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03일 제499호
부동산 거품, 붕괴는 없다?

이헌재 부총리 소신에 10·29 부동산대책 ‘흔들’… 정책 완화 꾀해 종합부동산세 도입 ‘기우뚱’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단행한 ‘10·29 부동산 대책’이 흔들거린다. 투기 억제보다는 경기 위축과 부동산 보유자의 불만에 관심이 많은 이헌재 부총리의 소신에 따라 관련 법안의 시행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부동산 종합대책의 향방이 묘연해지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관심이 ‘투기억제’보다는 ‘정책완화’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김진수 기자)

지난해 발표된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의 약발이 끝나가는 것인가? 대책 발표 이후 하락세를 지속했던 아파트값이 2월 들어 4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는 3월1일 “지난 2월 중 전국 아파트값이 0.38%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11월 0.26%, 12월 0.75%, 올해 1월 0.35% 떨어졌으나 2월에는 0.66%나 올랐다. 전셋값도 2월에 0.17% 올라 4개월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주간 단위로는 이미 7주 연속 아파트값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아파트값 오름세로… ‘10·29대책’ 부정적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2월의 아파트값 상승은 이사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지난달 아파트값 상승은 이사철과 방학으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증가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급격한 상승보다는 지역별·단지별로 부분적인 오르내림이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부동산값 상승에 절망했던 사람들은 최근의 부동산값 움직임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이헌재 경제팀의 출범 이후 10·29 대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부동산값 안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가고 있다.

정부 경제팀의 수장인 이헌재 부총리는 현행 투기억제 대책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월11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10·29 대책은 투기세력을 막는 것과 부동산 소유 관련 세제를 바로잡는 측면이 혼재된 채 진행돼서 자칫하면 건설경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부총리 취임 이전부터 10·29 대책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취임 전 한 사석에서 “부동산 대책은 그렇게 강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과도하게 하다보니 건설경기가 죽고 내수침체가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당장 정책을 바꾸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분간은 현행 부동산 대책을 철저하게 집행해서 투기 소지를 막겠다. 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 수급상에 구조적 투기요인이 없어질 때까지는 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책이 언제, 어느 정도 수준으로 바뀔 것이냐다. 경제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 부총리는 당장이라도 정책을 바꾸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는 취임 이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5% 성장이 어렵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꺾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 전 사석에서 “내수 회복을 위해서는 부동산 대책을 완화해야 하는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하는 마당에 누가 정책변화를 시도하려 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2월26일 열린 정례브리핑에서도 “당분간은 현행 부동산 투기대책을 철저하게 집행해서 투기 소지를 막겠다. (주택) 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 수급상 투기요인이 없어질 때까지 현재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정책을 완화하겠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발언이다.

‘강남 고밀화’ 발언 맞물려 의심의 눈길

부동산 대책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도 한몫했다. 강 장관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지역을 순방 중이던 지난 2월24일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심 고밀화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으며, 강남 문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재건축 아파트의 밀도를 높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가 투기지역 지정 등으로 어렵게 봉합돼 있는 상황에서, 강 장관의 이런 발언은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 강동석 건교부 장관(맨 왼쪽)의 발언이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맨 오른쪽)은 부동산 투기 억제에 대한 의지를 여전히 비추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강 장관의 발상은 강남 재건축 지역을 지금처럼 20~30층 규모가 아니라, 50층 이상의 고밀도로 개발해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이로 인해 오르는 땅값은 공익으로 환수해 쓰자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교부는 “토지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교통개발연구원 등에서 연구 중이나 아직 정부 방침으로 확정된 내용은 없으며, 이 연구에 재건축 지역의 용적률 고밀화 방안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강 장관의 발언을 부인했다. 발언이 논란을 빚자, 강 장관은 “원론 차원의 이야기일 뿐, 재건축 단지를 고밀도로 개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동안 급락했던 서울의 재건축 아파트값이 2월에 2.25%나 오르며 아파트값 상승세를 주도한 상황에서 강 장관의 발언은 10·29 대책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도 다른 재화처럼 수요와 공급이 가장 핵심적인 변수다. 그러나 정부정책의 영향이 다른 어느 상품에 비해 크다. 전문가들은 현재 아파트 공급 추세로 보면 올해부터 2~3년 동안은 아파트의 공급이 과잉될 것이라고 본다. 다른 특별한 요인이 없다면 거품 해소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아파트 착공은 지난 1999년 이후 본격적으로 늘었으며, 올해 들어서야 건축허가 면적이 줄어들었다. 최근 분양경쟁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투기적 수요가 줄어들면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최근의 아파트값 상승은 기술적인 반등에 불과해 별 의미가 없다”며 “가수요 억제제도가 시행되면서 갈수록 공급과잉이 현저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한 만큼, 정부 정책이 변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안정에 대해서만큼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확고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투기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경우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10·29 대책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종합부동산세의 도입 과정이 정부의 의지를 시험할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지난해 10·29 종합대책에 따라 오는 6월 말까지 종합부동산세 법안을 만들어 정기국회에 상정한 뒤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세금은 종합토지세를 지방세와 국세로 이원화해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 토지가액을 합산한 뒤 누진세율로 과세하는 것이다. 현재 종합토지세는 지방세로 돼 있는데, 지방자치단체들은 과표 인상에 소극적이어서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막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투기 억제를 위해 전국의 토지를 합산 누진과세하는 기능을 국세로 이관해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주택경기 위축 · 보유자 불만, 고민 쌓이네”

그러나 이 부총리는 취임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택시장은 기본적으로 공급 능력을 높여 수요와 균형을 맞추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게 옳다”고 밝혔고, 지난 2월18일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에서도 “세제 문제는 좀더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29 대책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을 뿐 아니라, 이미 커진 거품을 장기적으로 빼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품 제거 과정은 주택경기를 위축시킬 것이고, 건설업자들과 부동산 보유자들의 불만을 키우게 된다. 10·29 대책 입안에 관여하지 않은 이 부총리의 고민은 집없는 사람보다는, 건설업자와 부동산 보유자의 불만쪽에 더 쏠려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