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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식, 기적의 응답 천성산 살리기 위한 지율 스님의 45일 단식… 17만 서명단이 고속철 강행 반대에 앞장선다
가녀린 비구니 스님이 정권의 심장을 긴장케 했다. 45일이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단식으로 청와대의 속내를 바짝 타들어가게 했다. 장본인은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 있는 내원사의 지율 스님이다. 내원사는 1천년 역사를 지닌 신라 고찰로 비구니의 참선도량이다. 지율 스님은 지난 10월4일부터 부산시청 앞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45일간 물만 먹고 버티면서 청와대를 향한 온몸의 저항을 전개했다. 참여정부의 국정현안인 천성산 고속철도 백지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였다.
약속해놓고 계속 말바꾸는 정부
11월17일 오전 17만명의 도롱뇽 소송인단이 모인 것이 확인되자 스님은 단식을 푸는 ‘회향식’을 마친 뒤 안가로 향했다.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분신과 함께 가장 극단적인 운동방식이 단식이지만, 알려진 저항의 기록 중에도 ‘45일 단식’은 없다. 지율 스님은 지난 봄에도 ‘38일 단식’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고속철 임시중단 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중단 선언이 아무런 해법도 없이 ‘대선공약 불이행 책임에 대한 물타기’로 판명되면서 새벽 서리 같은 기운으로 다시금 단식에 돌입했던 것이다. 봄에 시작한 1차 단식과 달리 이번 2차 단식은 출발부터 주변 사람들을 긴장과 조바심으로 몰아넣었다. 대책위 안에는 ‘지율 스님은 두 번째 단식에서 순교의 길을 갈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는 이들이 많았고, 청와대쪽도 ‘잘못되면 정권의 심장을 뒤흔드는 초대형 현안이 될 것’이라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던 것이다.
단식이 40일을 넘으면서 심각해진 것은 청와대만이 아니었다. 대책위에 소속된 여러 시민단체들과 불교계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천성산 살리기 운동의 최대 지지세력인 부산지역의 전교조와 불교단체들 사이에서도 ‘운동이 후퇴하더라도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다급함이 확산됐다. 조계종 총무원의 주요 스님들을 비롯해 새만금 삼보일배의 수경 스님, 정토회의 법륜 스님 등이 단식 40일째 되는 날을 전후해 긴급히 농성장인 부산시청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우선은 단식을 풀자”고 지율 스님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는 완강했다. 이 과정에서 지인들과 지율 스님은 하나의 약속을 했다. “도롱뇽 소송인단 10만명이 모이면 단식을 풀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10월15일 지율 스님과 대책위쪽은 부산지법에 천성산 뭇 생명의 상징인 도롱뇽을 원고로 하는 고속철 천성산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바 있다. 사람의 권리를 뛰어넘는 자연의 생명권을 지키는 것에 인간이 당사자로 나선 것이다.
시민운동사에 유례 없는 일
10만명이 넘는 소송인단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 한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를 듯한 기세로, 보는 이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10만명 확보는 지율 스님을 살리겠다고 발벗고 나선 정토회와 법륜 스님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북한동포돕기와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을 이끌어온 정토회 대표 법륜 스님은 지율 스님 면담 직후 모든 활동가들에게 긴급 호소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라. 단식으로 죽음 앞에 서 있다. 10만명의 도롱뇽 소송인단을 모으자.” 일종의 ‘총동원령’이었던 셈이다. 이 기운에 힘입어 시민단체들이 속속 동참했고, 11월15일 드디어 10만을 돌파했다. 도롱뇽 소송인단의 전체 집계를 하고 있는 정토회 홈페이지에 확인된 소송인단은 현재 17만5천여명(11월17일 오전 기준)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고 시민운동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소송인단의 진로가 향후 천성산 고속철 공방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지율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은 기록적인 45일 단식으로 17만명의 소송인단을 모은 새로운 역사를 쓴 반면 청와대는 과거로 돌아갔다. 청와대는 경찰이나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직접 줄을 대는 방식으로 현안을 풀지 않겠다던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대신 어떤 정치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11월17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지율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와 시민단체 등은 45일간의 단식을 마치는 회향식에서 천성산 고속철도 반대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단식 과정에서 모인 17만명의 소송인단 전체가 중심이 돼 운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일방적인 추진 강행으로 돌파하려 했던 천성산 고속철도는 다시금 국정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7만명의 지율’이 청와대를 향한 압박에 들어갔다.
글 · 사진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h@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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