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1월26일 제486호 

KAL기 진실 햇볕 쪼이나

16년 만에 국정원 재조사 수용 뜻 밝혀 …기체 잔해 등 결정적 물증 없어 진상 규명 험난

지난 1987년 노태우 정권 출범에 결정적 구실을 한 ‘KAL 858기 폭파사건’의 재조사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천주교 사제 200여명의 진상규명촉구선언을 계기로 분출되고 있는 재조사 요구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수용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사진/ 유족들의 ‘16년 한’은 풀릴 수 있을까. 국정원은 KAL기 사건 발생 당시 초동수사에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전화통화에서 “진상규명대책위에서 제기하고 있는 KAL기 사건 의혹에 대해 국정원 내부에서 재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외부 기관이 재조사를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이런 태도는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발생한 의혹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참여정부의 개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KAL기 사건 진상규명대책위는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재조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밝혀,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16년 만에 풀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재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질지는 불투명하다. 다른 항공기 사고와 달리 확실한 ‘물증’으로 볼 수 있는 증거물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기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 단서인 블랙박스는 물론 기체의 잔해조차 제대로 확보된 게 없어 폭파 원인 규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당시 사건 수사를 전담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가 ‘폭파범’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했을 뿐, 물증 확보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확보된 기체 잔해마저 폐기된 것으로 알려져 이를 둘러싼 안기부의 행적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1990년 3월 버마 해역에서 발견돼 KAL 858기 잔해 논란을 일으킨 비행기 잔해 모습. 그러나 사고 원인 규명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줄 이 잔해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폐기됐다.

“법적 근거 없지만 외부 재조사 수용”

안기부는 KAL기가 실종된 지 3년 뒤인 1990년 3월 버마 안다만 해역에서 사고기의 잔해로 보이는 부유물이 발견되자, 그해 5월 이를 국내로 들여온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이 잔해는 항공기 뒷부분 동체의 일부로, 88서울올림픽 앰블럼과 KAL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를 근거로 안기부는 이 부유물이 실종된 858기의 잔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당시 국과수는 이 잔해가 858기 동체의 일부인지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국과수 관계자는 지난 11월21일 <한겨레21>과의 전화통화에서 “그 잔해가 폭발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정밀 검사를 했지만, 압축 파열에 따른 흔적이 발견됐을 뿐 폭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폭발 지점은 비행기 앞부분이었는데, 수거된 잔해는 비행기 뒷부분이라 폭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정 의견서에 첨부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수거된 잔해가 858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국과수 감정이 858기 잔해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나 관심을 끈다. 국과수 관계자는 “당시 안기부의 요구는 그 잔해가 858기의 일부인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폭발에 의해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858기 여부를 확인하려면 실물 사진을 갖다놓고 파편을 맞춰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는 858기의 잔해가 틀림없다는 것이었고, 국과수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책위의 주장은 다르다. 대책위 관계자는 “그 잔해는 88올림픽 공식 항공사를 나타내는 ‘Official’이라는 문자가 두 조각으로 쪼개진 채 발견됐는데, 3년 동안 해류를 따라 흘러다녔을 잔해가 어떻게 ‘Official’이 절묘하게 맞춰질 수 있도록 두 조각만 함께 발견될 수 있나”라며 “당시 유족들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으나 안기부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체 잔해 858기 것인지도 불확실

진상 규명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이 잔해는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폐기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감정이 끝난 뒤 안기부에서 별도의 주문이 없어 폐기시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감정 결과나 잔해 보존 여부는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른 항공기 사고의 경우 해당 수사기관이 기체 잔해 확보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이런 안기부와 국과수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책위 관계자는 “안기부가 KAL기 사건에 대한 의혹이 점점 불거지고 있음에도 잔해가 폐기되도록 방치한 것은 진상 규명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진/ 1988년 발생한 미 팬암항공기 폭파사고의 기체 잔해 짜맞추기 작업 모습. 수사 당국은 철골 구조물에 기체 잔해를 하나하나 짜맞춘 뒤 폭발 지점과 폭발 물질을 알아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GAMMA)

실제로 지난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 팬암항공기 폭파사고는 기체 잔해가 얼마나 결정적 물증이 되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 수사 당국은 사고 직후 영국 영토를 이 잡듯이 뒤지며 기체 잔해 수색에 나서 기체의 90%까지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미 당국은 수년간의 기체 수집 작업으로 복원한 기체에서 폭발 지점과 폭발물 성분을 확인한 뒤, 리비아 출신의 용의자 2명을 찾아내 2001년 그 중 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KAL기 사건 초기에 발견된 구명보트도 실종된 858기의 부속물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구명보트는 1987년 12월13일 버마 어디스(858기 최후 교신지점) 지역에서 수거됐는데, 국과수 감정 결과 역시 폭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이 보트는, 50종의 부속물은 멀쩡한데 유독 공기압축 펌프만 파손된 채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보트 발견 지점도 버마 안다만 해역의 해류 움직임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지역이었다. 대책위 심재환 변호사는 “미 해군에 의해 수거된 기체 화장실 내부 벽 등 몇몇 유류품을 제외하고는 실종된 858기의 기체라고 볼 수 있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안기부와 검찰이 김현희의 재판을 위해 제시한 증거물 166점은 대부분 김현희와 공범 김승일의 소지품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1990년 기체 잔해가 발견된 이후 추가로 발견된 잔해는 없다”고 밝혔다.


사진/ 유족들은 사건 초기 현지조사에 나섰던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허점투성이 초동수사… 대한항공 의혹도

이처럼 858기 추락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주요 단서들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의혹이 명쾌하게 해명될지 장담할 수 없다. 국정원도 초동수사에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당시 수사팀이 사건 초기 수사가 미흡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현지 조사에 나섰던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현지 조사 때 블랙박스 탐지 장비인 ‘수중공명위치탐지기’를 갖고 가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블랙박스 탐지 장비가 없다면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에 지원을 요청했어야 하는데 대한항공쪽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미군쪽에 최신 수색장비 지원을 요청해 수색전문항공기(P-3) 3대와 인공위성 촬영 등을 지원받았으나, 블랙박스 장비는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쪽은 “미 해군의 P-3 수색기에 장착돼 있는 수중음파탐지기로 블랙박스 발신음의 탐지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흔적이 없어 블랙박스 자체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은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1990년 유족 대표와 함께 사고 현장 재수색에 나섰으나, 버마 안다만 해역의 빠른 유속 등의 장애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족들은 대한항공의 보상금 지급과정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국제여객운송보험약관에 따르면 KAL 858기의 경우 보상금 한도가 1억600만원인데, 이를 무시하고 유족들에게 7900만원씩 일방적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대한항공사쪽은 보상금을 거부하는 유족에게 직원을 직접 보내 보상금을 받도록 협박에 가까운 설득 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7900만원은 보험금 지급 관례에 따라 호프만식으로 산정한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답했다.

수구세력 농간에 진실은 구천 헤매

노태우 정부는 유족들의 진상 규명 요구는 외면한 채 이 사건을 ‘대국민 반공교육자료’로 활용하기에 바빴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김현희를 특별사면한 뒤 각종 반공 강연회에 줄기차게 ‘동원’했다. 김현희의 ‘생생한’ 강연은 다른 어떤 교육보다 효과가 있었다. 특히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김현희는 수구보수 세력의 승리를 보장하는 확실한 ‘보증수표’였다.

유족들 중 일부도 수구세력의 이런 ‘농간’에 놀아났다. 일부 유족들은 노태우 정권 때 분출한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해 한국자유총연맹과 함께 반대 성명을 내기도 하고,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햇볕정책’을 비난하기도 했다. 대책위 부위원장 신성국 신부는 “KAL기 사건 유족들은 극우세력의 정권유지 전략에 이용당하며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재조사밖에 없다”며 “16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유족들의 외침에 귀를 막은 이 사회의 무관심도 유족들의 가슴을 크게 멍들게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KAL기 사건 진실 감추기] <월간조선>은 안기부의 도우미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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