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1월15일 제4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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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고 튀면 뒤를 봐주마?

망한 LG카드의 ‘이상한 회생’ 주도한 경제관료들… 정책적 지원 책임 회피하려 국민 부담 강요

LG카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채권단의 협상이 ‘타결됐다’고 한다. 그래서 LG카드가 극적으로 ‘회생하게 됐다’고 한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사태의 진실과는 크게 거리가 멀다. ‘협상’은 채권단에 대한 ‘정부의 강압’이라고 해야 옳다. 회생이란 말도 터무니없다. LG카드는 빚이 재산보다 수조원이나 많은 ‘이미 망한’ 회사다. 채권단은 빚 받기를 일부 포기하고, 앞으로 수익을 낼지 손실만 커질지 모를 출자전환을 눈 감고 감행한 것뿐이다.


△ LG카드 회생을 위해 산업은행을 희생시켜라? 2004년 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왼쪽)와 유지창 산업은행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협상·회생 같은 이상한 표현은 더욱 중요한 진실을 감춘다. LG카드를 부도나지 않은 상태로 굴러가게 하려는 경제관료들의 계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국민이 수천억원을 부담하게 됐다는 점이다. 정작 지금 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수천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까지 구속하는 판에, 국민의 돈 수천억원을 날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채권단 ‘협상’으로 LG카드 ‘회생’하나

LG카드의 영광과 몰락의 역사는 한편의 짧은 비극이다. 지난 2002년 4월 LG카드가 상장될 때만 해도, LG카드 주식 공모가는 5만8천원에 이르렀다. 주가는 한때 10만8천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지난 1월9일 종가는 최고가의 70분의 1로 추락한 1560원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채권단이 언론에 흘린 대로 LG카드의 주식을 44 대 1로 감자한다면, 한때 시가총액이 8조원에 이르던 주식이 모두 휴짓조각으로 변한다. 신용카드업이었는지 금융피라미드 사기극이었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이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누가 어떤 이득을 보고 얼마나 손실을 입었을까?


LG의 대주주 일가는 회사 상장 당시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이 공모가 기준으로 1조5천억원에 이르렀다. 이들은 현재 보유 중인 LG카드 주식을 모두 채권단에 무상 양도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사이 팔아치운 주식도 있다. LG 대주주들의 카드 지분율은 2000년까지만 해도 45%에 이르렀으나, 이번에 채권단에 넘긴 지분은 15.8%에 그친다.

<한겨레21>이 LG카드의 사업보고서 및 지분변동 공시 내용을 바탕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LG 대주주들은 상장 전 LG카드에 1746억원을 투자했다. 또 2003년 2차례의 증자에 1732억원가량을 들였다. 이자 비용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총 투자금은 3478억원이다. 반면, 대주주 일가는 2002년 이후 장내외에서 주식을 팔아 4522억원가량을 회수했다. 이로써 대주주 일가가 거둔 매각 차익은 모두 1044억원으로 계산됐다. LG 관계자는 “세금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500억원가량의 매각차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가문 안에서는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 일가쪽이 500억원의 손실을 봤고, 계열 분리되는 LG전선그룹의 구자열 회장과 자손들이 1700억원의 매각익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는 뭉칫돈 챙기고 나 몰라라

그러나 LG 대주주 일가가 거둔 이익은 주식 매각 차익만은 아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LG카드는 고수익을 바탕으로 비교적 많은 배당을 했다. 대주주 일가가 받은 배당금은 모두 1670억원에 이른다. 따라서 세금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주식 매각과 배당금으로 LG 대주주 일가는 2714억원의 순익을 올린 셈이다. 지금 LG카드에 대한 나머지 주식을 모두 포기해도 카드 사업의 손익계산서는 플러스라는 얘기다.


△ LG카드는 경영 정상화를 이뤄낼 것인가. 정부 관료들이 부도를 막은 대가로 국민이 수천억원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연합)

구씨·허씨 일가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LG 계열사들의 이득은 더욱 크다. 가장 큰 곳은 한때 지분율이 31.89%에 이른 LG산전으로, 상장 전 고가에 주식을 팔아치워 4600억원의 이득을 봤다. LG전자의 경우 2300억원을 챙겼다.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LG증권은 보유주식을 처분하지 않은데다, 지난해 말 유상증자 때 억지로 실권주를 떠맡은 일로 1천억원대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산하면 계열사들의 이득은 주식 매각 차익 5900억원과 배당금 803억원 등 모두 6700억원가량에 이른다. 결국 LG 대주주 일가와 계열사들이 카드 사업을 통해 이미 챙긴 돈은 9400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LG그룹쪽이 사업 가운데 유일하게 삼성을 제친 카드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의 LG카드를 살리려면 많은 돈이 드는데, 힘들여 살려서 얻을 이익이 별로 없다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LG쪽은 지난해 말 일찌감치 카드사업을 포기했다. 부도를 각오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LG쪽이 거액을 챙기고 튄다고 비판하지만, 거기에는 사실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책임은 LG카드에 함부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과, 부실이 커지는데도 문제를 계속 키워온 감독당국이 져야 할 일이었다.

물론 LG쪽이 법적 책임은 없다고 해도, 부실을 엄청나게 키워놓고 도망간다면 도덕적 비난까지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채권단과 정부가 구본무 회장 등 대주주들에게 손실분담을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영을 맡은 대주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LG 계열사들에까지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열사들은 대주주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 LG카드 채권단은 정부의 강압에 출자전환을 감행했다. LG카드 채권단이 지난해 11월24일 이종석 사장(뒷줄 가운데)의 회사 정상화 방안을 듣고 있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지난해 11월 들어 LG카드는 돈이 부족해 고객들에게 현금서비스조차 해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LG그룹이 카드업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이때부터 LG카드의 처리 문제는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LG카드의 순자산 부족액은 이미 3조원을 넘어선 국면이었다. 채권단의 선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LG카드를 청산하고, 회수할 수 있을 만큼 빚을 회수하고 나머지는 손실처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LG카드를 신속히 제3자에게 매각해 회사가 영업을 계속하게 한 뒤 훗날 채권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비정상적 협상… 정부의 회피성 협조공문

그러나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나섰다. LG카드가 부도나고 정부의 카드사 대책이 엉터리였음을 추궁당할 것을 두려워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관계자들은 채권단 가운데서 LG카드의 경영권을 인수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채권단이 공동으로 인수하도록 압박했다. 훗날 LG카드를 다른 투자자에게 넘길 때까지 임시로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1월9일 채권단이 ‘합의’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협상 결과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산업은행이 25%의 지분을 갖고 LG카드의 경영책임을 지기로 한 부분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국회 동의를 피한, 편법적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볼 수 있다. 1월9일 밤 채권단의 최종합의 결과를 보면, 산업은행 등 16개 채권금융기관은 1조6천억원의 신규 유동성 지원 등 모두 3조6천억원을 LG카드에 출자전환하게 된다. 채권단 중 산업은행은 25%의 지분을 갖고, 1년간 LG카드를 위탁 관리한다. 산은의 책임은 무겁다. 앞으로 1년 이내에 LG카드에 추가부실이 발생할 경우 25%를 산업은행이 책임지고, LG그룹쪽이 75%를 책임진다. 물론 이것은 추가부실이 5천억원 미만일 경우이고, 5천억원이 넘으면 그 이상은 모두 산은이 책임져야 한다. 산은은 출자전환(7733억원)과 추가부실(1250억원) 부담을 포함해 8983억원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LG카드에 대한 채권 비율이 13.4%에 불과한 산은이 이렇게 큰 부담을 떠안은 것은 다른 채권은행들이 LG카드 지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LG카드가 부도나도 금융 시스템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산은의 희생을 강요했다. LG카드를 부도내지 않기 위해, 실제로는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해 국민의 돈을 갖다쓴 것이다. 산은은 재경부가 100% 출자한 은행으로 산은의 부담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산은 경영진도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을 우려해 정부쪽에 ‘보증’을 요구했으나, 재경부는 산은에 ‘협조공문’을 보냈을 뿐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앞으로 발생할 추가부실의 75%를 맡기로 한 LG 대주주의 부담은 커졌는가? LG그룹은 LG카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 관리 이후 1년간 3750억원의 추가 유동성 지원금을 내놓기로 했다. 이 추가 부담액에는 이미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은 구본무 회장의 (주)LG 지분 5.46%(1280억원가량)가 포함돼 있다. 그 밖에 대주주의 추가부담은 없다. 한편 LG는 대주주와 계열사들이 앞으로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LG카드 회사채 8천억원어치를 인수하기로 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재벌로 하여금 부실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행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셈이다.

정상의 카드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는데…

LG카드 사태 처리와 관련해 또 다른 이해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소액주주 등 소수 주주들이다. 증권거래소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 2002년 4월 LG카드 상장 이후 주가 하락으로 그동안 1조~1조5천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물론 순자산이 수조원이나 마이너스여서 사실상 휴짓조각인 주식을 3천원 이상에도 사는 개인 투자자들인 만큼 이들을 두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에게조차도 국내 최고의 카드회사가 상장한 지 채 2년도 안 돼 망하는 나라의 경제관료들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라면 그들은 지금 ‘청문회’에 서 있을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