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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사냥, 더이상 더는… 검증 안 된 국정원 발표로 여론몰이식 파상 공세… 그는 끝내 냉전의 미아로 조국에 버림받아야 하나
‘양심적인 학자’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까지. 9월22일 입국한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 교수에 대한 대한민국의 평가는 불과 2주일 만에 한반도와 독일 사이의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이런 ‘널뛰기’의 배경에는 송 교수 스스로가 이번 사태를 ‘거짓말 게임’ 또는 ‘진실게임’으로 비쳐지도록 방치한 측면이 있다. 가까운 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용(조선노동당 입당 사실과 방북 당시 여비를 비롯해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 등)을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갑자기 털어놓으면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동당 입당 진술은 결과적으로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까지 놀라게 만든, ‘폭탄발언’이었다.
충격적 진술로 사면초가 위기에 몰려
또 한가지 배경은 이번 사태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려는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 정당의 위치에 있고, 이에 부화뇌동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일삼아온 수구언론이 한국 언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진보개혁 세력마저 냉전시대로 회귀하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 송 교수가 ‘고립무원과 사면초가’로 내몰리는 데 일조했다. 그나마 송 교수쪽은 검찰의 2차 조사가 이뤄진 10월6일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응을 시작했다. 송 교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날 송 교수가 받고 있는 혐의의 핵심사안인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 및 활동 논란’과 관련해 “송 교수는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 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다만, 김일성 전 주석(1994년)과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1995년) 장례식 당시 장의위원 명단에 각각 23번째와 22번째로 김철수라는 이름이 써 있을 뿐이고, 그때도 후보위원이라고 직책이 써 있었던 적은 전혀 없었다”며 국정원쪽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송두율=김철수=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국가정보원의 핵심 수사 결론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송 교수쪽은 “북쪽에서 정치국 후보위원급의 대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즉, 송 교수가 평소 소련·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구조 등을 연구해온 까닭에 두번에 걸친 장례식에서 자신이 23번째로 나열된 것이 ‘후보위원급의 대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황장엽씨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서 통일부에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정치국원(정위원 및 후보위원) 명단을 문의해본 결과 한번도 김철수나 송두율이라는 이름의 정치국 후보위원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황장엽씨가 소송 과정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가운데 가명을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쪽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다는 북쪽의 내부자료 가운데 송 교수를 ‘상층 통일전선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도 언급했다. 송 교수가 만약 북의 핵심 권력기구인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면 북쪽이 말하는 통일전선전술의 대상, 즉 혁명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북의 핵심 가운데 핵심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통일전선 대상이라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말과 같은 차원인 이야기”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실체적 진실 오리무중… ‘제2라운드’ 시작
송 교수는 이날 의견서를 통해 △노동당 가입 사실 △여비 등 자금을 받은 사실 △과거 북에 치우친 활동을 한 사실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죄한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그러나 송 교수쪽은 국정원이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을 정치권 등에 흘리는 행태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이 (검찰 수사과정이나 법정진술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 능력이 전혀 없는 (경찰과 같은 사법경찰관의 위상을 지닌) 국정원의 조서를 가지고 정치권 일부에서 언론에 흘려 일종의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아무리 피고인이 중한 범죄를 지었더라도 근대 민주사법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런 식으로 여론재판으로 끝나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엄격한 증명’(proof beyond the resonable doubt)을 통해서만 유죄를 인정하는 재판제도는 형해화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쪽의 주장이 알려지자 검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규정(3조인 ‘반국가단체 구성 등’)에 따르면 실제 간부로서 활동하지 않아도 일단 취임하면 죄가 성립하도록 돼 있다”며 “송 교수의 주장처럼 북한쪽이 일방적으로 선임했다면 본인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락했는지 여부가 결정적인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방적 선임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거부할 뜻을 보이지 않았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이다. 송 교수쪽의 정면대응에 따라 송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진실규명에서부터 형사처벌 수위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새로운 시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였다. 검찰은 “서두르지 않겠으며 진상규명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 ‘국외추방’에 대해서도 “추방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행정처분이며 정책적 판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이나 여론몰이 수사 논란에 휩싸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송 교수쪽에서 지적하는 국정원 수사결과의 허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더라도 진실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기소가 이뤄진 뒤 재판과정에서 또 한번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수사 진행과는 별도로 송 교수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귀국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수구보수 세력은 ‘위장 귀순’ 의혹을 들이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데 반해, 진보개혁 세력은 “남쪽의 진보 진영과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양쪽 모두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절친한 주변인사들은 대체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간적인 고뇌와 △후학들과의 소통을 바라는 학자로서의 꿈 △자신의 연구활동이 현실역사에 긍정적인 결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이 빚어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국에서 가르치고 싶은 간절한 바람
독일에서 송 교수를 가까이 지켜본 한 인사는 “송 교수가 이번 귀국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해외생활을 오래하고 독일 땅에 묻힐 결심을 한 나이든 동포들도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올 때는 꼭 곰방대나 한복 아니면 거문고 같은 것을 하나씩 사들고 집안에 놓아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게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송 교수에게는 연구자로서의 절실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사회를 다 연구한 학자로서 자신이 말한 ‘내재적 접근법’을 북쪽뿐만 아니라 남쪽에도 적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거론한 것을 봐도 그렇다. 자신의 학문성과를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비친 것도 그같은 배경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을 아우르는 구실을 하고 싶다는 바람과 관련해 그는 귀국 직후부터 “‘화해자’로서의 구실을 하고 싶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고, 귀국을 결심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상생하고 화해하고 발상의 전환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10월2일 기자회견)고 밝힌 바 있다. 학자로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을 조국에서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드러난다. 송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직업이니까 후학들도 가르치는 등 여러 가지 구상들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여기서 그런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첫날부터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송 교수가 미국에 있는 동포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 꽤 오랫동안 미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의 주요한 학문연구 대상은 민족문제나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독일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그 주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에는 항상 한계가 있었다는 게 당시 송 교수의 하소연이었다. 미국에서는 큰 학교의 경우 동포학생들이 수백명에서 1천명 이상 있기 때문에 송 교수는 그런 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해 동포후학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이와 함께 스스로도 “북쪽에 치우쳤다”고 고백한 송 교수가 이번 기회에 “남쪽에 치우치고 싶어” 귀국한 배경을 두고는 그에 대한 북쪽의 ‘대우’가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10월5일 “국정원이 조사과정에서 송 교수에 대한 북쪽의 자료를 송 교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가운데 송 교수를 ‘회색분자’로 지칭하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북쪽을 방문했던 인사들한테서도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1990년대 말 북을 방문했던 한 동포인사는 “당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주체사상 연구를 실질적으로 지도하는 한 인사를 만났는데 그가 ‘주체사상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남쪽의 장기표나 독일의 송두율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는 말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며 “북의 이런 평가에 비춰보면 그가 북쪽에 의해 이용당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냉전적 선택의 잣대를 들지 말라
어쨌든 송 교수에 대한 형사처벌 과정은 우리 사회가 ‘냉전 바이러스’를 얼마나 성숙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것이다. <한겨레> 홍세화 편집위원은 이를 위해 송 교수 개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 홀로 떨어져 섬처럼 지낸 개인이 민족이라는 화두로 학문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조국의 현실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 대립하는 두 국가체제는 양자택일의 비인간적인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이 땅의 일부분이 되려고 돌아온” 그를 이 땅에서 영원히 내쫓는 것은 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서생’(한 독일동포)을 ‘우주의 미아’(황석영씨)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을 양산하는 사회는 ‘야만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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