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야스쿠니 신사 기습 참배한 고이즈미…파병과 참의원에서 국내 지지기반 확보 노려
고이즈미가 갈수록 부시를 닮아가고 있다.
군사 · 안보 이슈를 정권 연장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점이나, 주변국의 시각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돌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모습 등이 아주 빼닮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새해 첫날 태평양전쟁 1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기습적으로 참배했다. 2001년 취임후 벌써 네 번째다.
“한 · 중 반발은 국내용”
그가 주변국의 반발을 예상치 못했을 리 없다. 청용화 일본주재 중국 임시대리대사는 “(정치인의 신사참배는) 역사문제 가운데 가장 민감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고이즈미 총리가 네 번째 참배한 것에 대해 “중국인의 민족감정에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1월2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양국 관계와 국민 정서를 위해 앞으로 총리의 신사참배가 다시 없기를 강력히 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참배는 연말 지상파 방송을 통해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한국 정부의 유화 조처가 나온 직후라 더 분을 삭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1월3일치에서 일본 외무성 내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대해 “예상한 범위 내로, (한국과 중국이) 국내용으로 항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주변국의 반발은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고이즈미는 어쩌자고 이런 무리수를 계속 두는 것일까. 우선은 이라크 자위대 파병을 준비하면서 국내 지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그는 지금 일본 국내에서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일본인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그로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 보수층 유권자와 의원들의 지지를 붙들어매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다. 전쟁 재향군인들은 그의 중요한 지지 기반이다.
또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는 7월에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노림수로 읽히고 있다. 고이즈미는 2003년 9월 자민당 총재로 재선된 이후 11월9일 중의원 선거를 거쳐 11월19일 2차 고이즈미 내각을 띄었다. 중의원 선거는 공산당과 사민당 등 군소정당이 몰락하고 자민·민주 양당체제로 재편된 선거였다. 480개 의석 가운데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확보를 노렸던 고이즈미의 야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전보다 10석이나 줄어든 237석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연립여당을 형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34석을, 보수신당이 4석을 차지함으로써 과반수인 241석을 넘는 275석을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자민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국정 파트너인 공명당 등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또 최대 야당인 민주당이 약진해 국정 운영의 걸림돌로 떠올랐다.
따라서 이번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해 중·참 양원의 단독 다수당이 되느냐, 아니면 자민당 연립정권이 무너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고이즈미가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장기 집권을 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자민당이 참패하고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을 거부할 경우 자민당의 정권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선거 참패로 고이즈미의 인기가 급속히 떨어질 경우 고이즈미에 대항하려는 유력 정치인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따라서 고이즈미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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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일 고이즈미 관저 앞에서 평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일본 승려와 시민단체 활동가들.(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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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국화를 향해 더 달릴 것
이런 맥락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고이즈미가 국내 지지표를 모으는 거라면 신사참배뿐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도 하리라고 예상한다. 고이즈미는 일본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국민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총리 재임의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일본 내에서는 ‘헌법 개정 불가’라는 성역이 깨지고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적 국민정서가 폭넓게 자리잡기 시작하자, 고이즈미는 이런 정서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헌법 개정 의지를 밝혀서라도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고,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2003년 11월 중의원 선거의 특징은 사회당과 공산당 등 헌법 개정 반대 세력이 몰락한 점이다. 특히 도이 사민당 위원장이 호헌을 내걸었으나 소선거구에서 패배한 점은 이런 정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대교체가 대폭 이뤄진 중의원 선거 당선자의 70% 가까이가 개헌에 찬성하고, 17%는 핵무장 검토까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보수적인 일본 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고이즈미의 신사참배 결정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셈이다. 더구나 그는 매년 한 차례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약한 터다.
이제 고이즈미는 군사 대국화를 위해 ‘군화끈’을 더욱 바짝 동여맬 것으로 보인다. 이런 행보에 북한의 핵 위협과 일본인 납치 의혹은 다시없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유사법제(전시대비법)를 만들고, 자위대의 무력 사용 승인과 더불어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또 지난해 12월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각료회의를 잇달아 열고,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실전 배치한 미사일 방어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부터 무려 65억달러어치의 관련 무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마이니치신문> 1월1일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언제든지 해외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항구법’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하고, 자위대의 무기 사용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자위대의 무기 사용 범위 확대 조처는 자원대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와 달리 경호임무 수행을 위해 무기 사용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내각의 이런 행보는 전쟁수단의 영원한 포기를 명시한 일본 평화헌법 9조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일본의 이런 무장화를 반기는 나라가 미국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일본의 등을 떼밀면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되레 재촉하고 있다. 미국의 속셈은 우선 북핵 문제와 범세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일본 자위대의 적극 동참을 유도하기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여겨진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다 보니 부시와 고이즈미의 돈독한 우애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고이즈미는 국내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전후 복구 지원금과 함께 1천여명에 이르는 자위대원을 이라크에 보내기로 결정하는 등 부시의 맘에 드는 일만 골라 하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의 파병 결정은 전후 처음으로 육상자위대를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 파견한다는 점에서 자위대의 본격적인 해외파병 시대를 여는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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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일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베이징 시민들이 신사참배 규탄 시위를 벌였다.(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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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에도 먹구름
고이즈미의 신사참배 등 보수화 행보와, 부시와 고이즈미의 유착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는 6자회담 성공의 관건인 한-중-일 3국 공조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1월1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중-일 우호관계의 정치적 기초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고이즈미가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면 그는 중국인과 전 세계인들로부터 불신을 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미 최대 현안인 고이즈미의 중국 공식 방문을 거부해오고 있다. 양국간의 강한 불신은 북핵 문제나 6자회담을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강대국간의 패권다툼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설령 2차 6자회담이 조만간 열린다 해도 ‘동상이몽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