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출국정지시키고 법원이 실형선고 내렸지만 용산기지에 있는 그를 체포할 방법이 없다
1월16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기지 5번 출입문 앞. 시민단체 회원들과 민주노동당원들이 ‘한강 독극물 방류범 맥팔랜드 신병인도 촉구 및 공개수배운동 선포대회’를 열고 있었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대회 참가자들이 ‘여중생 살해도 공무 중, 독극물 방류도 공무 중, 오만한 나라 미국을 규탄한다’ ‘국민의 힘으로 범죄자 맥팔랜드를 잡아넣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도로 건너편에서 이 집회를 지켜보던 한 중년 경찰관이 혼잣말처럼 나직이 내뱉었다. “날도 추운데 뻘짓하고 있네.” 뻘짓은 ‘쓸데없는 일’이란 뜻의 속어다. 그런데 맥팔랜드 재판 과정을 보면 ‘뻘짓’이란 표현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군 당국이 맥팔랜드의 신병을 한국 사법당국에 넘겨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1월9일 서울지방법원 형사 15단독 김재환 판사는 한강에 포르말린 폐용액을 방류토록 지시한 혐의(수질환경보호법 위반)로 미 8군 영안실 소장 앨버트 맥팔랜드(58)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지검은 1월11일 맥팔랜드가 미국으로 도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맥팔랜드에 대해 출국정지 조처를 내렸다.
“사법주권 지킨 용기있는 명판결”
법원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출국정지 처분까지 받았다면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다. 하지만 맥팔랜드는 아니다. 그의 신분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적용을 받는 미군속(미군부대에 근무하는 미국 국적 민간인)이기 때문이다. SOFA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나 미군속의 신병은 형이 확정된 이후에 인도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상 미군 부대 안에서는 압수나 수색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1심 재판이 끝나고 용산 기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맥팔랜드를 한국 사법당국이 체포할 방법이 없다.
검찰이 맥팔랜드에 내린 출국정지 처분도 쓸모가 없다. 주한미군이나 군속은 국내에 들어오고 나갈 때 국내 공항에서 출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산 미 공군기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팔랜드가 용산기지에서 헬기를 타고 오산 미 공군기지에 가서 미 군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출국해버린다면, 한국 당국은 맥팔랜드의 출국 사실조차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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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2월9일 용산 미8군 기지 영안소에서 미국 군무원이 각종 용기에 담겨있던 포르말린 용액을 배수구에 버리는 장면이라며 녹색연합이 공개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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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징역 6월이란 법원 판결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시민단체들은 사법주권을 지킨 용기 있는 명판결이란 찬사를 보냈다. 2000년 7월3일 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을 처음 발표한 녹색연합은 “이 판결은 앞으로 미군에 의한 형사범죄 사건 재판에 본보기가 될 만한 것으로 주한미군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이 맥팔랜드 1심 판결의 의미에 대해 △사법주권을 지키려는 법원의 적극적인 의지 △미군 관련 범죄의 쟁점인 SOFA 규정상 ‘공무수행’에 대한 명쾌한 해석 등을 꼽았다.
녹색연합은 2000년 7월20일 “맥팔랜드가 2000년 2월9일 서울 용산의 미 8군 영안실에서 주검 방부 처리용 포르말린 용액 약 470병(1병 용량 475㎖)을 영안실 싱크대에 쏟아버리도록 지시해 독극물이 아무런 정화장치 없이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흘러들어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001년 3월20일 맥팔랜드에게 벌금 500만원을 미리 받은 뒤 서울지법에 약식재판을 청구했다. 약식재판은 검사가 수사를 한 결과, 죄는 인정되지만 벌금 등에 처할 가벼운 죄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피의자로부터 벌금을 예납받고 검사가 청구한다. 이 경우 판사는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키지 않고 서류만으로 판단해 벌금형을 내린다.
검찰, 재판진행의 걸림돌 역할
하지만 법원은 2001년 4월4일 ‘충분한 심리가 필요하다’며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맥팔랜드 재판 진행의 걸림돌은 주한미군 당국뿐만이 아니었다. SOFA에는 주한미군 군속을 정식 재판에 넘길 경우 해당 군속의 사용 언어인 영문 공소장 부본을 보내줘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검찰은 A4 용지 3분의 1 분량인 영문 공소장 부본을 석달 뒤인 7월17일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은 “애초 우리는 약식기소를 했던 만큼 정식재판에 회부한 법원이 알아서 하라”며 공소장 번역을 미뤘다. 법원은 영문 공소장을 용산기지 관할인 용산우체국을 통해 두 차례 발송하려 했으나, 우체국은 ‘미 군사우편물에 관한 정보통신부 규정에 명시되지 않는 우편물이어서 접수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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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팔랜드의 공소장을 전달하기 위해 2001년 8월22일 미8군 용산기지를 방문한 법원 집행관이 미군들로부터 출입을 제지당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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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우편 발송이 불가능해지자 법원은 2001년 8월22일 등 4차례 서울 용산기지로 서울지법 집행관을 보내 맥팔랜드에게 공소장 전달을 시도했으나, 경비병이 부대 출입을 막았다. 법원은 2001년 11월 등 다섯 차례 맥팔랜드 아파트에 집행관을 보냈으나 공소장 전달에 실패했다. 법원은 2002년 1월10일 피고인 심문을 위해 구인용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나, 검찰은 집행불능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반환했다. 법원은 2003년 11월26일 미군 당국이 소송 서류 송달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맥팔랜드가 실제 미8군 영내에 기거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며 피고인 없이 궐석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2003년 12월12일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이 발생한 지 3년10개월, 정식 재판에 회부된 지 2년9개월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1월9일 법원은 맥팔랜드에게 검찰 구형 벌금 500만원보다 무거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숱한 주한미군 범죄에서 미군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 ‘공무수행 중 벌어진 일이므로 재판권이 미군에 있다’는 논리에 대해 깔끔하게 법리적으로 정리를 했다. 맥팔랜드 변호인은 약품을 하수도와 연결된 싱크대에 버리도록 한 것은 피고인의 공무집행 기간 중에 공무의 기능으로 행한 것이고, 미군 당국은 2001년 4월22일 맥팔랜드에게 공무증명서를 발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SOFA 22조 1항 (가)에 관한 합의의사록 규정 ‘평화시 미군속의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법원이 재판권을 갖는다’를 근거로 미군 당국의 ‘공무 중’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미국에서 장례서비스 대학을 졸업하고 장의사 및 방부처리사 자격증을 딴 맥팔랜드의 경력 등과 한강에 방류된 용액의 양, 방류 경위, 용액의 독성과 상태 등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명백한 고의적인 범죄 행위로 공무집행에서 실질적으로 이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맥팔랜드가 항소를 한 이유는?
1심 판결에 대해 주한미군 당국은 “맥팔랜드 1차 재판권은 미군에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한국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항소도 하지 않고 한국 사법당국이 구속영장을 집행하더라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월15일 맥팔랜드는 항소만료 시한을 하루 앞두고 항소를 한 뒤 변호인를 통해 “주한미군이 한국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맥팔랜드가 항소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항소심에서도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재판권이 한국에 있는지 다툴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김판태 기지협정팀 국장은 “애초 맥팔랜드는 벌금 500만원을 내고 사건을 덮어보려고 하다가 정식재판에 회부되는 등 상황이 불리해지자 한국 재판권을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항소를 하지 않을 경우 형이 확정되어 한국쪽의 신병인도 요청이 거세질까봐 급하게 항소를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법주권 사수의 보루로서 주한미군과 맥팔랜드의 오만한 태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