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1월05일 제483호 

경찰 무서워서 촛불 켜겠수

공소장에서 촛불시위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간주…누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모욕하는가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던 중 같은 날 18:55경 성명불상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계란, 양초 등 10여개를 던지고… 같은 날 19:25경 참가자 1만여명이 광화문 사거리 16개 차로 중 13개 차로를 점거하고… 미리 준비한 계란 약 30개와 들고 있던 촛불 6개를 던지는 등 미신고 불법집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약 1시간30분가량 광화문 교통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지난 10월 초 구속된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범대위) 최근호(38) 상황실장의 공소장 일부 내용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공무’를 방해했으며, 도심인 서울 세종로의 교통 흐름을 방해한 ‘미신고 불법집회’는 다름 아닌 ‘평화적 시위 정착에 기여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다.


사진/ 올해 2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시위. 최근 경찰이 촛불시위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류우종 기자)

분위기 뜰 때는 관혼상제라더니…

최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최씨의 구속을 계기로 촛불집회 위법성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씨는 미군 고압선에 감전돼 투병생활 끝에 숨진 고 전동록씨의 1주기 추모집회에서 진압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왔다. 변호인쪽은 폭행 사실은 사실관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툼이 일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최씨의 변호인 정성재 변호사(법무법인 정평)는 “당시 집회 도중 성조기를 덮어씌운 열화우라늄탄 모형을 태우려고 하는 순간 경찰이 난입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며 “조형물을 빼앗으려는 경찰의 행위가 적법한 공무집행이냐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폭행이 있었다는 것은 당사자도 인정하는 점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되레 법정에서 다툼이 이는 부분은 촛불집회를 ‘추모행사’로 볼 것인지 아니면 ‘미신고 불법집회’로 볼 것인지 여부다.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열린 7차례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미신고 불법집회로 간주되었다. ‘옥외집회를 하려면 일정 요건을 갖춘 집회신고서를 집회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 대규모 ‘불법집회’로 도심의 교통 흐름을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중생 추모 열기가 뜨겁던 지난해, 경찰의 입장은 지금과는 달랐다. 당시 경찰은 “촛불집회는 ‘집회’가 아니라 사전신고가 필요 없는 관혼상제 의식에 해당된다”며 한발 물러섰고, 오히려 “무조건적인 법 집행에 앞서 국민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광화문 일대 교통을 통제하는 ‘편의’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정 변호사는 “당시에는 ‘국민정서’니 ‘관혼상제’니 하면서 집회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니 분위기가 사그라지자 말을 바꾸고 있다”며 “또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당시에 형사처벌을 했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제서야 나선다는 점은 경찰의 자의적인 법적용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 10월27일 ‘자주평화 촛불기념비’가 불법 건축물이라며 여중생범대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박승화 기자)

이와 함께 당시 촛불시위가 정치적 성격을 띤 집회였는지 여부도 공방의 대상이다. 공안당국은 당시 촛불시위에서 ‘미군철수’ 등 반미 성향의 구호가 나왔기 때문에 순수 추모집회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여중생범대위는 당시 공식 구호가 ‘여중생 사망 진상규명’ ‘살인미군 처벌’ ‘소파(SOFA) 개정’ ‘부시 대통령 사과’ 등 네 가지였으며, ‘미군 철수’ 등의 주장은 그 자리에 모인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 나온 ‘우발적인’ 구호라고 주장한다.

최씨에 이어 지난 10월26일에는 여중생범대위 집행위원장이던 김종일씨가 경찰과 실랑이 끝에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된 뒤 구속됐다. 김씨는 서울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파병반대 시위로 연행된 학생들의 면회를 요구하던 중이었다. 경찰은 김씨가 ‘꽁초를 던졌다’며 폭행죄로 입건했고, 여중생 추모집회 등 집시법 위반 혐의 사건을 종로경찰서 등에서 가져와 병합처리해 구속했다. 이밖에 채희병 여중생범대위 사무국장, 이승헌 집행위원 등 5명도 소환장이 발부된 상태다.

촛불기념비에도 소송 제기

‘촛불의 수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 10월28일, 촛불시위를 기념해 세운 ‘자주평화 촛불기념비’가 불법 건축물이라며 여중생범대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주평화 촛불기념비’는 두 여중생이 숨진 지 1년째 되는 지난 6월13일, 200일 동안 계속된 촛불시위의 의미를 되새기고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 인도에 세워졌다.

종로구청쪽은 기념비가 세워진 6월13일부터 여중생범대위쪽에 ‘자진 철거’를 종용한 끝에 결국 ‘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지난해 11월 말 두 여중생을 숨지게 한 미군 2명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지면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연인원 500만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비폭력 평화시위’라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아왔다.

촛불이 꺼질세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감싸 안던 어린아이들과 손녀 같은 두 여중생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노인들이 함께한 촛불집회는 이제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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