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대한민국 대학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못지않은 날이 올 듯하다.

안타까운 점은 등록금만 아이비리그 수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1년 등록금 2만달러(약 2400만원)라는 아이비리그까지는 아니지만, 최근의 가파른 등록금 인상 추세를 볼 때 등록금 ‘1천만원 시대’를 넘어서 ‘아이비리그 시대’로 진입하는 일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과 학교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대부분의 대학이 7~15%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발부했고, ‘당연히’ 반발하는 학생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 “올해의 ‘등록금 투쟁’은 오래 지속된다.”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합리적 등록금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

사립대학의 경우 1989년 대학 등록금 자율화 조처 이후, 매년 10% 안팎의 높은 오름세를 보여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98년과 99년 각각 0.5%, 0.1% 인상하는 데 그쳐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00년에는 평균 9.6%를 올려 단박에 ‘본색’을 드러냈다.

사립대, 고무줄예산으로 해마다 거액 챙겨

이후로도 2001년 5.9%, 2002년 6.5%, 2003년 6.7% 등의 상승률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 문제는 등록금의 인상폭이 납득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지난 2000년 소비자 물가지수를 100으로 할 때 2003년 소비자 물가지수는 110.7로 3년 동안 10.7%가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사립대 등록금지수는 120.8로 20.8% 올랐고, 특히 서울 지역 사립대학의 등록금지수는 123.3이었다. 평균 물가상승률의 2배를 기록하는 것이다. 대학쪽은 교수 채용과 건물 신축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등록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등록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재정구조에서 등록금을 올리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최근 3년간 전국 일반 사립대학의 예·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립대학은 지출 부분에서는 실제 쓸 비용보다 예산을 많이 편성하고, 수입은 실제 들어올 금액보다 축소 편성하는 방법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불합리한 예산 편성으로 사립대학들은 2002년 한해에만 무려 1조1459억원의 차액을 남겼다. 이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2000년에는 9500억원, 2001년 9397억원이 남았고, 이 돈은 대부분 이월적립금으로 남겨졌다. 게다가 이월적립금은 고스란히 남겨둔 채 예산의 확대 편성으로 인한 부담은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학생들에게 그대로 떠넘기고 있다. 황희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립대학이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결산에 근접한 예산을 편성해 부당한 등록금 인상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공립 대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교육의 국가책임”이라는 설립 취지 덕에 학비가 쌌다는 것은 이제는 아득한 옛날얘기다. 국·공립대의 등록금 인상폭은 사립대보다 더욱 가파르다. 올해 서울대 인문계열 신입생의 등록금은 지난해보다 15.69% 오른 199만2200원을 기록했다. 자연계열과 공대는 각각 247만7천원, 25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9.02%와 8.98% 올랐다. 이런 추세로 가면 웬만한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부럽지(?) 않은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 등록금 인상분 반환을 요구하는 서울대의 현수막(왼쪽,김진수 기자). 한 연세대 학생이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며 동전으로 낸 등록금(오른쪽,한겨레 강창광 기자).

사용내역 감춰진 국 · 공립대 ‘기성회비’

이러한 국립대 등록금 인상의 주범은 기성회비다. 기성회비는 긴급한 교육시설 확보나 학교 운영 등을 지원하는 데 쓰도록 되어 있다. 이런 기성회비를 결정하는 것은 기성회이고,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모두 기성회 회원이다. 하지만 본인이 기성회 회원임을 아는 학부모는 거의 없을뿐더러, 기성회의 예산을 결정하는 권한에서도 아예 배제되어 있다.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선출되지 않은’ 기성회 이사들을 불러 결정하도록 한 뒤, 부담은 나머지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3학년에 복학하는 ㅇ(24)씨가 올해 내야 하는 등록금은 166만6천원이다. 수업료는 마지막 학비를 냈던 2001년보다 4만5천원 오른 32만9천원에 불과했지만, 기성회비는 무려 56만6천원이 오른 133만7천원이 된 것이다.

ㅇ씨는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학교도 다니지 못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기성회비의 사용 내역은 그 결정 과정만큼이나 투명하지 않다. 지출의 대부분이 교원 처우개선과 시간강사료, 공공요금 부족분 등 기성회계의 목적에 맞지 않아 부당한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전남대는 요즘 ‘노트북 사건’으로 학교 전체가 뒤숭숭하다. 전남대는 지난 2002년 자체발전 평가지원금과 2003년 기성회계에서 모두 11억원을 교수 노트북 구입비로 지출했다. 그러나 최근 전남대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노트북이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하면서, 학교쪽이 불필요한 예산을 집행했음을 증명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남대는 올해도 뚜렷한 인상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애초 기성회비 18.5% 인상을 주장해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상황이 이쯤 되자 개별 대학에서 진행되던 등록금 투쟁이 이제는 연대투쟁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 등록금 투쟁은 개나리가 피는 3~4월에 집중됐다가 꽃이 질 때쯤 잦아들어 ‘개나리 투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지난 2월 중순 전국 70여개 대학으로 꾸려진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가)’는 학교 안의 문제에서 벗어나 등록금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또 합리적인 등록금 결정을 위해 총장대표와 학생대표, 교수노조, 대학노조, 학부모대표, 교육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제안하고 나섰다.

그동안 ‘수업료는 학교장 재량’이라며 애써 외면하던 교육부의 움직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각 대학의 등록금 인상폭을 지시할 수는 없지만, 등록금 결정 과정에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참여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각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재정을 마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등록금 인상폭을 정부가 직접 지시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교육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학생 연대투쟁… 교육부 법적장치 모색

한 전문가는 “교육 재정의 국민총생산(GNP) 대비 6% 확보와 대학의 민주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대학 내의 등록금 갈등은 해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등록금 문제는 학교의 비민주적인 결정과 형식적인 협상 과정, 정부의 무관심 등이 얽혀 있어 ‘결단’이 없는 한 ‘해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등록금 문제가 학교 담장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제는 ‘우골탑’은커녕, 소만 팔아서는 대학에 얼씬도 못하는 서글픈 시대가 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