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로 핵폐기장 논란의 첫 매듭 지은 부안…군수의 유치 발표 뒤 공동체는 산산히 부서져
부안=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다 전북 부안 톨게이트로 들어서면, 노란색 깃발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논두렁 한가운데 꽂혀 있기도 하고, 시골집 마당의 나뭇가지, 담벼락 등 구석구석에서 휘날리고 있다. 노란색은 바래고 ‘핵폐기장 반대’라는 글씨는 희미해져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 깃발들은,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사건’을 알리고 있었다.
지난 7월14일 김종규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유치 결정으로 시작된 부안의 싸움은 꼭 일곱달 만에 이뤄진 2·14 주민투표로 우선 한번의 매듭을 지었다.
주민투표법이 오는 7월 이후에나 발효되기 때문에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은 없지만, 부안 주민들의 의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정치적 효력’을 만천하에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번 투표는 주민들의 ‘사적 행위’여서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투표인명부 작성, 투표함 만들기, 투·개표 관리, 투표소 경비 등 하나부터 열까지 부안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내야 했다. 공정한 투표를 위해 변호사 40명이 투표관리위원장으로 참여했고, 시민사회단체와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 400명이 부안을 찾았다.
투표 앞두고 온갖 소문 나돌아
주민투표에 대한 호응은 ‘예상대로’ 뜨거웠다. 12개 읍·면 36개 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팡이를 짚어야 간신히 한 발짝을 옮기는 꼬부랑 할머니들이 단체로 투표소를 찾았고, 교통사고로 다리에 깁스를 한 중년남성도 환자복을 입고 나타났다. 이미 오후 5시께 전체 투표율은 70%에 가까웠고, 위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격포면에서는 오후 4시에 80%의 투표율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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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투표에 사용된 투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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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핵폐기장 논란의 중심지인 위도에서는 핵폐기장 유치를 환영하는 ‘위도발전협의회’ 관계자 100여명이 투표장을 점거해 투표 자체가 무산됐다. 협의회 회장 정아무개(52)씨가 “투표하면 자살해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핵폐기장반대 대책위 관계자는 “(정씨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동네사람끼리 굳이 투표하겠다고 나설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부안에는 투표를 앞두고 온갖 소문과 말이 끊이지 않았다. 투표 전날인 13일, 찬성쪽에서 경비행기를 동원해 ‘주민투표를 거부해야 한다’는 유인물을 부안읍내에 뿌렸다고 했다. 투표를 못하게 하려고 투표 전날 시골 노인들을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떠난다는 소문도 돌았다. 전세버스 60대가 이미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공공근로를 하는 영세민들을 협박해 투표를 못하게 한다는 말도 돌았다. 투표 당일에는 전북도청과 부안군청·읍사무소에서 동원된 공무원 500여명이 가가호호 돌며 주민투표의 ‘부당성’을 알렸고, 한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폭행당해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힘겹게 실시하는 주민투표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한 투표소에서 찬성쪽 주민 일부가 “9월 주민투표에 참고하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들이닥쳤다는 소문이 돌자 건장한 주민 서너명이 각 투표소에 배치돼 한동안 입구를 지켰다.
“반핵 보따리만 있으면 든든혀”
오후 6시, 부안동초등학교에 설치된 개표장에 투표함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표정에는 기대와 초조함이 드리워졌다. 오후 7시30분께 하승수 투표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이 투표율 72.01%를 발표하자, 일부 주민들은 예상보다 ‘낮은’ 투표율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표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투표소에서 90% 이상의 반대표가 쏟아져나오자 환성이 터져나왔고, 몇몇 주민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얼싸안았다.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부안읍내 ‘반핵민주광장’은 부안주민 1천여명이 모여 미리 승리의 즐거움을 나눴다. 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한 상인은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백설기를 돌렸고, 광장 뒤편에서는 드럼통 위에 철판을 깔아 고기를 굽는 ‘바비큐 잔치’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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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인명부 작성부터 투표함 만들기, 투 · 개표 관리 등 이번 주민투표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안 주민들과 자원봉사자의 손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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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장소를 돌아보다 여성 주민들 곁에 노란 리본을 매단 종이가방이나 보자기, 시장바구니 등이 놓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반핵보따리’라고 했다. 거리시위가 많아지면서 아예 집회용 보따리를 하나씩 마련한 것이다. 바닥에 깔고 앉을 스티로폼 깔판과 바람을 막아줄 담요, 촛농이 잔뜩 묻은 구겨진 종이컵 서너개, 토막초, 나무판을 댄 장갑 등이 나왔다. 이막실(73)씨는 “아들이 춥다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디, 안 나갈 수 있간디. 이 보따리만 있으면 든든혀” 하며 미소지었다.
김진원 핵폐기장반대 대책위 조직위원장은 “6만 부안주민들의 싸움으로 핵 산업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렸고, 참여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며 “싸움을 거치면서 주민들 스스로 생명과 환경, 평화의 문제까지 고민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지방자치의 새로운 희망’ ‘시민의 저항권’을 보여줬다는 찬사의 이면에는 쉽게 아물지 않을 공동체의 상처가 남았다.
“6·25 때 거시기 좌익, 우익으로 갈라진 것보담 심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싸움 붙는당께.” 주민투표 뒤 반핵광장에서 만난 ㅅ(57)씨는 막걸리에 불콰해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안에서는 이제 ‘찬성’과 ‘반대’라는 두 단어로 더불어 살 사람인지 상종 못할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핵폐기장 시설에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에 따라 ‘동지’인지 ‘원수’인지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몇십년을 한동네에서 함께 살았든, 피를 나눈 가족이든 지난 일곱달의 싸움은 부안주민들을 갈라놓았다.
형과 동생 사이도 절연
핵폐기장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정(46)씨는 두달 전부터 형님(49)과 가벼운 목례만 나눌 뿐,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외가에서 같이 자라 다른 형제들보다 각별한 사이지만, 형님이 유치 찬성운동의 앞머리에 서면서 관계는 서먹해졌다. 김씨는 “내가 이렇게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데, 형님이 나서서 찬성운동을 하는 게 동네에 창피했다. 두달 전에 형님에게 서운하다고 말하니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고 털어놨다. 부안의 지역신문 대표로 찬성쪽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외숙과도 멀어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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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투표율은 72.01%를 기록했고, 91.83%의 주민이 유치 반대에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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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생활을 접고 3년 전 고향 부안으로 내려온 ㅂ씨는 “싸움이 지긋지긋하다”며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부안은 산과 바다가 차로 10분 거리에 다 있어요. 공기도 좋고 풍광도 좋고…. 게다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시비도 잘 안 붙었어요.” 핵폐기장 문제에서 찬성쪽 입장이었던 ㅂ씨는 이제는 즐겨찾던 포장마차도 잘 가지 않는다. 뉴스를 보다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 되어 옆자리 사람들과 크게 싸움이 붙었던 것이다. ㅂ씨는 “내가 왜 내 생각을 말도 못하는 동네에 살아야 하냐”며 “가게가 정리되면 군산이나 전주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붕괴’가 가장 심한 곳은 위도다. 주민들 모두 “형님·동생·아저씨·조카 사이”라는 위도는 이번 핵폐기장 문제로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위도 출신으로 위도지킴이 재경지부 회원인 송종갑씨는 “위도에 들어가면 동네사람들이 ‘반대파 온다’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을 해댄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현금보상이 안 된다는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은 나왔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는 여전히 “조금만 조용해지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주민들에게 흘리고 있다고 했다. 송씨는 “‘반대파들이 시끄럽게 해서 돈을 못 받고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어렸을 때부터 가족처럼 지냈던 사이인데, 이제는 서로 평생 안 볼 원수가 되는 것 같다”며 개탄했다.
주민투표 다음날인 2월15일, 부안읍내 반핵광장에서는 주민투표 승리를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핵폐기장 반대 대책위쪽은 핵폐기장 반대 깃발과 반핵 티셔츠, 모자, 머리끈, 유인물 등이 담긴 항아리를 수레에 싣고 광장으로 들어섰다.
돼지머리와 시루떡으로 차려진 고사상 앞에서 다시는 이런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고사가 치러졌다. 부안 주민들은 이날 ‘부안 선언’을 통해 “핵폐기장은 부안 군민의 손으로 단죄되어 백지화되었다. 핵폐기장은 단지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파괴의 상징인 핵발전 정책의 전환을 위한 투쟁”이라며 “화해와 상생을 실천하여 아픈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고, 생명·평화 부안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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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에는 투표 당일 긴장감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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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선언 “상처를 치유하자”
주민들의 압도적인 반대 의사는 확인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쪽은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유치 찬성쪽 단체인 ‘범부안군 국책사업유치추진연맹’은 이번 주민투표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사적인 여론조사이며, 철저히 비민주적이고 조작된 ‘반핵운동놀음’이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전북도와 부안군도 “폭압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치러진 주민투표는 고려할 가치가 없으며, 오는 9월15일 이후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핵폐기장이 부안에 들어서지 않는다 해도 주민들 사이에 깊이 팬 반목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듯하다. 한 주민은 “찬성쪽에 섰던 사람들이 부안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결정과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부안주민은 ‘핵분열’했고, 결국 모두가 상처를 입고 말았다.
[ 부안사태 일지 ] <2003년> △5월1일 산업자원부, 핵폐기장 관리시설 유치시설 공고 △5월13일 위도주민 핵폐기장유치위, 주민 80% 이상 서명 받아 부안군의회 유치 청원 △7월9일 부안군의회, 핵폐기장 유치 반대 결의 △7월14일 김종규 부안군수와 김형인 군의회 의장, 산업자원부에 유치신청서 제출 △7월22일 핵반대 군수퇴진 부안군민 1만인 궐기대회 △7월24일 산업자원부, 부안군 위도를 핵폐기장 후보지로 최종 결정 △7월26일 산업자원부 장관, ‘현금보상 검토’ 발언. 부안주민 촛불집회 시작 △7월29일 정부, 위도 현금보상 배제 결정 △9월8일 김종규 부안군수, 내소사에서 부안군민들에게 폭행당함 △9월24일 부안군의회 의원 7명, 핵폐기장 백지화 요구하며 무기한 등원거부 결의 △11월18일 정부, 주민투표 불가방침 발표 △11월19일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 정부와 대화 중단 공식 선언 △11월25일 부안 핵폐기장 사태 해결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 촉구 ‘2천인 선언’ △12월10일 정부, 핵폐기장 유치신청 추가접수 결정 △12월12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사임
<2004년> △1월7일 서울대 교수, 핵폐기장 서울대 유치 제안 △1월15일 핵폐기장 관련 부안주민 직접투표 방안 발표 △1월25일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2·14 주민투표 공고 △2월5일 산업자원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공모 공고안’ 발표 △2월14일 주민투표(투표율 72.01%, 반대 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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