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1월19일 제485호 

공약이란 게 다 그런 거다?

천성산 고속철도 논란의 처음과 끝에는 ‘대선공약’이 놓여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두번에 걸쳐 ‘천성산에 고속철을 지나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처음 약속은 지난해 10월26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불교계 등 주요 대표들과 가진 공식회동에서였다. 지율 스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노 후보는 “내가 영남인으로 영남의 맥을 끊어, 대통령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동석했던 문재인 변호사(당시 부산선거대책위원)에게 “나를 대신해 여기 대책위와 연대해 이 문제를 잘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두 번째 약속은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했다. 대선 막바지였던 12월4일 조계종을 방문하면서 불교계 제1의 공약사항으로 ‘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관통사업 백지화와 대안노선 검토’를 다시 한번 밝힌 것이다. 이 약속은 문서로도 전달됐다.


사진/ 지난해 10월26일 부산에 내려와 불교계와 시민단체 대표들과 천성산 백지화를 대선공약으로 한 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 노 후보 옆에 문재인 민정수석(당시 부산선거대책위원)이 보인다. 왼쪽 스님들 가운데 가슴띠를 두른 이가 지율 스님이다.


인수위 시절인 지난 2월 초 문 수석은 지율 스님이 1차 단식 중인 3월8일 부산시청 앞 농성장을 찾아와 “청와대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안검토위원회를 보장할 테니 반대쪽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라”며 공정한 중재를 약속하고 1차 단식농성을 풀 것을 요청했다. 이후 조계종 총무원 차원에서 재차 지율 스님을 설득해 단식이 풀렸다.

그러나 문 수석은 노선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천성산의 당사자인 내원사와 지율 스님을 배제했다. 아울러 자신과 정치적으로 한배나 다름없는 부산지역의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노선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 수석은 이미 지난 3월 불교계 인사 등과 만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본래 공약이라는 것은 그런 거다. 당선되고 나면 달라진다. 공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이 위원회는 3개월이라는 짧은 검토기간에 현장조사도 충분히 하지 않고 서너번 회의를 한 끝에 총리실이 일방적으로 공사 재개를 비롯한 사업강행 방침을 발표했다. 합리적인 노선 검토라는 핵심이 빠진 셈이다. 주요 국정현안 중이라는 천성산 고속철도 문제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았고 이에 저항하자 합리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명분만 쌓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수순이었다. 환경운동단체와 불교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거짓말과 기만이 어우러진 방식’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 사진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h@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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