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1월07일 제492호 |
기사검색 
동덕여대 사태의 진실, 족벌재단, 니 용돈은 니가 벌어!

유급위기까지 몰렸던 동덕여대 사태의 진실…난방비도 아끼던 재단이 이사장 전기료로 등록금 사용

유급 위기는 넘겼으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동덕여대. 비커가 없어 실험을 못한다는 학교에서 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이사장 집의 전기료까지 냈다. 우리 시대 족벌재단의 폐해를 추적한다.

“도대체 학생들이 왜 저럴까?”
동덕여대 사태를 지켜보며 생긴 궁금증이다. 지난해 11월4일부터 동덕여대 학생들은 비리재단 퇴진과 송석구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했다. 그동안 언론은 삭발시위나 집단유급 여부에 초점을 맞춰 동덕여대 사태를 보도했다.


△ 동덕여대 교수, 학생, 직원들은 1월5일 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를 비리사학으로 전락시킨 재단 이사장과, 파국으로 몰고 간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했다.

“비커가 없어 실험을 못한다”

집단유급은 사회적 문제다. 만약 유급이 되면 졸업예정자 자격으로 취업한 4학년 학생은 입사가 취소될 수 있고, 편입이나 유학을 준비하던 학생들도 불이익을 받는다. 한햇동안 신입생 모집을 할 수 없어 대학 학사일정 진행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이번주 집단유급 초읽기에 들어갔던 동덕여대 사태는 일단 급한 고비를 넘겼다. 송석구 총장이 2월5일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교육부는 5일 재단과 교수협의회 등 학내 단체들이 재단 이사 구성을 협상 중인 만큼 합의안이 마련될 때까지 유급 결정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단유급이란 불씨는 잡혔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동덕여대 사태의 본질이 집단유급 여부가 아니라 족벌사학 비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동덕여대는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수들은 교내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교직원들은 파업을 벌이는 등 학교 기능이 마비됐다. 거의 모든 학내 구성원들이 학교 재단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 잇속만 차린다는데 왜 동덕여대 학생들은 집단유급을 무릅쓰고 수업 거부를 했을까. 최인혜(22·국문 4) 총학생회장은 “열악한 교육환경과 재단비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가 밝힌 교육여건 열악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공예과의 경우 위험한 실습 작업 도구가 많지만 지하 작업실에 안전장치는 물론 환풍기도 없다. 공예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3·4학년이 되면 병원에서 폐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떠돌 정도다.

2) 음악대학의 경우 강의실에 오선지 칠판이 없어 화성학(和聲學) 수업을 제대로 못한다.

3) 컴퓨터학과의 경우 학교 컴퓨터에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학교에서 이론수업을 하고, 실기는 집에 있는 컴퓨터로 해야 한다.

4) 대부분 학교 건물 전압이 110볼트여서 동아리방에서는 전압을 올리는 변압기를 사용한다.

5) 비커가 없어 실험을 못하거나 시험재료가 떨어져 실험을 중단할 때도 있었다(교수들에 따르면 조원영 전 총장 판공비가 학생들 실험실습비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 지난해 12월3일 서울 중구 훈련원 공원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이 관선이사 파견요구 시위를 하고 있다.

총학생회는 이런 사례가 각 학과나 단과대학 학생회의 ‘학내여건 개선 요구사항’에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우리 학교는 교육여건이 안 좋다’고 느끼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계기는 2002년 7월 한 언론 보도였다. 1999·2000·2001년 동덕여대는 교육 투자의 지표인 교육비 환원율(등록금이 학생 교육에 직접 투자되는 비율)이 55.7%로 전국 대학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2001년을 기준으로 재단에서 학교로 들어온 돈인 재단 전입금은 약 23억원으로 등록금 총액 400억원의 5.8% 수준이다.

교육비 환원율 최저, 재단 전입금도 미미

동덕여대는 2001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인문사회·공학·예체능 등 각 계열별 등록금이 많기로 전국 대학 중 10번째 안에 들었다. 이 학교는 16학점을 기준으로 학점당 등록금제를 실시하고 있어 학생들이 실제 내는 등록금 액수는 각 계열마다 전국 최고 수준을 차지했다. 동덕여대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주로 의존해 학교를 운영해왔다. 학생 등록금은 전국 최고인데 교육비 환원율은 전국 최하위란 사실은 그동안 재단이 학교를 공적 교육기관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럼 동덕여대 재단은 등록금을 받아 교육환경 투자를 하지 않고 어디에 쓴 것일까. 최인혜 총학생회장은 “우리 학교 이월 적립금은 2000·2001년 전국 최상위였다. 지금까지 쌓인 누적 이월적립금이 2002년 말 기준으로 1219억원이다. 재단이 교육환경 투자를 하지 않고 금고에 쌓아두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월적립금은 교육비로 집행하고 남아 다음해로 넘기는 예산 총액이다.

이 학교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문제는 누적 이월적립금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단은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학교 재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학내 구성원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총장실에서 농성을 해온 총학생회는 총장실을 점거할 때 ‘본관에서 학교 장기발전계획 같은 문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기대도 했다. 하지만 총장실에서 비싼 밥값 영수증들만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 학생들은 지난해 11월4일부터 동덕여대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본관 2층 모습.

한 교수는 “재단 이사장과 조원영 총장은 모자 관계로 비리 족벌사학의 결정판이었다. 재단 이사장의 남편이자 조원영 전 총장의 아버지인 학교 설립자의 ‘탄신일’과 기일에는 교수·학생·직원 대표가 참배를 강요당했다. 한마디로 동토의 왕국이었다”고 말했다. 유우근 전국대학 노동조합 동덕여대 지부장은 “우리 학교에서는 전결이란 게 없다. 1만원 단위라도 조원영 총장이 결재해야 돈이 집행됐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교수, 직원, 학생들은 지난해 7월 교육부의 동덕여대 종합감사 결과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비 수입금 78억700만원을 법인 수익금으로 처리하고, 전기를 아낀다고 겨울에 건물 난방도 제대로 하지 않던 재단이 3년간 재단 이사장 집의 전기요금으로 5천만원을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집행했으며, 회계서류를 가짜로 작성해 이사장에게 7억2800만원을 지급한 일이 드러난 것이다.

조원영 전 총장이 지난해 10월 말 사표를 내자 학교 구성원들은 이양희(56) 부총장을 총장 직무대행으로 뽑아 재단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재단은 지난해 11월 초 송석구 총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교수·학생·직원들은 송석구 총장이 무능과 비리로 믿음을 잃은 재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임명됐기 때문에, 송 총장이 재단의 허수아비 역할에 그칠 것으로 보고 총장 퇴진 요구를 해왔다. 학내 구성원들은 문제를 일으킨 조원영 전 총장 등 족벌재단이 송석구 총장을 대리인으로 전면에 내세운 뒤 사회적 파문이 가라앉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올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재단의 허수아비 총장은 필요없다

‘비리족벌재단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도 제 입으로 ‘우리 학교가 이렇게 엉망이다’라고 외치다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최인혜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누워 침 뱉기가 아니냐라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후배들이 제대로 된 교육환경에서 교육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정준영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협의회장은 “부푼 꿈을 안고 들어온 신입생들이 형편없는 교육환경을 보고 박탈감과 실망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제대로 된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동덕여대 과학관 정문에 ‘원영아, 니 용돈은 니가 벌어라. 등록금에서 가져가지 말고’란 전단이 겨울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