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건넸다’ 강삼재 발언파문 ‘안풍사건’ … 한나라당 총선악재 우려 속에 검찰은 안기부 돈 확신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안기부 돈 총선 전용 사건(이른바 ‘안풍사건’)이 점입가경이다.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항소심 공판에서 “자금의 출처는 국고(안기부 예산)가 아니라 92년 대선 잔여금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고백하고 나서면서부터다. 강 의원의 고백이 나오자마자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강씨의 주장을 반박할 ‘소명자료’를 재판부에 내겠다고 공언했다. 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사건의 또 다른 진실은 과연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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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풍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2월6일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안풍사건’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고등법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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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이어져온 ‘안풍사건’
사실 이 사건은 김영삼 전 대통령,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 검찰(대검 중수부) 등 관련된 개인이나 조직의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나느냐에 따라 관련된 개인이나 조직이 입을 정치적·경제적 손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안풍사건은 검찰이 2001년 1월 경부고속철 차량선정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하다가 강 의원의 차명계좌에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김 전 차장을 구속하면서 시작됐다. ‘정치보복’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이은 ‘강력한 대응’으로 수사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검찰은 당시 안기부 돈을 받은 정치인 180명의 명단과 금액을 공개하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소환하는 등 의지를 보였지만, 한나라당의 ‘방탄국회’ 소집으로 강 의원을 한번도 소환하지 못하고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의 결론은 신한국당이 국고인 안기부 예산을 빼내 총선을 치렀고, 이같은 범죄의 주범은 김 전 차장과 강 의원이라는 것이었다.
법원 재판도 파행을 겪었다. 재판부가 3번이나 교체됐다. 첫 번째 재판부에서는 피고인쪽이 전직 국정원장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부의 결심을 거부해 지연됐고, 두 번째 재판부는 피고인쪽이 법관 기피신청을 내 대법원까지 가서 기각됐다. 2년8개월 만인 지난해 9월 내려진 1심 선고에서 법원은 강 전 의원과 김 전 차장에 대한 공소 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안기부가 발행한 자기앞수표가 여러 계좌에서 입·출금을 반복하면서 일부 자금 흐름이 끊기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 뿌리가 안기부 자금임을 인정했다. 두 사람의 공모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안기부 예산 전결권자인 김 전 차장과 집권당 선거자금을 관리하는 선대위원장이던 강 의원이 당시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던 점 등을 들면서 적어도 암묵적 의사전달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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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S의 개입이 드러날 경우 형사처벌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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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선고 이후 한나라당쪽에서는 사건의 진실이 따로 있다는 주장을 조직적으로, 집요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나갔다. 은근히 흘리거나 에둘러 표현하던 ‘방식’은 마침내 직접 대놓고 말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결정판은 강 의원의 2월6일 항소심 재판에서의 고백이었다. 검찰 수사에서는 전혀 거론되지 않던 김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처럼 사건의 결론이 ‘당시 자금이 국가 예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정리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한나라당이 이 사건에 매달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가기관인 국세청을 동원한 ‘세풍사건’의 멍에에다 안기부 자금을 동원했다는 이 사건의 책임까지 한나라당이 짊어진다면 당장 4월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현실적인 이유는 안기부 예산이 맞다는 검찰 수사의 결론과 1심 재판부의 판단을 2심 재판부마저 인정할 경우 국고 손실에 대한 민사적인 배상 책임까지 함께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미 2001년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을 상대로 9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사건 결말 따라 법적 책임소재 비껴
강 의원 역시 한나라당과 같은 배를 탄 상태다. 정치적 ‘주군’인 김 전 대통령을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것은 자신의 급박한 처지에서 나온 것이다. 강 의원의 주장처럼 김 전 대통령이 문제된 돈을 직접 전달했다면 형사적 책임의 소재가 상당 부분 김 전 대통령에게 옮겨지게 된다. 안기부 예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국고손실죄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주범이 되고 자신은 종범이 된다. 단순 전달해서 집행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고 결론 내려진다면 강 의원의 책임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된다. 이 돈이 1992년 대선 때 김 전 대통령쪽이 쓰고 남은 ‘대선잔금’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에는 해당되지만, 당시는 정치자금법이 제정되지 않은 때였고 이미 공소시효(3년)도 지나 형사처벌이나 배상책임에서 면제된다.
이같은 결론은 한나라당과 강 의원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물론 김 전 대통령과 강 의원에게 도덕적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은 올 수 있다.
자금 출처가 대선잔금이 아니라 임기 중 기업인들한테 거둔 이른바 ‘통치자금’일 경우에는 돈의 성격이 정치자금이 아닌 대가성 있는 뇌물로 바뀔 수 있어 뇌물죄의 적용 여부가 논란이 된다. 이 경우 김 전 대통령은 형사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권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하는 데 반해 검찰의 입장은 비교적 단순하다.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 즉 안기부 예산이 아닐 가능성이 0%라는 것이다. 한 수사팀 검사는 “1년 반 동안 계좌추적을 한 사건을 가지고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무척 기분 나쁘다”고 운을 뗀 뒤 “진술에 의존한 사건이라면 모르지만 계좌추적과 관련 핵심인물들의 일치된 진술이라는 ‘물증’이 있기 때문에 사건의 기본 구도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안기부 예산관리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안기부 예산이 총액으로 확정되면 재경부 장관이 발행하는 국고수표로 안기부쪽에 일괄 지급되고, 안기부는 그것을 ‘세기문화사’ 등의 이름으로 개설한 위장계좌(일반 예금계좌)로 분산 예치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빼내서 쓰는 것이다. 또 당시 안기부 한해 예산이 5천억원 안팎에 이르는 등 워낙 규모가 크고 이자율도 12% 안팎이어서 다른 부처와 달리 예산의 일부를 제2금융권 등에 몇백억원 또는 몇십억씩 맡겼다가 돌려받는 방식으로 돈을 굴린 흔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백억원이나 1천억원이 넘는 규모의 돈을 세탁하기 위해 안기부 계좌가 쓰이지는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에 대해 재소환 방침을 밝혔지만, 2심 재판부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예측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기본적으로 이 사안이 한나라당과 검찰이라는 두개의 대립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강경하게 치다른 배경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당이 특검이라는 카드를 성급하게 내세워 검찰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국가 예산이 확실하다는 ‘물증’을 뒤집지 못할 경우 한나라당이 또다른 총선 악재에 시달릴 가능성도 커 보인다.
[ 사건일지 ]
2001.1.5 검찰,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구속 2001.1.10 검찰, 강삼재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 청구, 법원 국회에 체포동의안 제출 2001.1.22 검찰, 강 의원 불구속 기소 2001.1.22 법무부,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을 상대로 9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2001.2.20 서울지법,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에 대해 첫 공판 2001.6.22 서울지법, 김 전 차장에 대해 보석 결정해 석방 2001.9.7 검찰, 강 의원 중재 혐의로 추가 기소 2002.7.3 강 의원 변호인단, 재판부 기피 신청 2002.8.2 법원, 강 의원쪽의 재판부 기피신청 기각 2002.10.18 서울행정법원, 강 의원이 낸 전직 국정원장 증인 출석 요구 소송 각하 2003.8.26 검찰, 강 의원과 김씨에게 각각 징역 9년 구형 2003.9.23 서울지법, 1심 판결에서 강 의원 징역 4년 추징금 731억원, 김 전 차장 징역 5년 추징금 125억원 선고 2003.9.25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안풍 자금은 92년 대선잔금이었다”고 주장 2003.9.29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외신 기자회견에서 “안풍 자금은 안기부 돈이 아닌 다른 돈”이라고 주장 2004.2.6 강삼재 전 의원, 항소심 공판에서 “940억원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한테서 직접 받은 것으로 이를 경남종금 등의 계좌에 넣어 필요할 때 썼다”고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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