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12월26일 제490호
폭탄 속에서 ‘안전한 재건’?

이라크 추가파병안 결정에 시민사회단체 강력 반발… 국회 동의안 처리 내년으로 미루고 미국과 실무 조율

정부는 12월17일 ‘이라크의 평화정착과 전후 재건 지원을 위한 추가파병 방안결정’을 발표했다. 추가파병의 기본 틀은 한국군 약 3000명(기존 서희·제마부대 700명 제외) 이 특정 지역의 재건지원 임무를 독자적으로 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발표문 제목이 유난히 길었다. ‘추가파병 방안 결정’ 앞에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이란 장황하고 긴 꾸밈말이 붙어 있었다. 추가파병과 관련한 정부의 고민과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제목이다.

추가파병 방안 결정 다음날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머리는 비우고 가슴으로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만 파병 관련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추가파병을 할 게 아니라 영외 활동을 중단한 이라크의 서희·제마부대가 철수해야 하는 상황 아니냐’고 물었다.


△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이라는 말은 국민 사기극일 뿐이다.”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정부 결정에 반대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류우종 기자)

“전투병 1만명 파병 주장 꺾고 선방했다”

정부 관계자는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지난 석달 동안 정부 안에서 벌어진 추가파병 문제의 논의 과정을 잘 봐라. 일부 관계자들이 한때 ‘전투병 1만명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대놓고 펴지 않았느냐.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서 ‘3천명 추가파병’ ‘평화·재건 임무 수행’이란 방안을 결정했다. 시민사회가 비판을 하더라도 이런 노력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등은 이런 정부의 설명을 치졸한 국민 사기극으로 여긴다. 이들은 겨울 바람을 맞으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인간띠 잇기 행사를 하는 등 파병 철회를 외치고 있다.

국민행동은 12월20일 인간띠 잇기 행사 관련 성명에서 “정부가 비전투병이니 재건지원군이니 하는 치졸한 국민 사기극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냐. 노무현 정부가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파병을 끝내 강행한다면 우리는 노무현 정부를 ‘전쟁참여 정부’로 규정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에 대해서도 “정쟁과 파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여야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호흡이 척척 맞고 있다. 우리는 국회가 과반수에 이르는 국민여론을 대변해 정부의 파병동의안을 원점으로 되돌려 진정한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할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며, 이를 낱낱이 기록해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국민행동은 파병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국회로 집결해 파병안을 저지하는 데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시민사회의 반발을 의식해 애초 올해 안(12월23~30일)에 할 예정이던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 국회 심의를 내년으로 미룰지 눈치를 보고 있다.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은 12월19일 “지난번 (이라크 1차) 파병동의안 처리 때는 한-미 동맹 상황 등을 고려해 오전에 국회로 이송된 것을 오후에 처리했지만 이번엔 전쟁 복구와 관련된 것이므로 성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어서 금년 내에는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정부가 두차례, 국회가 한차례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국회와 정부의 합동조사단이 한번 다녀올 필요가 있다. 국회와 정부가 공동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노무현 대통령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서로 칼끝을 겨누고 있으면서도 이라크 파병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다.(한겨레 탁기형 기자)

어쨌든 청와대와 행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여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 원칙안에서 추가파병 실무 준비는 국방부에서 할 것이고 큰 틀에서 변동이 없다면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확정된 추가파병 원칙과 방안을 바탕으로 미국과 실무 조율에 신경쓰고 있다. 대미협의단(12월17~22일)이 미국 국방부, 합참, 중부사령부의 핵심 인사들과 만나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 계획을 설명하고 미국쪽 의견을 들었다.

국방부 중심으로 실무 준비 들어가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12월17일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추가파병 부대 편성은 짧게는 10주, 길게는 15주가 걸린다. 교육은 일반적으로 볼 때 5주가 걸렸다. 이번에 사단 규모가 편성되는 만큼 과거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파병 부대에 전투병이 포함될지 여부에 대해 조 장관은 “전투병·비전투병이란 용어는 적절치 않다. 공병부대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순수하게 지원적 임무를 제외하고 방어적 임무를 경계병들이 수행하고 주임무는 재건·민사작전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경계병을 짤 때 특전사뿐만 아니라 해병대, 특공부대, 보병부대도 고려하고 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서희·제마 부대원을 제외한 추가파병 병력 3천명 중 자체 경계병 비율이 아무리 많아도 40%는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700명 병력에 사단사령부가 있는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우리 군대 편제로 보면 사단사령부를 두기에는 적은 인원이지만 소규모 지역을 맡도록 한 만큼 사단사령부를 둔다. 전체 이라크 작전에 관한 한 미국의 작전 지휘를 받지만 우리가 맡은 지역에서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점을 미국쪽에 분명히 한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 파병반대 국민행동 회원들이 파병 동의안 국회 통과 저지를 주장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류우종 기자)

추가파병 지역은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1927년 이라크 사상 처음으로 유정이 발견된 곳으로, 현재 이 나라 전체 산유량의 3분의 1을 차지해 경제의 요충지로 꼽힌다.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300km 떨어진 키르쿠크는 경기도 정도 넓이로 후세인 정권의 탄압을 받아온 소수민족 쿠르드족이 도시 전체 인구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담 후세인 정권을 내쫓은 미-영 동맹군에 우호적인 편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키르쿠크는 현지 주민들이 한국에 우호적이고, 앞서 파견됐던 정부 조사단도 파병지로 가장 선호한데다 미국도 사실상 동의했다”고 말했다. 11월 이라크에 파견된 2차 정부 합동조사단은 “키르쿠크시는 치안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지만 후세인 잔당 세력이나 외부세력이 혼란을 초래하고 치안 방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키르쿠크 지역 유력… 위험 요소 수두룩

키르쿠크 지역에서 일어나는 주요 범죄 유형은 약탈과 차량 절도지만 최근 총격과 급조 폭탄에 의한 공격행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쿠르드족과 투르크 민족 사이의 갈등이 지역 안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옛 이라크 집권당인 바트당 요원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3700명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외 파병이다. 이를 의식해 조영길 국방부 장관 등은 파병 지역과 임무를 설정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은 파병 부대의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라크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역이 있을 뿐, 절대 안전한 지역이 없다는 것이다. 추가파병을 결정한 정부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안전을 찾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셈이다.

[ 이라크 추가파병 예상 일정 ]

2003년
12월17~22일=군사실무협의단 방미
12월23일=국무회의 심의

2004년
1월=국회·정부 이라크합동조사단 파견(예상)
국회 본회의 심의
파병부대 편성안 마무리
파병부대 인원 선발, 사단 사령부 구성
1월 말=군사실무협조단 이라크 현지 파견
2월 초~3월=파병부대 교육
3월 중순=선발대 파병
4월15일 국회의원 총선거
4월 말~5월 초=본대 파병
5월 초~중순=현지 임무 개시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