들은 모두 내보내고, ‘깨끗한’ 합법 노동자만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환상은 욕심에 그칠 공산이 커보인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송출 브로커와 사업장 이동 제한, 인권침해 등으로 불법 체류자를 제도적으로 ‘양성’해왔다면, 이번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장 이동 제한’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시행 전부터 발목잡는 ‘고용허가제’

정부는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고용허가제 법률안을 올 8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1년의 유예기간동안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출국시키고, 4년 미만 체류 노동자들에게 합법적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등 “고용허가제 전환을 위한 토대 마련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합법화된 외국인근로자 취업 및 고용관리지침’을 각 지방 고용안정센터에 내려보낸 상태다. 그러나 이 지침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고용허가제 법률 25조인 ‘사업장이동제한’ 규정을 적용해 합법화된 노동자들의 일터 이동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옮길 수 있는 때는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등에 불과하다. 만일 근로조건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일터를 옮겨야 할 때도, 고용주가 ‘외국인 근로자 고용변동 등 확인서’(확인서)를 써주지 않고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하면 그대로 비자가 취소돼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고용주가 전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악덕 고용주들은 이렇게 ‘거저 주어진 특권’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현장에서는 그 ‘특권’의 ‘예고편’이 한참 상영중이다.


△ 고용주가 절대적 권한을 갖는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으로 합법화된 많은 이주노동자들마저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경기도 화성의 ㅎ업체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 담버(28)는 요즘 얄팍해진 월급봉투에 한숨만 나온다. 1년 가까이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지만, 갑자기 지난해 12월부터 월급이 절반인 60만원으로 줄었다. 사장에게 물었더니 “돈 받기 싫으면 나가라. 너희 나가도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두고 싶어도 사장이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해버릴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담버는 “고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이어서, 숙련공의 경우에는 한달에 150만원까지 받았었다”며 “그만두고 싶어도 사장님이 (확인서에) 사인을 해주지 않아서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 라주(29)는 월급 1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여섯달을 일했지만 한달에 50만원씩 두 차례밖에 받지 못했다. 사장은 ‘곧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라주는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이탈’했다. 며칠 뒤 고용안정센터를 찾았으나, 사장이 이미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해버려 비자는 취소된 상태였다.

욕설과 폭행 등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있어도 그만둘 수 없다. 지난 2001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세칼(25)은 한국말은 서툴지만, ‘X발X끼’와 ‘개XX’는 분명하게 발음할 수 있다. 공장장은 걸핏하면 반말에 욕설을 퍼부었고, “회사에서 내보내겠다”며 엄포를 놨다. 심지어 밥먹을 때도 “많이 먹는다”며 구박했다.

며칠 전 구토와 현기증으로 쓰러져 1년 만에 처음으로 출근을 하지 못했다. 오후에 나가겠다고 동료들에게 말한 뒤, 방에서 쉬고 있는데 공장장이 들어왔다. “10분 안에 가방을 싸서 나가라”고 닦달했고, 세칼은 그대로 쫓겨났다.

일부 고용주들이 임금 협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는 사례도 이주노동자 상담소에 계속 접수되고 있다.

고용주 신고에 비자 취소돼버려

경기도 안산의 ㄷ물산에서 일하던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 10명은 최근 집단해고를 당했다. 언제부터인가 112만원의 월급에서 매달 3만8천원이 공제되자, 이를 묻기 위해 회사의 이사를 찾은 것이 사단이었다. 피고용자 입장에서 따지기도 어려웠던 이들은 월급을 3만원씩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 1년 넘게 성실히 일했고, 매달 4만원 가까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어서 3만원의 월급 인상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이사는 “나가. 모두 나가. 너희들 나이지리아 가버려” 하면서 거칠게 손을 내저었고, 그게 끝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앤디미 등 이주노동자 26명도 얼마 전 여섯달 동안 일한 공장에서 한꺼번에 해고됐다. 사장이 “일거리가 없다”며 이주노동자들만을 골라 해고한 것이다. 분노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이주노동자 · 동포 추모제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김진수 기자)

최근 이주노동자를 위한 상담소에는 이처럼 불법 체류자가 됐거나, 될 위기에 처해 있는 이들의 상담이 빗발치고 있다. 사업장 이동 제한은 이주노동자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힘들게 고용주의 확인서를 받더라도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된다. 노동부는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기관을 노동부 산하 각 지역의 고용안정센터 69곳으로 못박았다. 노동자를 구하는 사업체와 일자리를 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중개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국적과 나이, 기술, 보수, 언어능력까지 모든 요건을 꼼꼼히 맞춰 중개 업무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취업 방해 하는 ‘고용알선센터’

중소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서인천고용안정센터에는 합법화 등록이 진행됐던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45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구직 신청을 했다. 반면, 사람을 구한다고 등록한 업체는 100여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구인 신청을 한 뒤 ‘한달간 내국인에 대한 적극적인 구인 노력을 한 경우’에만 알선받을 ‘자격’이 생긴다. 이 때문에 고용알선센터에서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사업주가 예전에 함께 일했던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도 ‘지정알선’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용안정센터가 추천하는 다른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구직 신청을 한 이주노동자들은 더 애가 탄다. 고용안정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기 전까지는 실업자로 있을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고국의 가장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실업은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 고용주의 확인서를 받더라도 고용안정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해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실업 상태가 길어질수록 이주노동자들의 한숨은 깊어진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 올리버(35)는 지난해 12월 초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해고됐다. 사장의 고용변동확인서를 받아 고용허가센터 구직 대기자 명단에 등록했지만, 두달 가까이 아무 소식이 없다. 특히 나이지리아에 두고 온 두살 난 딸과 아내에게 생활비를 못 보내고 있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올리버는 “안산과 의정부, 서울 등에 있는 고용안정센터를 돌아다니면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있다”며 “아이가 굶고 있을 생각을 하면 미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합법화 조처를 믿고 출국했다가 이달 초 재입국한 재중동포 조아무개(40)씨도 실직 상태이다. 출국 전 서울 가리봉동의 한 식당과 고용계약을 맺었지만, 다시 돌아온 식당에는 일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구직 신청 뒤 두달 이내에 재취업이 되지 않으면 비자가 취소된다.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고용안정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고용안정센터 관계자는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해고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많지만, 일자리 알선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재취업 기간이 지나 비자가 취소되는 건수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더 합리적인 합법화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불법 체류와 인권침해를 조장하는 ‘사업장 이동 제한’을 ‘이주노동자 신고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존의 미등록 노동자들을 체류기간과 상관없이 합법화하고, 합법화된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무조건적인 단속과 비합리적인 합법화 조처로 오히려 불법 체류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국제연합(UN)의 ‘국제 이주노동자 및 가족에 관한 권리 협약’을 비준해, 이주노동자 문제를 인권과 정의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센 노동자 저항… ‘신고제’로 전환해야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 60여명이 석달 넘게 ‘이주노동자 합법화 보장’을 외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화성외국인보호소, 여수외국인보호소 등에 수용된 10여명은 열흘 넘게 단식투쟁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불법 체류자 자진출국 기한을 네 차례나 연장·수정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자 “국가 공권력 실추와 고용허가제 도입 차질”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믿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정부가 불법 체류자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내고’ 탄압하는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 ‘노동의 권리’와 ‘직업 선택의 자유’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아직도 머나먼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